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곤 역사 칼럼니스트/호남역사연구원장

14세기 중엽 페스트(흑사병)가 유럽을 휩쓸었다. 1347년에 쥐벼룩이 옮겼다는 페스트가 이탈리아 제노바에 창궐한 이후 불과 6년 만에 유럽 인구의 1/3인 6천만명이 죽었다.

작년 6월에 에스토니아 수도 탈린의 ‘성 니콜라스 교회 미술관’에서 ‘죽음의 무도’ 그림을 봤다. 배경은 묘지이고 단상 위에 설교자가 있다. 그 옆에 하얀 수의를 걸친 해골이 백파이프를 불고, 역시 수의를 걸친 해골이 관을 들고 있다. 이어서 교황은 십자가 지팡이를 들고 있고, 그 옆의 해골은 교황의 붉은 망토를 잡고 있다. 바로 옆의 황제는 칼을 들고 있다. 그 옆의 해골은 한 손은 황제의 어깨에, 또 한 손은 왕비의 어깨에 손을 얹고 있다. 이어서 해골 옆에는 빨간 모자를 쓰고 있는 추기경이다. 그리고 해골, 그 옆은 왕관을 쓴 왕, 또 해골이 있다.

해설판을 읽어보니 이 그림은 15세기 후반 독일 뤼베크의 화가 베른트 노르케가 그렸는데, 전시물은 7.5미터 길이의 전반부 그림이다. 원래 그림은 거의 30미터이고 50명이 그려져 있었단다. 전시 그림의 권력자 5명 뒤에는 사회적 지위 순서대로 기사, 부자, 상인, 농사꾼이, 맨 마지막에는 아이와 거지가 나온단다. 한편 노르케는 1463년에 같은 주제로 뤼베크 성 마리아 성당에 그림을 그렸다.

‘죽음의 무도’ 주제는 ‘죽음’이다. 사람은 누구나 죽게 마련이며, 죽음 앞에서는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

한편 ‘죽음의 무도’는 김연아가 2009년 벤쿠버 세계피겨선수권대회 우승을 거머쥔 배경음악이었다. 생상스가 1874년에 작곡했는데, 그는 시인 카잘리스의 오래된 프랑스 괴담을 바탕으로 한 시에서 영감을 얻었다. 생상스의 음악을 들으면서 시를 읽는다.

“지그, 지그, 지그, 죽음의 무도가 시작된다.

발꿈치로 무덤을 박차고 나온 죽음은 춤을 춘다.

한밤중에 울리는 죽음의 춤의 노래

 

지그, 지그, 지그, 바이올린 선율을 따라

겨울바람 휘몰아치고 밤은 어둡고

보리수나무에서 들려오는 신음소리.

하얀 해골이 수의를 펄럭이며 달리고 뛰며,

어둡고 음침한 분위기를 만든다.

 

지그, 지그, 지그, 해골들이 뛰어놀며

춤추는 뼈들이 부딪치는 소리가 들린다.

욕정에 들끓은 연인은 이끼 위에 앉아

기나긴 타락의 희열을 만끽한다.

 

지그, 지그, 지그, 죽음은 계속해서

끝없이 악기를 할퀴며 연주한다.

베일이 떨어졌다.! 한 무용수 나체가 된다.

그녀의 파트너가 요염하게 움켜잡는다.

 

그 숙녀가 남작 부인이라 했던가.

그녀의 용감한 어리석은 달구지 끄는 목수.

경악스럽네! 그녀는 저 촌뜨기가 남작인 마냥

그에게 허락한다.

 

지그, 지그, 지그. 사라반드 춤!

죽음이 모두 손을 잡고 원을 그리며 춤춘다.

지그, 지그, 지그, 군중 속에서

왕이 농부와 춤을 춘다.

하지만 쉿! 갑자기 춤이 그치고

서로 떠밀치다 날쌔게 도망친다.

새벽닭이 울었다.

아, 불행한 세계의 아름다운 밤이여!

죽음과 평등이여 영원하라!”

 

코로나 사태가 심각하다. 5일 현재 확진자가 6000명이 넘고 41명이 사망했다. JP 모건의 3월 중순 1만명 예측이 맞는 것인가? 언론은 연일 마스크 대란과 정부의 혼선, 대구 병상 부족, 95개 국가의 한국인 입국 제한, 종교행사 취소, 개학 연기, 자영업자 몰락, 소비 실종 등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일’을 보도하고 있다.

정부는 향후 1~2주가 코로나 차단의 중요한 시기라며 ‘사회적 거리 두기’ 실천을 권고하고 있다. 필자도 집에서 알베르 카뮈의 소설 ‘페스트’를 읽고 있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