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참배 모습.

1938년 9월 12일 조선일보에 실린 신사참배 모습. 장로교 총회에서 신사참배를 결의한 후 평양신사에서 목회자와 교인들이 신사참배를 하고 있다. (출처: 한국기독교흑역사 캡처) ⓒ천지일보DB

인류역사에서 탄생으로 한 시대의 기준이 된 예수로부터 시작된 기독교가 시작부터 그 부패함을 드러내며 걸어온 세월이 어느덧 2000년이 넘었다. 그간 기득권, 기성, 주류 등 다양한 수식어와 함께 불려진 기독교는 돈‧권력‧성‧정치 등 세상적인 이권과 야합하며 본질을 잃고 분열하며 신뢰를 잃어갔다. 개혁을 부르짖는 목소리는 하늘에 닿았다. 어두운 시대 속, 새 시대 새 종교를 원하는 그리스도인의 절규에 대한 답이 무엇일까. 본지가 예수 이후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기독교역사를 통해 살펴봤다.

한반도에서 폭발적 부흥 이뤄

국내 최대 교파로 자리매김

‘이방신 섬기지 말라’ 십계명

어기고 신사참배 등 강행해

 

장로교 주축돼 한기총 탄생

‘보수’ 정치 의도 깔려있어

[천지일보=임혜지 기자] 조선 말 한반도에 안착한 장로교는 1908년 한국 기독교 역사상 가장 큰 부흥을 맞으며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였다. 이렇게 국내 최대 교파로 자리 잡은 장로교였지만 일제식민 통치 기간, 하나님을 저버리고 일본 천황신에게 절하는 행위를 주도하며 부패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 이방신 섬김 앞장선 장로교

조선예수교장로회(예장)는 지난 1938년 9월 10일 제 27회 총회에서 신사참배에 찬성하는 긴급 동의안을 가결시켰다.

일본의 핍박을 피하기 위해서였지만 이는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지켜야 할 성경의 십계명 중 가장 중요시되는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 ‘우상숭배하지 말라’는 두 계명을 어긴 것이었다.

신사참배 결의 후, 교회들은 신앙은 뒤로 한 채 친일에 앞장서서 가담하기 시작했다. 일제 침략전쟁에 필요한 전투기와 기관총 등 살상무기의 대금을 교회 헌금으로 헌납하는가 하면 예베시간에는 일제를 찬양하는 기미가요(일본 국가)를 불렀고, 예배 시간에 일어나 천황이 사는 동쪽을 향해 절하는 ‘동방요배’를 했다.

권력에 붙어 이방신을 섬기는 이러한 행위는 예장뿐 아니라 천주교, 성공회, 장로교, 감리교, 구세군 성결교 등 대부분의 교단 교파가 동참했다. 이러한 교회들의 친일 행적은 해방 전까지 계속됐다.

반면 신사참배를 끝까지 반대하는 목회자들도 있었다. 당시 예장 소속의 일부 목회자들로 신사참배를 끝까지 거부했다. 이들은 결국 독립 후에 자신들만의 교단을 만드는데 바로 ‘고신파’다.

예장은 1954년에 신사참배 결의를 철회했고, 이후 약 30년간 교회들의 신사참배 행위는 거론되지 않은 채 역사 속에 파묻히는 듯 했다.

하지만 1992년 한경직 목사가 이른바 ‘종교계 노벨상’인 템플턴상을 수상하면서 소감으로 “신사참배를 통해 우상숭배 한 죄를 회개한다”고 말해 다시금 교회들의 신사참배 행위에 대한 논란이 일기 시작했다.

2006년 1월에는 기독교대한복음교회가 초대 감독이던 최태용 목사의 친일행각을 고백하고 반성했다. 최 목사는 1942년 ‘조선기독교회의 재출발’이라는 글에서 일본의 조선 지배가 신의 뜻이라며 “우리는 신을 섬기듯 일본을 섬겨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2007년에는 기독교대한성결교회(기성)가 3.1절을 기념해 신사참배에 대한 죄책고백선언문을 발표했다. 그해 9월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도 정기총회에서 신사참배에 대해 공식 사과했다.

