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승용 시민주권 홍보기획위원장

한국 보수파 기독교의 대표적 연합기관인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대표회장 선거를 둘러싼 금품 선거 논란이 악화일로다.

길자연 목사를 대표회장으로 신임하고 있는 현 한기총 지도부는 지난 2월 24일 서울 한국교회연합회관에서 임원 회의를 열어 최근 길 목사의 돈 선거 내용을 폭로하며 선거무효 등을 주장하고 있는 이광선 전임 대표회장과 ‘한기총개혁을 위한 비상대책위원회’ 위원 등 29명에 대해 징계를 내렸다.

징계내용은 이광선 최충하 최귀수 이광원 목사 등 18명은 자격정지 10년, 김동권 목사 등 4명은 자격정지 5년, 심우영 목사 등 4명은 자격정지 3년, 한동숙 목사는 경고, 금권선거를 폭로한 목사 2명은 제명 등이다.

한기총 측은 징계 대상자들의 사무실 출입을 금지하고, 만약 출입을 시도하면 사무처 담당자가 즉시 경찰에 신고해주길 당부했다. 한기총이 중견 목사 등을 이처럼 대규모로 징계한 것은 창립 22년 만에 처음이다.

사건의 발단은 지난해 12월 21일 임기 1년의 17대 대표회장으로 당선된 길자연 목사에 대해 전임 16대 대표회장 이광선 목사가 돈 선거 의혹을 제기하면서 비롯됐다. 이 목사는 2월 9일 자신이 당회장으로 시무하는 서울 신일교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한국교회에 드리는 참회와 호소의 글’을 통해 ‘한기총의 돈선거 풍토’를 적나라하게 폭로했다.

그는 “사회에서는 이미 오래 전에 사라진 금권선거가 교회 안에서는 아직도 판을 치고 있다”며 자신이 지난해 선거과정에서 금품을 살포했음을 고백했다. 그는 “한 번 떨어진 뒤 주위에서 ‘목사님, 이번에는 남들처럼 하십시오’라고 하길래 그대로 했더니 당선됐다”고 말했다. 이는 길자연 한기총 신임회장도 돈 선거를 통해 당선된 게 아니냐고 의혹을 제기한 셈이다.

이 목사의 고백 다음 날엔 예장합동소속 강주성 목사가 지난해 9월 29일 교단 총회에서 40여 명의 예장합동쪽 목회자들이 길자연 목사쪽으로부터 1인당 100만 원씩 4000만 원대의 금품을 수수한 내용을 폭로하는 등 금품선거의 구체적 내용이 잇달아 폭로됐다.

한기총은 1989년 보수적 교계 원로 목사들이 진보적 기독교 연합체인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에 맞서 창립한 단체로 현재 52개의 가맹교단에 14개 가맹기관단체를 거느리고 있고 산하 교회수가 3만 5000여 개이고 신도 수는 1100만 명이 넘는 한국 최대의 기독교단체다.

그런데 이처럼 신구 회장 측의 이전투구가 계속되자 교계 내부는 물론 일반 여론도 급격히 악화하고 있다. 지난달 17일엔 한국교회백주년기념관 소강당에서 ‘한국교회와 한기총의 개혁을 위한 기도회’가 열렸는데 참석자들은 “이번 기회에 한국교회 안에서 금권선거를 영구히 추방해야 하고, 끝내 개혁을 해내지 못하면 한기총을 해체하고 새로운 연합 기구를 창립해 줄 것을 한국교회에 호소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을 펴온 손봉호 서울대 명예교수는 “세속적으로 덕 보려는 것은 기독교적 관점이 아니고 세력이 클수록 더 낮아져야지 그 세력을 이용해서 이익을 얻으려고 한다면 종교라고 볼 수 없다”며 ‘한기총의 해체’를 주장했다.

이번 사건은 그동안 말로만 떠돌던 개신교의 대표직을 둘러싼 ‘금권선거 의혹’이 사실로 드러났다는 점에서 충격이다. 더구나 세속의 선거가 아닌 성직자들의 선거가 돈선거로 물들고 있다는 점에서 부끄럽기 짝이 없는 일이다. 선거 때마다 돈을 뿌려 줄을 세워야만 교계의 얼굴이 될 수 있는 풍토라면 그렇게 당선된 교계의 대표가 아무리 ‘반성과 회개’를 외친다 한들 이는 “나는 바담 풍(風) 해도 너는 바람 풍 해라”나 하등 다를 바 없다.

또 만약 돈선거가 사실이라면 이는 분명 실정법 위반행위다. 일반 협회장선거의 경우라면 모두 형서처벌대상이다. 실제로 농수협조합장 선거에서는 금품이 오갈 경우 즉시 사법당국이 수사에 나서고 있다. 그렇다고 종교단체 선거에 경찰이 나설 수는 없는 노릇이어서(물론 법적으로는 가능하지만) 여러모로 난감하다.

그렇다면 이를 어찌해야할 노릇인가. 성직자들의 양심에 기대는 수밖에 없지만 그게 연목구어(緣木求魚)나 다름없다면 차라리 선관위에 위탁해서 선거를 치르는 것도 한 가지 해결책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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