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철 기술경영학 박사

 

고전역학과 현대물리학의 가장 큰 차이는 우리가 접하고 있는 물리적 현상을 결정론적 체계로 보느냐, 확률론적 체계로 보느냐이다. 즉 고전물리학의 대표적인 두 이론인 뉴턴역학이나 맥스웰 전자기학에서는 어떤 계의 초기상태에 대한 정보가 주어지면, 그 이후 계의 상태에 대한 모든 정보를 정확하게 알 수 있다고 본다. 이에 반해 양자역학이론 기반의 현대물리학에서는 어떤 계의 초기 상태에 대해 정확한 정보를 가지고 있어도 그 이후의 상태는 단지 확률상으로 예측할 수밖에 없다는 확률론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 고전이론에서 예측의 오차가 전적으로 실험적 측정오차에 기인하는 것과 달리, 현대물리학 이론의 중추인 양자론적 이론에서는 실험적인 측정오차가 전혀 없어도 정확한 측정 자체가 불가능하며, 항상 확률적인 차원에서만 예측할 수 있다는 입장이라는 것이다.

간단한 예를 들면, 자동차가 특정 위치에서 어느 속도로 달리면, 고전물리학의 위치와 운동량의 법칙으로 일정 시간 후에 어디에 있을 것이라는 정확한 예측이 가능해 진다. 그러나 이는 거시세계에서의 시각 일뿐이다. 위 자동차를 아주 작은 입자인 전자(electron)로 가정했을 때, 전자의 위치는 측정한 순간, 바로 다른 곳으로 위치변동이 발생한다. 이는 전자를 관측하기 위한 현미경의 빛이 전자에 충돌하여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금속에 빛을 비추면 전자가 튕겨져 나가 전류가 생성되는 광전효과를 보더라도, 고전이론으로 보면 에너지의 크기에 비례하여 전자가 튕겨 나가는 강도가 달라져야 하는데, 실제는 에너지의 강도가 아닌 진동수의 크기에 의해 강도가 달라지는 현상이 발생됐으며, 이는 기본적으로 에너지를 어떠한 흐름으로 보는 고전물리학에서는 설명이 불가능한 것이었다. 따라서 이 같은 미시세계에서는 양자개념이 도입된 현대물리학적인 해석이 적용돼야 한다. 즉 우리가 눈에 보이는, 거시세계에서의 물리적 현상들은 고전물리학 이론으로도 충분히 설명과 입증이 가능한 반면, 원자이하의 미시세계에서의 현상은 고전물리학 이론만을 가지고는 도저히 설명이 불가능한 다양한 사례가 발생하며, 따라서 이에 대한 설명을 위해서는 현대물리학의 개념이 적용돼야 한다는 것이다.

전자(electron)의 움직임을 파동으로 보고 이를 기술하기 위해 슈뢰딩거가 파동방정식을 만들어 제안했을 때, 이에 대한 여러 의견이 있었다. 여기서 아인슈타인의 절친이었던 막스 보른(M. Born, 1882~1970)이 등장한다. 슈뢰딩거가 파동함수의 제곱이 실제 전자의 밀도에 해당된다는 연속체적인 견해를 나타낸 반면, 보른은 이는 실제 전자밀도보다는 전자가 나타날 수 있는 가능성, 즉 확률이라고 주장한 것이었다. 전자의 경우, 파동은 질량이나 전하가 물리적으로 퍼져나감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전자가 이곳 혹은 저곳 아니면 어떤 곳에서 발견될 확률을 말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보른은 “입자산란의 결과를 구체적으로 예측하는 것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으며, 다만 결과에 대한 확률을 규정할 수 있을 뿐이다. 양자역학에서는 충돌의 결과를 결정하는 개개의 요소는 존재하지 않으며, 따라서 원자세계에서 결정론은 적용될 수 없다”고 말하면서, 이 같은 자신의 이론적 타당성을 절친이었던 아인슈타인에게 설명하고, 물리학계 최고 권위자인 친구의 동의와 지원을 요청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아인슈타인의 회신은 “양자역학은 매우 인상적이만 이를 인정할 수는 없네. 나는 확신한다네. 신은 주사위를 던지지 않는다는 것을” 이라는 확신에 찬 매몰찬 반응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상대성이론을 만든, 위대한 물리학자인 아인슈타인이, 더구나 본인이 양자적 개념을 도입한 광전효과를 입증해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했음에도, 양자역학을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모든 결과는 원인이 있어 만들어진다는 ‘결정론적 세계관’을 가진 그에게 물리적 현상이 확률에 의해 정해진다는 것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었다. 이 일로 인해 둘은 절친에서 평생 앙숙이 됐다. 그러나 결국 승자는 보른이었고, 그는 양자역학 체계 수립의 공로로 1954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했으며, 이후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 IT산업의 근간이 되는 기술이론의 중심에 양자역학이 있게 됐다. 허나 비록 아인슈타인이 착각을 했다고 해도 그것은 현재의 관점일수도 있다. 우리가 얘기하는 확률이란 그 자체도 신이 이미 정해놓은 결정론적 영역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