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연 통섭예술인

‘The Rediscovery of Wonder(놀라움의 재발견)’이라는 주제로 최근 미국 롱비치에서 열린 ‘세계를 바꿀 수 있는 아이디어’를 나누는 모임인 TED 콘퍼런스에서 첫 한국인 강연자인 버지니아 공대교수 데니스 홍(40)은 시각장애인용 자동차를 소개했다.

미국의 과학잡지 <파퓰러 사이언스>의 ‘과학계를 뒤흔드는 젊은 천재 10인’으로 뽑힌 로봇공학자인 그는 교통신호를 무선 인터넷 등으로 쏘아주면, 현재와 같은 신호등을 인식할 필요가 없다는 발상으로 비(非)시각인터페이스를 차량개발에 적용했다.

그는 어려서부터 부모님의 격려 속에 새로움의 경험, 전혀 관계없어 보이는 것들을 연결 지어 생각해 보는 경우가 많았다. 예로, TV에서 ‘동물의 왕국’을 보다가 문어가 나오면, 문어의 움직임을 로봇 다리에 활용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달에 사람을 보내는 아폴로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인공위성, 휴대전화가 발달하였듯이 그는 통섭 관점에서 시각 의존도가 높은 차에서 비시각 인터페이스 기술이 성공한다면 다른 분야에서도 쉽게 적용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기술(Technology), 엔터테인먼트(Entertainment), 디자인(Design)의 머리글자로 첨단 기술과 지적유희, 예술과 디자인이 융합하는 행사인 ‘TED’는 그야말로 통섭과 융합의 전형이다.

이번 잔치에는 펩시의 최고경영자(CEO) 인드라 누이, 뮤지션 바비 맥페린, ‘보보스’의 저자 데이비드 브룩스, ‘라이온 킹’ 연출가인 줄리 테이머,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 전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 사령관 스탠리 매크리스털 등이 등장했다.

모든 강연자들이 18분 안에 자신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강연을 마쳐야 하는 TED에서는 그동안 애플의 매킨토시 컴퓨터와 소니의 콤팩트디스크(CD), 스마트폰에 쓰이는 멀티터치스크린 기술 등이 소개된 바 있다. 그야말로 세계를 바꿀 수 있는 새로운 아이디어들이 나오고 이를 지켜보는 많은 이들에게 큰 감동을 주는 행사이다. 즉, 우리가 만들 수 있는 세상이 우리의 생각보다 크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대학에서 공업디자인을 전공한 한나연 씨는 같은 학과 출신들과는 달리 공업디자인과 전혀 무관한 인물 사진을 소재로 한 최근의 개인전에서 자신을 ‘대한민국 땅에서 불법체류자로 살아가는’ 이방인의 모습으로 표현했다.

이방인, 즉, 전공을 벗어난 행보가 눈에 띄는 요즘은 그야말로 탈(脫)장르 시대이다. 며칠 전 양평에 작업실을 갖고 있는 어느 미대 교수는 “요사이 미술은 장르가 따로 없다”고 했다. 장르가 없다는 얘기는 작가들이 다양한 분야를 많이 알아야 한다는 얘기이다.

그런데 요사이 미대를 졸업하는 젊은이들이 미술을 하는 작가의 길보다는 취업을 더 많이 선호한다고 한다. 미술로 살아가기 힘들다는,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지금 여건이 안 되면 나중에라도 하면 되겠지만, 안타까운 마음을 피할 수 없다. 두려움이든 기대감이든, 우리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생각은 언젠가 결국 현실로 나타날 것이다.

전공이 전공답게 빛을 보지 못하는 시대지만 사회적 관점에서 다르게 생각하면 예술적 감각을 산업 현장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표출할 수 있음은 또 다른 가치를 창출한다는 점에서 아쉬워할 것만은 아닐 것 같다. 중요한 것은 미술 전공자들이 그들의 미적 감각을 여러 경로로 용기 있게 제대로 활용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21세기 통섭과 융합의 시대에 ‘기술, 흥행, 디자인’의 합성어인 TED가 추구하는 게 바로 이 점이다. 데니스 홍이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것을 보다 보면 자극을 받게 된다”고 말했듯이 자극을 받고 자극을 주는 역량을 젊은이들이 빨리, 맘껏 키웠으면 한다. 창의력이 국력에 직결되는 시대이다.

최근 뉴스에서 소니, 도요타 등 일본 기업들이 한국기업 타도를 외치며 대반격에 나섰다고 한다. 기술 싸움에서 일본이 지고 있는 것은 ‘기술력이 아니라 융합 능력’이라고 일본 대기업에서 재직했던 어느 한국인은 강조한 바 있는데 이제는 고정관념을 버리는 자가 승리하는 시대이다.

융합하는 능력이 창의력인 시대에 “난 지금 이대로 충분히 괜찮아!”라고하면서 지금 하고 있는 행동을 애벌레처럼 반복한다면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것들을 모두 잃어버릴 수도 있다. 변화하는 방법을 모른다면 “내가 이룬 거의 모든 것들은 실수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고 한 발명가 벅민스터 퓰러의 말을 참조할 필요가 있다.

다행히, 요사이는 넘치는 정보를 잘 활용해 실패의 확률을 대폭 줄일 수 있다. 남의 경험이 나의 길이다. 통섭이 그런 개념이다. 이제는 삶을 결정하는 것은 주위 상황이 아니다. 바로 우리 자신의 태도이다. 없어서 못 하는 게 아니라 하지 않아서 안 되는 것이다. 성공의 비결은 자신감을 갖고 평범한 사람보다 조금만 더 융합적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단, 놀라움의 재발견을 위한 융합은 혼자만 잘 살기가 아니라 궁극적으로 ‘함께 잘 살기’를 추구하는 것이므로 경쟁을 넘어선 이타주의, 협력의 정신이 기본이 되어야 한다. 콩과 공생하는 뿌리혹박테리아가 땅의 힘을 키우는 역할을 하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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