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준 문화칼럼] 코로나19 확산 정부 책임 크다
[이재준 문화칼럼] 코로나19 확산 정부 책임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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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불가에서 아픈 사람을 치유하는 불상을 약사불(藥師佛)이라고 부른다. 신라 고려 금동제 불상 가운데 가장 많은 숫자를 차지하는 것이 바로 약사불이다. 당시 사람들은 전지전능하다는 관음보살을 만들 때도 손에 보주(寶珠. 혹은 약합)를 손에 들렸다.

최근에 필자는 여러 점의 고대 금동 보살상과 철제 보살좌상을 조사할 기회가 있었는데 모두 약합을 들고 있었다. 얼마나 아픈 사람들이 많았으면 이처럼 약사 불상이 많이 나타나는 것인가.

우리 역사에서 최초의 괴질 기록은 기원전 15년인 백제 온조왕 4년이다. ‘봄과 여름에 가물어 기근이 생기고, 나쁜 병이 유행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의학이 발달하지 못한 옛날에는 괴질이 창궐하면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신라시대 진흥왕을 비롯해 많은 왕자, 귀족들과 염문을 뿌린 여걸 미실은 괴질에 걸려 58세에 죽었다. 당시로서는 그래도 장수한 편이었는데 병마를 피하지는 못했던 모양이다. 당시 괴질이 무엇인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요즈음처럼 치명적인 바이러스에 의한 것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충남 부여 ‘은산별신제(중요무형문화재 제9호)’는 백제 멸망 후 나라를 다시 세우기 위해 희생한 복국군들의 영령을 위로하기 위한 제사다. 그런데 당시 백제 부흥을 실현하지 못하고 패망한 이유가 괴질이었다는 것이다. 은산 유민들이 전사들의 유골을 수습하고 제사를 지내주자 질병과 재난이 사라졌다는 설화가 전한다.

14세기 흑사병은 인류에게 끔찍한 재앙이었다. 1348~1350년 사이에 이 병으로 사망한 사람들은 2500만명에서 3500만명에 달했다. 이것은 그 당시 전체 유럽 인구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숫자였다.

몽골군이 이탈리아 카파 성을 공격할 때 병사들이 흑사병으로 죽어 가자 시체를 포차(砲車.돌을 쏘아 보내는 기구)를 통해 성벽 안으로 날려 보냈다. 성 주민들은 탈출해 고국 이탈리아로 피난 갔다. 그런데 그들과 함께 흑사병균이 유럽으로 옮겨진 것이다. 흑사병균은 상인들의 옷이나 물건 등에 묻어서 사람들에게 옮겨졌다고 한다. 그리고 감염된 환자가 뱉은 가래침, 벼룩에 물린 쥐 등을 통해 유럽에 전파됐다.

인류 최대의 재앙은 스페인 독감이었다. 1918년에 처음 발생해 2년 동안 전 세계에서 2500만~5000만명의 목숨을 앗아 갔다. 페스트가 유럽 전역을 휩쓸었을 때보다도 훨씬 많은 사망자가 발생했다.

중국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누적 사망자가 2천명에 달하며 확진자가 7만 4000명이 넘는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한국도 확진자가 급격히 증가, 국민들을 긴장시키고 있다. 방역망 통제범위를 벗어나 지역사회로 확산하는 상황이며 산업전반에 미치는 영향도 심각한 수준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아직도 진원지인 중국 방문 관광객들의 입국을 금지하지 못하고 있다.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 우를 범하고 있다. 그런데 일부 언론은 대구 사태의 경우 정부의 대응책을 비판하지 않고 특정교회 이름만을 거명하며 신자들을 슈퍼 전파자로 매도하고 있다. 지금 코로나 확진자들은 생업에 종사하거나 일상생활을 하다 본의 아니게 감염된 시민들이다. 코로나를 만들어 퍼뜨린 죄인들이 아니다.

지금 지하철, 식당, 호텔 어디하나 안전한 곳이 없는 것 같다. 그런데도 정부는 근본적인 대응을 하지 않고 국민들 간 증오하고 피하며 다투는 형국을 만들고 있다.

지금 도시 어디를 가도 중국 여행객들이 넘친다. 이를 기피하는 경향 때문에 접객업소들은 모두 폐업 직전이다. 대통령은 중국 국민들의 고통보다는 우리국민들의 고통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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