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도교 서울교구 양윤석 교구장. ⓒ천지일보(뉴스천지)

천도교 서울교구 양윤석 교구장

[천지일보=이길상 기자] “천주조화지적(天主造化之迹)이 소연우천하야(昭然于天下也)로되.” 이 말은 천도교경전 <동경대전>에 나오는 포덕문(布德文)의 일부로써 그 뜻은 ‘한울님 조화의 자취가 천하에 뚜렷한 것이로되’이다.

동경대전은 동학의 창시자인 최제우가 지은 동학의 경전이며 그 첫 번째 편이 포덕문이다. 30대 젊은 국어선생님의 눈에 들어온 “천주조화지적(天主造化之迹)이 소연우천하야(昭然于天下也)로되”란 문구는 그의 마음에 요동쳤으며 그의 인생을 바꾸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그는 점점 천도교의 교리에 빠져들고 말았다. 그가 바로 천도교 서울교구 양윤석 교구장이다. 그를 만나 천도교가 그의 삶에 끼친 영향은 무엇이며 그에게 있어 천도교는 어떤 의미인가를 물어봤다.

◆ 천도교 입교-‘시천주(侍天主)’ 깨달아
양 교구장은 어릴 때는 교회를 다녔다. 그는 고등학교 시절에는 불가(佛家) 쪽이 멋있어 보여 불교학생회 활동을 했으며, 대학 때는 ‘화엄경 해설’을 쓰는 등 나름대로 불교에 심취되기도 했었다. 그러나 사범대를 졸업한 그는 교직생활을 하면서 종교생활과는 거리가 멀어졌다고 한다.

교직생활을 잘하고 있던 그는 30대 초반 어느 날부터 인간관계에 회의가 들기 시작했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소통의 부재’로 고민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종교적인 차원의 수련을 생각했다. 천도교 교인인 친구가 있어 귀동냥으로 천도교에 수련이 있다는 것은 그는 익히 알고 있었다. 그는 천도교에 가서 수련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천도교는 수련을 하기 전에 그에게 입교를 할 것을 권유했다. ‘입교를 하지 않으면 수련 중에 마음이 흔들릴 수 있다’는 천도교측의 얘기였다. 그래서 그는 얼떨결에 입교를 하게 됐다고 한다. 보통은 21일 수련(기도)한 후 천도교에 입교를 하는데 그는 거꾸로 입교를 하고 수련을 한 것이다. 양 교구장은 입교는 하지 않고 수련을 통해 나를 성찰해보는 시간만 가지려 했는데 결국 입교를 하게 됐다.

양 교구장은 천도교에 전혀 문외한은 아니었다. 대학 시절 교양과목 리포트의 주제를 ‘동학혁명’으로 잡기도 했고 또 천도교 교인의 부탁으로 1920년대 문화운동에 관한 원고를 청탁받아 그 당시 천도교가 발간한 월간지 <개벽>에 관한 것을 집필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천도교 경전 등을 접하는 계기가 있었다. 그런 것이 바탕에 깔려있어서인지 그는 천도교에 입교함에 있어 크게 망설이지는 않았다고 했다.

입교를 한 그는 일주일간 수련을 했다. 양 교구장은 “중간에 빠져나오려고 기회를 엿보다 못 찾고 일주일을 마쳤다. ‘시천주(侍天主)’ 곧 ‘내 마음에 하늘을 모셨다’는 것을 깨달았다. ‘시천주(侍天主)’ 이것이 진짜구나를 깨달았다”고 했다. 일주일간의 수련이 그의 운명을 바꾼 것이다.

◆ ‘한 송이 꽃이 펴야 온 세상이 봄이 된다’
양 교구장에게 경전이나 스승의 말 가운데 특별히 가슴에 와 닺는 것이 있는가를 물었다. 그는 서슴지 않고 대답했다. 그는 “대신사(수운 최제우)의 시에 ‘한 송이 꽃이 피면 온 세계가 봄이 온다’라는 말이 있다. 나는 이것을 ‘한 송이 꽃이 펴야 온 세상이 봄이 된다’라고 해석하고 싶다. 이것이 더 실체적인 것 같다. 저절로 꽃이 피는 것이 아니라 내가 꽃을 피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내가 먼저 변화돼야 한다는 얘기다”라며 요즈음도 그 구절을 항상 머릿속에 되뇌며 살아가고 있다고 했다.

양 교구장은 남이 베풀어 주기를 바라기 전에 내가 먼저 베풀고 교구가 베풀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무엇 때문에 교구를 운영하는 것인가? 단순히 교구만 유지하려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교구 안에서만 머무르지 말고 교구가 할 수 있는 범위에서 사회에 베풀어야 한다는 것이다. 성화실(기도실) 같은 곳도 지역사회단체나 ‘NGO‘ 등에 모임 및 회의 장소로 빌려주는 것도 교구가 이웃과 사회에 베풀 수 있는 것이라는 게 양 교구장의 생각이다. 물질이 있어야만 꼭 남에게 베풀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서울교구가 할 수 있는 것은 먼저 베풀자는 얘기다.

