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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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천년 전, 예수 그리스도께서 유대 지도자들을 민답하게 여긴 이유

문자로 있던 ‘예언’ 이뤄진 실체 전해도… 편견 때문에 들을 귀 없었던 현실

살인 부르는 ‘이단 프레임’

하나님 아들 예수까지 죽여

 

예수가 전한 진리의 복음은

구약 이뤄진 실체 알린 것

씨 뿌리는 초림 때 알리고

재림에 추수할 것 약속도

 

예수 믿는 진짜 신자라면

추수되길 ‘소망’하는 신앙

 

-핵심 요약-

◆ 한 시대가 가고 한 시대가 와도…

예수 초림 당시 육적 혈통의 선민 시대는 끝났고, 성령의 씨로 태어난 예수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새로운 시대가 시작됐다. 그러나 당대 하나님의 대리자를 자처한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이 사실을 몰랐다. 오히려 하나님의 뜻을 모르고 하나님의 아들을 참람되다며 죽였다.

 

◆ ‘자기보기’ 안 되는 韓교회 이단기준

성경 66권에서 가감하면 이단이라는 한국교회, 그러나 한국교회 조차 이 기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어렵다며 예언은 설교에서 감해버리거나, 온갖 사회적인 현상에 빗대 성경 예언에 풀이를 가해서 만든 주석이 난무하기 때문이다. 결국 이단의 기준은 ‘생소함’이 됐다.

 

◆ ‘씨’ 뿌린 곳에서 추수한다고 ‘이단’

예수는 초림에 와서 좋은 씨를 뿌렸고, 그 밭에 가라지가 덧뿌려졌다고 했다. 다시 오는 때는 그 씨가 뿌려진 밭에서 추수를 한다고 했다. 예수가 천사들과 함께 와서 추수해서 하나님의 새 나라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이게 사실이라면 추수한다고 추수꾼을 금지하는 게 아니라 추수를 어서 해가라고 반겨야 한다. 또 이러한 일이 벌어지지는 않는지 신앙인들은 눈에 불을 켜고 살피고 성경대로 이뤄지는 것인지 사람이 자의적으로 하는 것인지 검증해야 한다. 검증 방법은 성경이다.

[천지일보=강수경 기자]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 8:32).”

이 말은 약 2000년 전 예수 그리스도가 율법에 매여 예수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도리어 자신의 기준을 갖다대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이단이라 핍박했던 유대교 지도자들을 향해 날린 일침이다. 당대 종교지도자라는 자들이 율법에 매이고 갇혀서, 구약 예언을 이루고 그 예언의 실체로 나타난 예수의 말을 듣지도 않고, 알아보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핍박하고 죽였다.

같은 구약 성경을 들고 신앙을 했지만 전혀 다른 길을 걸었던 당시 유대인과 예수는 왜 이토록 의사소통을 할 수 없었을까. 여기서 엄밀히 따지자면 양측은 입장이 달랐다. 예수는 유대인이 하는 말의 의도를 간파했다. 반면 유대인들은 예수가 하는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하는 말마다 오해를 했다는 게 맞다. 그래서 예수는 ‘귀 있는 자는 들으라’고 말했다.

◆ ‘이단’이라며 종교지도자에게 죽임 당한 예수

유대 종교지도자들은 구약 모세의 율법을 목숨과 같이 여겼다. 그러나 구약의 예언이 어떻게 이뤄질 것인지에 대해서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또 이들은 아브라함 이후 이스라엘이 솔로몬의 범죄로 나라가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로 분열돼 결국 이방의 포로가 되고, 하나님이 그들을 떠나 한 시대의 종지부를 찍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 또 구약 선지자들을 통해 메시야를 약속한 사실은 알았지만, 메시야 곧 예수가 와서 무슨 일을 할 것인지도 알지 못했다. 이 때문에 장로의 유전, 사람의 계명을 좇아서 자신들만의 메시야를 상상했다.

예수는 그들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메시야와는 거리가 멀었다. 예수가 와서 구약의 예언이 이뤄진 것들에 대해 증거하는 말도 전혀 알아듣지 못하고 오히려 오해를 하고 핍박을 하기 일쑤였다. 예수가 하는 말을 듣고자 함이 아니라 예수의 출신 고향, 외모, 가족 내력, 지위, 학력 등 외모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예수는 그들이 이렇게 행동한 원인을 요한복음 8장에서 단 한 마디로 정리했다. 그들은 ‘마귀의 자식’이기 때문이라는 이유였다. 하나님을 최고로 잘 믿는다 자부한 그들이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예수는 단언했던 것이다. 신의 씨는 말씀이고, 그 말은 성분이 같은 사람이 듣게 돼 있다. 그야말로 유유상종이다.

◆ 난무하는 이단 제작 속 ‘진짜 이단’은?

