▲ 자생한 암수 향나무(왼쪽 뒤)와 현관 입구(오른쪽) ⓒ천지일보(뉴스천지)

도문화재자료 165호 ‘이훈동정원’
日정원, 백제 별서정원 영향 받은 사실 밝혀져
일본식 탑·신라부터 조선시대 석탑 한자리
화산폭발로 日서 날아와 자생한 향나무 한 쌍
정원서 130여 종 수목 자라… 다양한 볼거리

[천지일보=김미정 시민기자] 목포시 유달동에 위치한 이훈동정원은 1930년대 일본인 故 우치다니 만빼이가 조성한 일본식 정원이다. 해방 이후 해남 출신 故 박기배 전 국회의원이, 1950년대에 故 이훈동 조선내화주식회사 명예회장이 정원을 소유했다.

해방 후 조경 원형은 40여 년 시간 속에 묻혔으나 정원 내에 일본식 석등의 기본 형태와 일본식 5층석탑 및 7층탑 등이 남아 일본식 정원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이 외에도 정원은 입구정원, 안뜰정원, 수풀과 샘이 있는 임천정원, 후원으로 이뤄졌으며 130여 종에 이르는 다양한 수목이 자라고 있다. 이곳 내에서 일본식 탑뿐 아니라 신라시대 말에서 고려 초로 추정되는 석탑과과 조선시대 석탑도 볼 수 있다.

정원 뒷자락에는 일제강점기에 피해를 입은 얼굴 없는 약사여래좌상과 스님의 사리를 모신 부도가 있다. 아울러 수목 가운데 현관 앞에 위치한 암수 한 쌍의 향나무는 침략기부터 있었던 나무로 자연적으로 자라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일본 화산폭발 때 씨가 목포까지 날아와서 자생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성옥문화재단 학예실장은 “일본정원은 주택 내에서 바깥을 볼 수 있으나 반대로 바깥에서 주택 내부를 볼 수 없도록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이훈동정원이 처음부터 지금처럼 아름다운 정원으로 남아 있는 것은 아니었다. 정원은 故 성옥 이훈동 조선내화주식회사 명예회장의 관심과 사랑 속에서 보살핌을 받았다. 이훈동 명예회장에 대해 조금 더 알아보자.

이 명예회장이 청년일 때만 하더라도 한국사는 일제 치하에 있던 암흑기였다. 그는 일본군으로 징집되지 않기 위해 청년보국대분대장을 맡아 일했다. 당시 일본식 정원을 둘러보고 놀랐다고 한다.

해방 이후 이 명예회장은 전쟁을 겪고 주인이 바뀌면서 흉측하게 남은 정원과 집을 손수 사들였다. 그는 일본식 그대로 가꾸기 위해 정원과 관련된 여러 책자와 조예가 깊은 사람들의 조언을 들었다.

일본정원을 직접 견학하기도 하고 여러 정원에 대한 책자를 보던 중 이 회장은 일본 문화가 백제 문화의 유산이라는 것을 알았다. 일본정원 문화가 백제에서 건너왔다는 것이다.

‘백제의 별서정원이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정원으로 발전했다’라는 것을 깨달은 후 이 회장은 별서정원의 특징을 되살려 정원을 가꾸기 시작했다.

별서의 특징은 자연경관을 해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이용하고 ‘두 줄기’를 강조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두 줄기의 수맥과 자연 물질이 집안으로 흐르는 곳을 택해 정원을 조성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우물은 음양설에 따라 쌍샘으로 파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이 회장이 출장을 다녀온 어느 날 연못 옆에 심어 둔 향나무 한 그루가 눈에 보이지 않았다. 눈에 보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 자리에 잔디가 심어진 것을 본 그는 관리인을 불렀다. 정원관리사는 관리를 잘못해 향나무가 죽어서 나무를 뽑고 잔디를 심었다고 답한다. 이에 이 회장은 관리사에게 단순히 관리 잘못으로 나무를 죽였다는 사실보다 잔디를 심어 눈속임을 하려고 했던 행동에 책임을 물었다고 전해진다.

이 회장의 정원에 대한 일화는 회장이 정원을 얼마나 아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조선내화주식회사 창업주인 이 회장을 두고 故 김대중 대통령은 “이 회장은 평생을 내화(耐火)물 한 우물만을 판 경영인이다. 일제 때 내화물 원료인 납석 광산의 직원으로 취업한 이래 오늘날 내화물 업계 왕좌에 오르기까지 모든 난관을 극복하고 큰 성공을 이룬 입지적인 인물”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성옥기념관에는 이 회장이 평생 모은 근현대 서예 대가의 작품과 한국화 및 도자기 등이 전시돼 있다. 여기에는 추사 김정희 선생의 작품, 예서 이곡병과 흥선대원군이 그린 난, 조선시대 백자대호 등이 있으며 내화물도 자리 잡고 있다.

한편 성옥기념관 맞은편에는 1989년 11월 16일 일본인 자녀교육을 위해 설립한 구 목포공립심상소학교(현 유달초등학교 강당)가 있다. 이곳은 등록문화재 제30호로 지정된 곳으로 학교 내에 한국산 호랑이의 원형 박제품이 있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1908년 만들어진 이 호랑이는 이듬해 2월 전남 영광 불갑산에서 농부가 포획한 것이다. 일본인 하라구찌가 호랑이를 사들여 일본 도쿄로 옮겨 시마쓰제작소에서 표본·박제해 본교에 기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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