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생의 교단일기] 시험을 없앤 학교가 사교육 부추긴다
[최선생의 교단일기] 시험을 없앤 학교가 사교육 부추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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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용 칼럼니스트

 

초등학생 학부모들 사이에 사교육업체가 주관하는 사설시험을 보는 게 유행이다. 3만원의 응시료를 받는데도 매년 10만명 이상의 학생이 응시한다. 시험이 끝나면 전국차원의 상대적인 등수와 성적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사설시험이 생긴 이유는 2011년부터 ‘사교육 줄이기’ ‘행복한 학교 만들기’ 등의 명목을 내세워 초등학교에서 시험을 폐지하기 시작해, 2013년도에는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마저 폐지돼 모든 시험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중학교마저 한 학기 동안 시험을 보지 않고 진로 탐색을 하는 자유학기제를 운용하다 지금은 1년간 중간, 기말고사를 보지 않는 자유학년제로 바뀌었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 7년이 지난 중학교 2학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시험을 보게 된다.

학교에서 시험을 없애고 수행평가, 쪽지 시험만 보고 성취도로 평가하는 바람에 상대적인 실력을 전혀 알 수 없어 학부모의 불안감이 폭증했다. 아이의 정확한 수준을 알고 특목고, 명문대 진학 준비를 하려는 부모들의 욕구 탓에 사설시험은 필연적으로 생길 수밖에 없다. 이대로라면 앞으로 다양한 분야의 사설시험이 더 늘어날 것이다. 학교 시험을 없애 사설시험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고, 사설시험 열풍이 부니 이를 규제해야 한다는 소리가 나오는 것을 보면 한편의 코미디를 보는 것 같다.

많은 아이가 학교에서만 시험을 보지 않을 뿐, 현실은 사설시험이나 학원에서 시험을 보고 있다. 학교에서 시험을 없앤다고 시험을 보지 않고 행복하게 살지 않는다. 시험을 없애 공부를 덜 하게 하려는 학교의 방침은 서민의 자녀만 따르고, 상위권 학생 대부분은 사교육을 통해 자신의 실력을 다지며 앞서나가고 있다. 교육부의 방침대로 시험 없이, 사교육 없이 지내다 중학교 2학년 첫 시험으로 자신의 실력을 안 다음에는 이미 너무 늦어 손을 쓸 수 없게 된다.

공교육을 죽이고 사교육을 살려 상류층이 사교육을 통해 마음껏 앞서 나가도록 돕는 꼴이다. 오히려 단기간에 실력을 올리기 위해 더 많은 사교육비를 지출해야 하는 모순이 발생한다. 

사교육비 지출이 어려운 흙수저는 학교에서조차 시험을 없애고 공부를 안 시키니 넋 놓고 있다 대를 이어 하류층으로 전락하게 된다. 학습은 습관이 중요하다. 몇 년간 공부 안 하던 아이가 갑자기 깨달아 공부를 잘하는 경우는 극단적인 경우가 아니면 드물다. 놀 때 놀더라도 공부할 때 공부하며 꾸준히 자신의 실력을 발전시켜야 한다. 시험을 앞두고 하는 공부와 목표 없이 하는 공부는 확연히 차이가 난다. 

사람은 대학입학시험부터 공무원 시험, 승진시험, 자격증 시험 등 평생 숱하게 많은 시험을 보고, 도전하고 성취하는 과정을 거치며 살아야 한다. 어릴 때부터 적당한 시험에 도전하고 성취하는 과정을 통해 시험에 대비하는 능력을 터득하게 해야 한다. 시험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성취감과 자존감도 느낀다. 시험에 실패해 좌절감도 맛봐야 실패를 교훈으로 삼고 발전한다.

가장 중요한 대학입시가 내신과 수능이란 시험으로 줄 세우기를 하는데 학교에서만 시험을 없애는 것은 잘못된 정책이다. 대학이나 사회가 줄 세우기로 자리가 결정된다면 당연히 학교에서 줄 세우기를 가르치고, 줄 잘 서는 방법을 가르쳐줘야 사교육이 줄어든다. 학생이 필요로 하는 교육과정을 폐지하니 사설시험이 그 자리를 대신 한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웃고 떠들고 놀기만 한다고 행복한 삶을 산다고 평가하는 것은 혁신학교의 주체인 전교조식 해석이다.

시험 없는 학교는 교사들이 가장 편하다. 1년에 네 번 시험문제 내고, 시험을 보고, 채점하는 과정이 가장 힘든 업무인데 그 업무가 사라졌으니 교사들이 반대할 이유가 없다. 평가가 없어 잘 가르쳤는지 표시가 나지 않으니 열심히 가르치려 하지 않는다. 교사 중에 자신의 자녀를 사교육 시키지 않는 경우도 본적이 거의 없다. 교사가 실력이 떨어지는 아이들에게 학원을 다니라고 권유하는 이유다.

전인교육을 시키기 위해 시험을 없앴다면 인성이라도 좋아야 하지만 지금의 아이들은 공부도, 인성도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았다. 공부와 인성은 공부를 덜 시키면 인성이 좋아지고, 공부를 많이 시키면 인성이 나빠지는 것처럼 시소의 양 끝이 아니다. 인성이 먼저인 것은 맞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다”도 분명히 맞는 말이다. 그래도 성적이 높으면 행복에 다가갈 확률이 높다. 된 사람으로만 살 수 없는 세상이라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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