역사는 현실을 비추는 거울이다. 현재도 신약 성경을 갖고 신앙을 하는 이들이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으로 신앙을 하고 있다. 하지만 그 안에는 자칭 정통도 있고, 이단으로 몰리는 이들도 있다. 외형적으로는 다양한 이유가 있다.

특히 기독교가 아닌 일반 종교나 학계에서 이단의 기준은 의사나 학자들에 의해 보통 ▲시한부 종말론 ▲개인숭배 ▲열광적이고 주술적인 종교 의례 ▲신비주의적 체험 강조 ▲초능력 동원 ▲자의적인 경전 해석 ▲무속 등 여러 종교와 배합 ▲선민사상 주입 ▲치병(治病) 강조와 헌금 종용 ▲배타적 공동체 형성 등 10가지로 요약한다.

그러나 그리스도교 신앙 안으로 들어가면 성경에 대한 해석의 차이가 정통과 이단을 가르는 기준이 된다는 점에 이견이 없다.

한국교회에서 이단 논쟁의 중심에 있었던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가 이단의 기준이라고 내세운 기준을 보자. ▲성경 66권을 보태거나 뺌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역(救贖使役) 부인 ▲하나님으로부터 계시와 영감을 받는다고 주장 ▲비윤리적·반사회적·반국가적 집단 ▲예수 재림 장소와 날짜를 말하는 것 등이다.

여러 항목으로 나뉘어져 있지만 사실상 ‘성경 66권을 보태거나 뺌’ 항목은 다른 항목을 모두 포함한다고 볼 수 있다.

오늘날 모든 한국교회 중 이 항목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교단과 교회가 있을까.

장로교 신학교나 신학대학원에서는 요한계시록을 가르치지 않는 곳도 있다. 가르치지 않는다는 것은, 즉 그 뜻을 모른다는 것을 인정한 셈이다. 성경을 감한 것이 된다. 반면 하나님이 알려주지 않은 자기 해석을 추측으로 내놓은 각 교단 신학박사들의 각종 주석들도 있다. 이것은 성경에 자신의 생각을 더한 게 된다. 학위를 따려면 서로 다른 이론을 내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사람의 생각이 더해지면 하나님의 뜻과는 거리가 멀어지는 게 자명한 성경의 이치다.

결과적으로 가감하지 않으려면 하나님의 뜻을 정확히 알고 증거를 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할까. 사람들이 오해할까봐 성경은 그 뜻이 열리는 때와 방법을 자세하게 알리고 있다.

하지만 목회자들은 이를 알아서 성도들에게 가르치려는 노력보다는 ‘몰라도 된다’ ‘믿으면 구원’이라는 달콤한 사탕만 던질 뿐이다. 이러한 이들이 한국교회 주류 기득권을 차지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대열에 끼지 않고 생소한 것이 나타나면 일단 이상하다는 이유로 ‘이단’의 낙인을 찍는다. 한국교회에 유독 이단들이 많이 탄생한 이유이기도 하다. 2014년 기준 무려 158개 교회나 교단이 이단 낙인을 받았다. 2014년 10월 평신도이단대책협의회가 발표한 ‘주요 교단 이단대책위원회 연구보고 총회 결의 목록’ 발표 자료에 따르면 예장 통합 45건, 예장 합동 32건, 예장 고신 37건, 기장 4건, 예장 합신 34건, 예장 대신 3건, 예장 백석 1건, 예장 고려개혁 1건 등 총 158건을 ‘이단’으로 기록했다. 연합단체인 한기총이 이단으로 규정한 건은 총 6건이다.

이단 논쟁이 만들어낸 비극 ‘강제개종’은 원수까지라도 사랑한다는 예수의 가르침을 따르는 기득 기독교의 이중성을 보여주는 단편이다. ⓒ천지일보 DB
이단 논쟁이 만들어낸 비극 ‘강제개종’은 원수까지라도 사랑한다는 예수의 가르침을 따르는 기득 기독교의 이중성을 보여주는 단편이다. ⓒ천지일보 DB

◆ 기득권이 기준 아닌 ‘성경’이 기준 돼야

기득권이 이단 낙인을 찍는다고 이단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단은 그야말로 다를 이(異)에 끝 단(端) 즉, 시작은 하나님과 성경이었지만, 부패함으로 그 끝이 하나님과 성경을 저버리는 존재들이다.

예수는 ‘이단’소리를 들은 ‘가짜 이단’이다. 종교개혁을 일으킨 마틴 루터는 ‘오직 성경’을 주장했다가 구교로부터 이단이라 박해를 받았다.

