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감염병 위기 경보 ‘심각’으로 격상

‘감염원’ 중국인 입국금지 조치 안하고

피해자 ‘신천지’를 가해자로 몰아가

“정부 안이한 인식 탓 초동대처 실패”

[천지일보=명승일 기자] “각국이 우한의 전철을 밟지 않기를 바란다. 이미 심각한 나라에서는 더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

국내 코로나19의 확산세가 멈추지 않는 가운데 코로나19 진원지로 2500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한 중국이 한국을 향해 훈수를 둔 말이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의 자매지인 환구시보와 영문판 글로벌타임스는 24일 ‘일부 국가의 바이러스 대응이 늦다’란 제목의 공동사설을 통해 이렇게 지적했다. 환구시보의 후시진 편집인은 지난 22일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중국인의 눈에 한국의 전염병 사태는 매우 심각하다. 한국의 행동이 느리다”는 글까지 올렸다.

국내 코로나19 확산세가 이어지면서 한국인이나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에 대한 입국금지 조치를 하는 나라도 늘어나는 추세다. 이에 대해 정부가 중국인 전면 입국금지 조치를 하지 않는 등 초동 대처에 실패함으로써 지금의 상황을 초래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코로나19 주요사태 일지. ⓒ천지일보 2020.2.25
코로나19 주요사태 일지. ⓒ천지일보 2020.2.25

◆ 전문가들 “중국인 입국 전면금지” 촉구

코로나19 발병이 처음으로 세상에 알려진 건 지난해 12월 초였다. 우한시 위생건강위원회는 화난수산시장에서 27명이 폐렴에 걸렸지만, 사망자는 없다고 발표했다. 국내에서는 지난 1월 8일 코로나19 첫 의심 환자가 발생했다. 정부는 코로나19의 지역사회 확산을 막고자 1월 23~26일 중국 우한시에서 입국한 사람을 대상으로 전수조사를 벌였다.

그러다 우한에서 인천으로 입국한 중국 여성이 1월 20일 코로나19 첫 확진 판정을 받았다. 이때 질병관리본부는 감염병 위기경보 수준을 ‘관심’에서 ‘주의’로 상향했다. 그리고 1월 24일과 26일, 27일에 2~4번째 확진 환자가 계속 발생하면서 정부는 1월 27일 신종플루 이후 10년 만에 감염병 위기경보 수준을 ‘주의’에서 ‘경계’ 단계로 상향했다. 정부는 중앙사고수습본부도 가동했다.

코로나19 사태가 점점 악화되자 대한의사협회(의협) 등은 1월 26일부터 중국 전역을 상대로 입국을 전면 금지해야 한다고 정부에 권고했다. 중국인 입국을 금지해야 한다는 청와대 국민청원도 1월 23일부터 올라오면서 여론도 가세했다. 하지만 정부는 4일 0시부터 코로나19 발원지인 중국 후베이성을 14일 이내 방문하거나 체류한 적이 있는 외국인의 입국만 금지하겠다고 지난 2일 발표했다.

당시 첫 확진자가 나온 후 2주 이상의 시간이 지난 데다 입국 제한 조치를 후베이성으로만 한정했다는 점에서 비난이 쏟아졌다. 이후 국내 두 번째 확진자가 5일 처음으로 퇴원하고, 확진자 28명 중 9명이 15일 격리 해제되는 등 코로나19 확산이 다소 수그러드는 양상을 보였다.

◆ 31번 환자 확진 후 드러난 지역사회 감염

하지만 해외 여행력이 없는 61세 여성이 18일 31번째 확진자로 판정되면서 이전과는 다른 양상으로 전개됐다. 19일 신천지 대구교회에서 31번째 확진자와 접촉한 환자가 무더기로 발생하고, 20일 확진자가 100명 이상 폭증했다. 경북 청도 대남병원에서는 확진자 1명이 사망했다.

