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겸 동국대 교수

1987년 제9차 개정헌법은 현행 헌법을 말하는데 개정된 지 3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효력이 발생하고 있어서 우리나라 헌법사에서 최장수 헌법이라고 할 수 있다. 1987년 헌법이 개정되면서 환경권 조항도 제33조에 있던 것이 제35조로 바뀌면서 내용이 추가됐는데 특이한 것은 제3항의 신설이라고 할 수 있다. 개정헌법은 환경권을 규정하면서 제3항에 “국가는 주택개발정책 등을 통하여 모든 국민이 쾌적한 주거생활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한다”라고 명시했다.

1987년 헌법 개정 당시 국민의 주거권에 대하여 무언가 규정을 둬야 한다고 생각하고 이 규정을 도입한 것이라고 추측된다. 그렇지만 환경권 조항에 쾌적한 주거생활권은 조금 이질적이다. 왜냐하면, 주거생활권은 헌법 제34조의 인간다운 생활할 권리에 밀접하게 연결되는 권리이기 때문이다. 물론 주거생활권의 앞에 수식어로 ‘쾌적한’이란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환경적인 의미를 부여하고 있지만,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는 이미 헌법 제35조 제1항이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를 언급하고 있기 때문에 쾌적한 환경은 중복된다. 그렇다면 여기서 쾌적한 주거생활권은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주거권이라고 이해해야 하는데, 이 역시 헌법 제35조 제1항에 포섭돼 의미가 없다고 본다.

헌법 제35조 제3항에서 규정하고 있는 쾌적한 주거생활권은 환경에 초점을 맞출 것인지 또는, 쾌적한 생활을 위한 주거권으로 주거에 초점을 맞추어야 하는지 하는 문제가 있다. 인간다운 생활을 위해 국민은 기본적인 의식주를 보장받아야 한다. 그렇다면 헌법 제35조 제3항은 의식주 중에서 주에 초점을 맞춰 쾌적한 환경 속에서 주거생활을 할 수 있도록 권리를 보장한다고 해석해야 한다. 그런데 이런 해석을 위해서는 우선 주거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주택이 전제되어야 한다. 거주할 공간도 없는 국민에게 쾌적한 주거생활권은 그림 속의 떡에 불과하다. 나아가 헌법 제35조 제3항은 쾌적한 주거생활권만 규정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를 위해 국가에 주택개발정책 등을 수립하고 추진해야 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즉 국가는 국민의 쾌적한 주거생활권을 보장하기 위해 체계적인 주택정책을 수립해 양질의 주거환경을 구축해야 한다. 국민의 주거생활권을 보장하려면 주택이 존재해야 하는데, 경제적 약자에게 주택의 소유는 불가능한 현실이다. 그런 점에서 국가는 경제적 약자의 주거생활을 보장하기 위한 주택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독일을 위시한 유럽의 여러 국가가 공공임대주택을 건설해 공급하고 있는 것은 국민의 주거생활권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다.

지구상의 많은 국가와 달리 우리나라 현행 헌법은 국민의 주거생활권을 보장하기 위한 규정을 두고 있다. 그런데도 국가의 주택개발정책에는 경제적 약자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 특히 주택개발정책에서 공공임대주택 정책이 미미하고 임대주택정책도 주로 민영임대주택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이는 헌법 제35조 제3항이 국가에 부과하고 있는 주택개발정책 의무가 제대로 이행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경제적 약자의 쾌적한 주거생활권을 보장하기 위한 보다 적극적인 국가의 주택개발정책이 필요하다. 특히 국민을 위한 대량의 공공임대주택 건설은 국민의 생존을 위한 필수적인 국가의 과제이고 의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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