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준 와당연구가

이 와당은 육각(六角)으로 매우 희귀한 사례다. 고구려 유적에서 인동문을 새긴 육각와당이 발견 된 사례가 있었지만, 그들의 우상인 치우(蚩尤)를 해학적으로 표현한 것은 처음 대한다. 일부 학자들은 이 같은 모양을 도깨비라고 부르고 있다.

이 와당은 육각의 내구(內口)에 어린 아이 같은 치우가 춤을 추는 모양을 배치했다. 머리에는 뿔이 세 개, 눈과 코, 입을 크게 표현했다. 양팔과 양 다리를 넓게 벌리고 있다. 그런데 크게 벌린 양발 사이에 다이아몬드 형 주머니 같은 것이 있다. 이것은 과연 무엇을 표현한 것일까.

1조의 선문으로 된 주머니 안에는 둥그런 물체가 있다. 주머니 속에 흡사 어린아이가 들어있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이 치우상은 여자를 표한 것일까. 고구려 와당 중에는 임신한 여인을 표현한 것이 있지만, 치우가 알을 낳는 형상은 사례가 없다.

고구려 시조 주몽신화에는 어머니 유화가 해산하면서 알을 낳는 것으로 기록된다. 삼국유사에 쓰여 진 설화는 다음과 같다.

 

-북부여 금와왕이 사냥을 하다가 깊은 숲 속에서 유화라는 하백의 딸을 발견했다. 유화는 해모수라는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청년의 꼬임에 빠져 허락도 없이 혼인을 했다가 해모수가 없어지자 유화는 그의 아버지 하백에게서 버림을 받게 되었다고 했다. 금와왕은 기이하게 여겨 유화를 데려다 작은 방에 가뒀다. 그러던 어느 날 유화의 방에 햇빛이 비치고 큰 알을 낳게 되었다. 왕은 해괴한 일이라고 생각하여 알을 밖으로 내던져 버렸다. 그러나 알 주위를 지나는 모든 동물들이 피해가고 오히려 알을 품어 주었다. 그래서 왕은 알을 깨뜨리려고 했으나 깨어지지 않았다(하략)_

치우는 인명(人名)이 아니며 ‘구려국’을 지배했던 지배자의 호칭으로 해석한다. 주몽은 구려국의 옛 땅에 ‘구려(句麗.고구려)’를 세우고 치우국의 국호를 계승했다. 이 와당은 고구려가 중국 한족과 끝까지 저항했던 구려국의 정통을 이은 치우의 후손임을 강변하는 것은 아닐까.

기와의 주연에는 큰 연주문대를 돌렸다. 화려하게 보이려 한 것인가. 이 와당은 적색으로 드림새 부분이 잘 남아있으며 모래가 많이 섞이지 않은 경질이다. 경 12.5㎝, 두께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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