생각해볼 문제는 예수가 와서 전한 복음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다. 예수는 구약 예언이 이뤄진 것을 직접 보고 그 이룬 실체가 자신이라고 증거했다. 아울러 당대를 가리켜 하나님의 복음의 씨를 뿌리는 때라고 알렸다. 그리고 언젠가 추수를 할 때가 있음을 예고했다. 신약 성경 곳곳에서 추수 때가 바로 예수가 다시오는 재림 때라는 단서가 있다.

진리는 간단하다. 콩을 심으면 콩이 나는 게 진리다. 씨를 뿌렸으면 추수를 해서 알곡을 수확하는 게 이치이자 진리다. 예수는 추수를 하겠다고 했고, 그 추수 때에는 한 밭에 알곡뿐 아니라 가라지가 있다고도 언급했다. 추수를 하기 위해서는 씨가 뿌려진 밭에 가서 하는 것이지, 씨도 뿌리지 않는 곳에 가서 추수하겠다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예수가 약 2000년 전 복음의 씨를 뿌렸다면, 다시 와서 어떤 자들을 추수하겠는가. 복음의 말씀을 뿌렸으니 하나님의 말씀으로 익어진 열매를 추수하게 될 것은 뻔한 이치다.

하지만 예수가 왔을 때 종교지도자들이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처럼, 예수가 다시 올 때도 받아들이지 못할 것을 예언했다. 오죽하면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눅 18:8)’라고 했을까.

◆ 주 재림의 때에도 ‘이단’ 프레임은 계속

오늘날도 성경은 ‘이단’소리를 듣게 될 수밖에 없는 목자를 증거하고 있다. 그는 예수가 ‘교회들을 위해 보내는 사자’다. 이 사자는 마지막 계시록에서 벌어지는 모든 사건을 보고 듣고 이를 증거하는 자라고 약속하는 게 바로 신약 성경의 계시록의 예언이다.

이 예언대로 보고 들은 모든 것을 증거하면 인정할 목회자들이 얼마나 될까. 자신들은 듣지 못하고 보지 못한 것을 보고 듣고 전하니 생소하다 하여 또 ‘이단’이라 하지 않겠는가. 성경은 이 사자가 나타나게 될 때를 가리켜 음행의 포도주로 만국이 무너진 때라고 했다. 무너진 만국에서 음행의 포도주에 취해 있는 종교지도자들이 예수님의 사자를 인정할리 만무하다.

또 그가 와서 신약 성경의 새 언약의 ‘추수’를 한다고 하면 알곡 성도들을 보내주겠는가. ‘이단’이라며 도리어 죽이려 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행동으로 그에게 함께 하는 신이 누군지 알게 된다.

2000년 전 예수 때에도 하나님이 보낸 자를 죽이려 했던 게 마귀의 신이 함께했던 당대 종교지도자들이었다. 이 때문에 예수는 ‘깨어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한다’고 하면서 자신을 마치 밤에 오는 도적과 같이 비유했다. 추수도 도적같이 할 수밖에 없다. 이 때에는 알곡도 있고 쭉정이도 나타나게 된다. 만약 이 예언이 실제 이뤄졌다면, 본 자는 그 실체도 증거를 할 수 있어야 할 것 아니겠는가.

어느 쪽이 더 성경적인가. 종교라면 종교적으로, 기독교인이라면 성경으로 모든 분별의 기준을 삼아야 하지 않을까.

하늘의 것을 세상의 역사나 문화, 사람의 생각으로 푼다면 이는 이미 하늘의 종교가 아닌 사람의 사교로 전락하고야 만다. 이들이야 말로 진정한 ‘이단’이 아닐까.

 

‘이단’ 
한국교회에서는 대형 교세를 이루는 교단을 주축으로 그들만의 이단규정을 만들었다. 이 규정에 저촉이 되면 소위 ‘이단’으로 배척을 받는다. 멀쩡하게 한국교회에 소속돼 있다 해도 한번 이단으로 규정되면 차별‧혐오‧배척 등으로 정상적인 목회를 이어나가기 어려워 ‘사망선고’로 인식된다. 교회 정치에서는 이 상황을 이용해 숙적에게 치명상을 입히기도 한다. 

‘추수’
마 13장에 등장하는 표현으로 예수는 제자들에게 자신이 씨를 뿌리는 인자라고 소개하고 세상 끝에 추수를 해 알곡은 곳간에, 가라지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겠다고 예언했다. 마 24장 29~31절에는 나라의 본 자손인 해달별이 어두워지고 떨어져 한 시대가 끝날 때 예수가 천사들과 함께 와서 나팔을 불어 택하신 자를 모을 것이라고 알렸다. 그리고 실제 익은 알곡을 추수하고 가라지를 심판하는 일은 계 14장에 등장한다. 이들을 처음 익은 열매로 표현했고, 다시 계 7장에서는 이들이 인을 맞은 12지파의 12000씩 총 14만 4000명이라고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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