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필(遺筆)

김사인(1955 -   )

남겨진 글씨들이 고아처럼 쓸쓸하다

못 박인 중지마다 또박또박 이름을 적어놓고

어느 우주로 스스로를 흩었단 말인가

겨울밤

우물 깊이 떨어지는 두레박소리

 

 

죽음은 영원한 이별인가.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한다.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은 가슴을 아프게 한다. 그 죽음이 젊은 죽음일 때 더욱 그렇다. 망자가 남겨놓은 유필인 글씨를 보며, 지상에 남아 힘겹게 살아야 할 아이들을 떠올린다. 그래서 시인은 ‘남겨진 글씨들이 고아처럼 쓸쓸하다.’고 되뇐다. 이 아이들을 두고 너는 ‘어느 우주로 스스로 흩어졌느냐.’고 묻고 있다. 망자에게. 이렇듯 죽음은 막막한 아픔이다.
죽음이 주는 슬픔, 그 절망. 시인은 이러한 죽음에의 비애를 ‘겨울 밤 / 우물 깊이 떨어지는 두레박소리’라고 노래하고 있다. 살아가다 문득 맞게 되는 ‘철버덩’하고 ‘떨어지는 두레박소리.’ 이 청천벽력의 소리를 듣는 것은 이 지상에 남겨진 자들의 어쩔 수 없는 몫이로구나.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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