양 교구장은 “해월신사(최시형)의 법설(法說)에 ‘대인접물(待人接物)’이 있다. 사람과 물건을 접하는 방법을 설(說)한 것인데 ‘내가 착해지면 온 세상이 착해진다’라는 가르침으로서 이 각박한 세상을 사는 우리들에게 교훈하는 바가 크다”며 남이 베풀어 줄 것을 기다릴 것이 아니라 나부터 변화고 베풀어야 함을 강조했다.

 

▲ 천도교가 주최한 제92주년 3.1절 기념식이 중앙대교당에서 열렸다. ⓒ천지일보(뉴스천지)

 

◆ 천도교와 기미년 3.1운동
천도교인에게 3.1운동은 그 의미가 남다르다. 천도교인들은 스승들이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 분연히 일어났던 3,1운동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를 갖고 있다. 양 교구장은 “3.1운동 당시 의암성사(손병희)는 이것(3.1운동)을 하면 교회가 망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그 분의 말대로 ‘독립만세운동을 한다고 당장 독립되는 것은 아니다’라는 것도 알았을 것이다. ‘천도교는 망한다’라고 울고불고 말린 교인도 있었을 것이다. 교회를 지켜가면서 적당히 독립운동을 할 수도 있었을 텐데 의암성사는 왜 3.1운동을 주도했을까. 이 점을 곰곰이 생각해야 할 것”이라며 천도교가 3.1운동을 주도했다는 자부심을 갖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통해 오늘을 사는 천도교인이 어떤 생각과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는지 깨달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사인여천(事人如天)’ 실천해야
천도교 교구장은 봉사자다. 그러므로 교구장은 교회로부터 활동비 등 금전지원을 받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 교구장은 교구에 매일 출근한다. 집에 부인 눈치보고 있는 것보다는 나은 것 같아 출근한다는 것이 그의 얘기다. 그는 매일 밤 9시 쯤 퇴근을 한다고 했다.

양 교구장이 천도교에 입교한 지 30년이 지났다. 그 전에는 교회발전을 위해 건의도 많이 했었다고 한다. 이제 그는 말을 많이 아끼고 있다고 했다. 양 교구장은 “느낀 사람이 일을 하는 것이다. 그러면 언젠가는 하나로 모일 것이다. 스스로 할 생각은 안 하고 조직에 의존해 감나무에서 감이 떨어질 것만을 기다리는 사람과 같이 무작정 기다려서는 안 된다. 교구도 총부(교회본부)에만 의존하지 말고 열심히 노력‧연구해서 아이템을 개발해 교구발전을 위해 힘쓰는 것이 우선돼야 할 것”이라며 천도교의 발전을 위해서 교구장 상근 및 전문교역자 제도는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양 교구장은 천도교인은 물론 종교인이라면 남을 공경하고 자신을 스스로 낮추는 겸양의 자세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천도교의 가르침으로 표현하자면 ‘사인여천(事人如天)’ 즉 한울님을 공경하듯이 사람도 그와 똑같이 공경하고 존경하는 것을 뜻한다. 그는 “‘사인여천’을 실천한다면 포덕(전도)은 저절로 될 것이다. 그것이 종교인의 향기를 내뿜는 것이며 바로 꽃이 되는 것이다. 그것이 종교인, 신앙하는 사람의 기본자세라 생각한다”면서 대접받기보다는 남을 섬기는 종교인들이 이 세상의 꽃으로 많이 피어나길 바란다고 말했다.

◆ 천도교-사회‧종교‧국가적인 책임
천도교의 사회‧종교‧국가적인 책임에 대해 양 교구장은 “천도교의 교리 자체는 분열이 아니고 통합이다. 이분법적인 잣대로 상대를 평가하지 않는다. 이런 뜻에서 사회‧종교간 대화‧상생의 중재자 역할을 천도교가 수행해야 할 것이다. 특히 환경문제에 있어서도 천도교가 적극 나서야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울러 남북평화통일에도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최근 남북 천도교가 각자의 처소에서 ‘49일 특별기도회’를 열기로 합의한 바 있다. 남과 북 천도교가 합동으로 기도할 때는 남북평화통일을 염원하는 내용을 꼭 넣는다”면서 천도교가 스승의 가르침을 몸소 실천함으로 천도교가 먼저 꽃이 돼 온 세상에 봄이 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천도교 수련원 중 하나인 법원수도원에서 105일간 수련을 한 적이 있다는 양 교구장은 “105일 수련기간, 결국은 나를 바꾸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시천주’ 인간관 속에서 남에게 요구하거나 핑계를 대지 않고 나를 변화시키는 것이 수련과 종교생활의 종착지인 것 같다. 이것이 천도교의 특색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렇게 보고 싶다”며 종교인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새겨야 할 의미 있는 말을 남겼다.

양 교구장은 인터뷰 내내 말을 아꼈다. 요즈음 종교인들이 종교가 없는 사람들보다도 못하다는 말을 자주 듣게 된다. 아마도 그 이유는 말과 행동이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양 교구장은 말은 아꼈지만 그 모습에서는 내가 낮아지고 먼저 변화해야겠다는 의지를 읽을 수 있었다. 천도교 서울교구가 천도교의 부흥과 발전에 큰 역할을 담당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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