그 뒤를 이어 22일에는 신천지 대구교회 관련 환자가 231명, 청도대남병원 관련 환자가 111명으로 증가하고, 3명이 사망했다. 결국 정부는 23일 확진자가 600명 이상 증가하고 사망자가 5명이 발생하면서 감염병 위기 경보 수준을 ‘경계’에서 최고단계인 ‘심각’으로 격상했다. 중국인 전면 입국금지 조치는 이뤄지지 않았다.

따라서 코로나19 사태가 일파만파 확산하는 동안 정부가 너무 안이한 인식으로 접근한 탓에 초동 대처가 실패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오히려 코로나19 사태가 수그러드는 동안 정부는 일상적인 경제·소비 활동에 나서도 된다고 독려했다는 점에서 비난이 집중됐다.

문재인 대통령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COVID-19)으로 위축된 내수경제 활성화를 위해 12일 서울 남대문시장을 방문해 어묵을 구입하고 있다. (출처: 뉴시스)
문재인 대통령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COVID-19)으로 위축된 내수경제 활성화를 위해 12일 서울 남대문시장을 방문해 어묵을 구입하고 있다. (출처: 뉴시스)

◆ 文대통령, 2월 12일 “일상생활 하라”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2일 남대문 시장을 방문해 “가장 중요한 건 정부의 지원보다도 국민이 과도한 불안감을 떨치고 경제활동과 소비활동을 활발하게 해주는 게 근본적인 대책”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13일 주요 대기업 총수들과의 코로나19 대응 경제계 간담회에선 “검역 당국이 끝까지 긴장을 놓지 않고 최선을 다하고 있기 때문에 코로나19는 머지않아 종식될 것”이라고 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19일 정부의 대응에 대해 “아주 합리적이고 실효적으로 차단했다”고 자화자찬하며 “중국 측이 각별히 고마워했다”고 말했다.

이처럼 정상적인 경제·소비 활동을 독려했던 정부가 코로나19 사태 확산의 책임을 신천지로 미루고 있다는 비난이 제기된다.

문 대통령은 21일 신천지 대구교회와 경북 청도대남병원을 언급하며 “예배와 장례식 참석자에 대해 철저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23일에는 “집단 감염의 발원지가 되고 있는 신천지 신도에 대해서는 특단의 대책을 취하고 있다”며 “무엇보다 확진 환자들을 빠르게 확인하기 위해 신속한 전수조사와 진단을 진행하고 있다”고 했다.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24일 인천국제공항 1터미널에서 입국한 중국인 유학생들이 입국장 내 마련된 ‘중국 입국 유학생 안내센터’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관련 안내를 받은 뒤 이동하던 중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천지일보 2020.2.25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24일 인천국제공항 1터미널에서 입국한 중국인 유학생들이 입국장 내 마련된 ‘중국 입국 유학생 안내센터’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관련 안내를 받은 뒤 이동하던 중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천지일보 2020.2.25

◆ “정부, 타인에게 책임 떠넘기지 말라”

이에 미래통합당 황교안 대표는 24일 “어떤 특정집단에 대한 대책보다도 전국적인 사태”라며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떠밀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황 대표는 “전국으로 확산한 사태가 진정될 수 있도록 힘을 모아야 하고 우리가 책임을 져야 한다”며 “특정교단에 대해 얘기하는 건 적절하지 않고 국민 안전을 지키기 위한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런 상황에서 코로나19 사태를 진정시키기 위해 중국인 전면 입국금지 조치를 지금이라도 시행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특히 한국과 달리 중국에서 오는 입국자를 철저히 차단한 다른 나라는 소기의 성과를 올리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중국과 닿은 국경이 5000㎞에 달하는 몽골에서 지난 22일까지 코로나19 확진자가 1명도 발생하지 않았다는 게 대표적 사례다.

중국발 입국자의 입국금지 조치가 필요하다고 6차례나 권고했던 의협의 최대집 회장은 24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여태까지 총체적 방역에 실패한 것”이라고 했다.

최 회장은 “무증상 감염자도 바이러스 배출량이 많고 상당한 감염력을 지닌다는 것이 최근 연구에서 밝혀졌다”며 “중국 등 위험지역의 문을 열어놓고 유증상자들을 검역에서 걸러내는 것으로는 해외 감염원을 효과적으로 차단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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