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재욱 충남대 명예교수

 

봄의 두 번째 절기인 눈이 녹아서 비가 된다는 의미를 지닌 우수(雨水; 2월 19일)가 지나가고, ‘삼라만상(森羅萬象)이 겨울잠을 깬다’는 경칩(驚蟄: 3월 5일)이 다가오고 있다. 따뜻해지는 날씨에 풀과 나무의 싹이 힘차게 돋아 오르고 개구리가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절기인 경칩을 맞이하며, 자연 생태계에서 환경과 어우러져 살아가는 생물 종(種, Species)에 담긴 이야기들이 떠오른다.

제일 먼저 떠오르는 말은 ‘깃대종(Flagship Species)’이다. 깃대종은 특정 지역에 서식하며 그 지역의 생태적, 지리적, 문화적 특성을 반영하는 상징적인 야생 동식물 종을 일컫는 말이다. 깃대종은 1993년에 환경 분야의 국제적 협력을 촉진하기 위해 UN에 설치된 환경 관련 종합조정기관인 국제연합환경계획(UNEP)이 지구 생태계의 생물다양성 보존을 위한 ‘생물다양성 국가 연구에 관한 가이드라인’을 발표하며 처음 제안한 개념이다.

깃대종은 시베리아호랑이, 아프리카코끼리, 팬더, 고릴라 등과 같이 국제적으로 지정된 종들과 강원도 홍천의 열목어, 덕유산의 반딧불이, 거제도의 고란초와 같이 특정 지역에 국한돼 분포하고 있는 종들로 구분된다. 우리나라에는 22개의 국립공원(산악형 18개, 해상·해안형 3개, 사적형 1개)이 관리·운영되고 있는데(국립공원 홈페이지: www.knps.or.kr), 2007년부터 국립공원별로 깃대종이 선정되기 시작해 현재 21개 국립공원에 총 41종의 야생 동식물이 깃대종으로 지정돼 관리되고 있다. 그 실례로 지리산국립공원의 깃대종은 한국 특산식물인 ‘히어리’와 천연기념물 제329호로 지정돼 있는 ‘반달가슴곰’이다. 멸종위기종인 야생 반달가슴곰은 2002년 지리산에서 발견돼 그의 보존을 위한 복원과 환경 개선 사업이 활발하게 추진되고 있다. 다도해해상국립공원의 깃대종은 멸종위기종인 ‘풍란’과 ‘살쾡이’이다.

깃대종의 보존과 복원은 다른 생물들의 서식지 보존에도 크게 도움을 주기 때문에 많은 지자체들도 깃대종의 선정과 보호에 참여하고 있다. 그 실례로 서울시는 맹꽁이와 억새를 깃대종으로 선정해 보전하고 있으며, 대전시는 하늘다람쥐, 이끼도롱뇽 그리고 감돌고기를 깃대종으로 선정해 자연생태계 보호와 깃대종 보전연구를 추진하고 있다. 깃대종은 특정 지역의 생태적, 지리적 특성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종이지만 깃대종이 멸종된다고 해서 생태계가 바로 파괴되는 것은 아니다. 그에 비해 생태계에서 한 종의 멸종이 다른 종들의 다양성 유지에 크게 영향을 미쳐 생태계의 균형이 깨지게 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는데, 이런 역할을 하는 종은 ‘핵심종(核心種, Keystone Species)’이라고 부른다. 핵심종의 대표적인 예로는 ‘수달’을 들 수 있다. 수달은 생태계 내에서 그들이 포식하는 동물의 밀도를 적정 수준으로 조절해 다른 먹이 동물들에게 서식처를 제공함으로써 생물 군집(群集) 내의 종 다양성을 유지시켜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깃대종과 핵심종에 대비되는 종의 개념으로 ‘지표종(指標種, Indicator Species)’이 있다. 지표생물이라고도 불리는 지표종은 특정 지역의 기후나 토양과 같은 환경 상태를 측정하는 척도나 생태 복원의 근거 자료로 이용되고 있다. 지표종으로는 동물 종보다 식물 종이 더 많이 지정돼 있는데, 그 이유는 동물은 환경의 변화에 따라 이동하며 살아갈 수 있는데 비해 특정 지역에 고착해 생활하는 식물이 환경 변화에 더 잘 적응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표식물의 대표적인 실례로는 나무줄기나 바위에 부착해 살아가는 지의류(地衣類)를 들 수 있다. 지의류는 아황산가스의 농도가 0.03ppm 이상에서는 살지 못하기 때문에 대기오염 수준 측정의 척도가 될 수 있으며, 산책할 때 지의류가 눈에 띠면 그곳의 대기가 맑다는 것을 알려주는 지표식물이다. 토양 성분을 알려주는 지표식물로 쇠뜨기나 수영이 자라고 있는 지역의 토양은 산성이고, 거미고사리가 생육하고 있는 곳은 중성이나 알칼리성 토양이다.

후손들에게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환경을 개선해 청결한 삶의 터전을 물려주기 위해서는 환경보전의 바탕이 되고 있는 생물 종(種)의 보존이 바로 생태계의 보전이라는 인식 확산을 위한 콘텐츠 개발과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를 위해 지자체가 앞장서고 정계, 교육계, 언론계 등이 함께 ‘깃대종’과 ‘핵심종’ 그리고 ‘지표종’ 보전의 실현을 위한 다양한 생태교육과 현장체험 프로그램의 개발과 운영에 적극 나설 것을 제안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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