2008년 9월 24일 제주에서 열린 ‘제주선교 100주년 기념 장로교 연합감사예배’에선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과 합동, 합신, 기장 총회 총대 3950명과 제주지역 목회자 및 교인 등 모두 5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신사참배의 죄를 회개한다며 기도했다. 

2015년엔 예장합동 소래노회가 총회에서 신사참배 결의를 취소했다.

2018년엔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와 한국교회총연합(한교연), 한국기독교연합(한기연) 등 6개 연합회가 한국교회 회개기도의 필요성에 공감하며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기도대성회를 진행했다.

◆ 보수 장로교가 만든 한기총

신사참배의 주축이 됐던 장로교는 후에 정치와 더 가까워지기 시작했고, 오늘날의 한기총을 탄생시킨다.

당시 시대상황을 살펴보면 한국전쟁 이후, 장로교 주요 교단들은 군부 정권 시절 삼선개헌을 지지하는 보수 세력들을 결집시키려는 김종필의 정치적인 계획에 동조하게 되는데, 박정희 대통령의 삼선개헌에 반대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를 견제하기 위한 목적으로 보수 세력의 개신교 연합기구가 필요했다.

보수 장로교 주요 목회자들은 이를 적극 수용해 국가조찬기도회, 국가기도회 등을 열며 친정부 성향의 박정희 체제 안정에 힘을 보탠다. 이 세력들은 5공 정권에서 더 조직적으로 뭉치게 되는데 그 결과물이 바로 한기총이었다.

2011년 4월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의 ‘금권선거’가 공중파에 집중 보도되면서 종교계에 큰 논란이 일었다(위). 한국인 B목사는 자신이 운영하는 교회에서  6년간 9명의 11~21세 소녀를 성폭행한 혐의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출처: 방송화면 캡쳐)
2011년 4월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의 ‘금권선거’가 공중파에 집중 보도되면서 종교계에 큰 논란이 일었다(위). 한국인 B목사는 자신이 운영하는 교회에서 6년간 9명의 11~21세 소녀를 성폭행한 혐의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출처: 방송화면 캡쳐)

한기총은 세상의 돈과 명예, 권력을 추구하는 행보로 인해 수많은 논란을 양산시키며 교계 대표 연합기구로서의 위상을 잃기 시작했다. 지금의 한기총은 종교 단체가 아닌, 마치 하나의 정치 조직이 됐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현 대표회장인 전광훈 목사와 함께 정치적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한기총 타락이 드러나기 시작한 건 금권선거 문제가 터졌을 당시부터다. 금권선거 문제는 제17대 대표회장이었던 길자연 목사 때 결국 폭발했다. 길 목사와 대립하던 이광선 목사의 폭로로 논란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수백에서 수천만원이 든 돈 봉투가 오갔다는 증언이 계속해서 폭로 됐고, 당시 SBS 시사 프로그램 현장 21에서는 ‘한기총 돈 선거 10당 5락의 진실’이라는 제목으로 한기총의 금권선거를 보도했다.

한기총 소속 목회자 상당수가 성범죄나 사기, 횡령 등 범죄에 연루 돼 있는 점도 한기총을 종교 단체라 보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로 꼽힌다.

기독교 한 교회가 공개한 한국기독교 목회자 범죄 통계에 따르면 2008년부터 2018년까지 유죄판결을 받은 전국 목사의 범죄는 1만 2000건이다. 전국 목회자가 6만여명인 것을 고려하면 목회자 중 무려 20%가 범죄자라는 얘기다.

서울‧경기권만해도 7000건에 달한다. 지난 2015년부터 2018년 7월까지 3년 7개월 동안 유죄판결을 받은 서울‧경기지역 목사들은 도합 531명이다. 죄명별 분포를 보면 전체 범죄 중 사기가 18%(97명)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그 다음으로는 주거침입(68명) 성범죄(32명) 상해(31명) 명예훼손(29명) 폭행(28명) 횡령(26명) 교통사고(20명) 문서위조(20명) 업무방해(18명) 무고(11명)였다. 공무집행방해와 건축법위반 위증, 공직선거법위반, 모욕도 상당했다. 살인 등 기타 죄목도 112명이나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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