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 202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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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희 건축가

‘건축을 통해서 무엇을 하는가’라는 질문보다는 ‘건축을 통해서 어떤 꿈을 꾸는가’에 대해서 스스로에게 묻는다.

간혹 아직도 고전적인 방법으로 건축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구닥다리 같이 쪼그라들기가 일수다.

태생적으로 건축이 보수적이다 보니 깊이 들여다보면 초라한 면을 많이 발견하게 된다. 종이(옐로우페이퍼)에 수십번을 다시 그린다거나 비슷한 모형을 수차례 다시 만들고….

건축의 본질이 무엇인지 묻기 전에 이미 사물의 노예가 된 상태에서 건축을 말하는 사람이 많은 현실에서는 깊이 있는 작업은 오히려 부정적으로 비쳐지고 시간 내에 건축 인허가를 받지 못하면 천덕꾸러기로 취급되기 쉽다. 당연한 일이지만 보수적 접근이 필요한 건축은 반대로 정신에 호소한다. 육체의 피곤함보다 정신적으로 더 힘든 직업이 건축이다. 그래서 흰 머리카락 새치가 있는 건축가가 많은 것도 우연한 경우가 아닐 것이다.

건축을 완성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이 모여서 의견을 주고받고 심혈을 기울여서 논의하며 개념을 세우고 모형으로 정립하고 일반 대중에게 공감이 가도록 스케치와 도면을 작성하면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이것이 어떻게 쉽게 결과물로 나올 수 있겠는가?

이것은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의 이야기처럼 애매하게 건축을 포장하려는 이야기는 아니다. 애매한 부분이 너무 많아서 본질을 흐려놓을 수는 있지만 건축은 결과물로 명쾌하게 평가받는 것이고 사후평가에 득과 실이 생기는 것이다.

건축가가 이러한 현실에서 자신의 자리를 지켜야 하고 인간의 본연의 삶을 담는 공간을 완성해야 하는 미션을 수행하는 것이다.

건축가 내면에 심적으로 고귀하고 일관된 자세가 자리 잡고 있지 않으면 완성시키기 어려운 미션이다.

안정되고 순고한 면이 바탕에 있어야지 겨우 영혼의 안식처가 될 만한 건축이 이 세상에 태어나는 것이다. 때로는 너무 순고해서 외골수처럼 보이고 독단적으로 넘겨짚게 되기도 하지만 적절한 보편성을 지킨다면야 그까짓 것쯤은 큰 건축의 밑거름쯤으로 봐줄 수 있을 것이다. 애교다.

건축의 최대 미션은 영혼이 편히 쉴 수 있는 안식처의 완성이다.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결과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완성이란 좀 어색한 표현이지만 그래도 완성이란 목표가 건축에는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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