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정과 냉정

이상호(1954 ~  )

 목월이 타계했다는 부음을 듣고 대전에서 
한달음에 상경하여 흰고무신 비뚤비뚤 
벗어놓고 목월 영정 앞에 엎드려 어깨를 
들썩이며 마냥 흐느껴 울던 박용래 시인

 얼마나 섧게 울었는지
 눈이 퉁퉁 부은 그에게
 이제 그만 눈물 닦으라고
 복사꽃 화사하게 수놓은 손수건 한 장
 슬쩍 던져주던
 냉정한 봄

 

[시평]

목월 선생이 타계를 한지도 이제 40년이 넘었다. 거의 반세기가 다 되어간다. 참으로 세월이 빠르기는 빠르다. 목월 선생의 영정 앞에 와서 흐느끼던 박용해 시인도 목월 선생이 떠난 지 불과 몇 년이 지나지 않아서 또한 타계를 했다. 그 지난날, 이름만 들어도 가슴 어딘가가 따스하게, 또는 저릿저릿 저려오는 듯한, 그런 시인들의 이름이 아닐 수 없다.

박용래 시인은 일명 ‘울보시인’이었다. 누구를 만나도 이내 울음보를 터뜨리는 사람이다. 지방 어디를 가서 다른 시인들을 만나면, 밤이 새도록 우는 시인. 그래서 ‘눈물의 시인’이라고도 불렀다. 설음이 많고, 아픔이 많고, 한이 많고, 또 눈물이 많은, 그래서 늘 세상의 어느 작은 구석이라도 사랑하지 않는 곳이 없는 듯한 시인, 박용래.

목월 선생이 타계를 했다는 부음을 듣자, 흰고무신을 끌고 한 다름에 대전에서 서울로 올라온 박용래 시인. 신발을 벗어놓는 듯 마는 듯, 이내 영정 앞에 엎드려 흐느끼는 박용래 시인. 이 순수한 시인의 눈물을 그 누가 말리랴. 목월 선생 돌아가시던 때는 복사꽃이 한창인 3월 어느 날이었다. 천지에 꽃들은 화사하게 피었는데, 떠나간 시인을 애도하는 울음 또한 천지를 가득 메우고 있구나.

떠난 사람을 생각하며 남아 있는 사람이 애타게 울고 있는 인간사, 그것은 온정이라는 인간의 모습이지만, 이제 그만 눈물 닦으라고, 복사꽃 화사하게 수놓은 손수건 한 장 슬쩍 던져주던 봄 마냥, 자연은 그렇게 냉정하리만치 엄연한 것이리라. 그러나 떠나는 것 또한 자연의 정한 이치임을 알게 된다면, 떠나는 것, 그 또한 냉정한 것 아니겠는가.  

윤석산(尹錫山) 시인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