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기독교역사③] “교황은 태양, 황제는 달” 권력욕이 초래한 가톨릭 부패… 개신교의 등장
[기획-기독교역사③] “교황은 태양, 황제는 달” 권력욕이 초래한 가톨릭 부패… 개신교의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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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교회가 로마로부터 국교로 인정받으면서 교황의 권력도 막강해지기 시작했다. 종교안에서의 권력은 곧 부패를 불러왔고 면죄부 판매, 마녀재판 등 신의 뜻과는 거리가 먼 행위들로 이어졌다. (출처:게티이미지뱅크)
가톨릭교회가 로마로부터 국교로 인정받으면서 교황의 권력도 막강해지기 시작했다. 종교안에서의 권력은 곧 부패를 불러왔고 면죄부 판매, 마녀재판 등 신의 뜻과는 거리가 먼 행위들로 이어졌다. (출처:게티이미지뱅크)

인류역사에서 탄생으로 한 시대의 기준이 된 예수로부터 시작된 기독교가 시작부터 그 부패함을 드러내며 걸어온 세월이 어느덧 2000년이 넘었다. 그간 기득권, 기성, 주류 등 다양한 수식어와 함께 불려진 기독교는 돈‧권력‧성‧정치 등 세상적인 이권과 야합하며 본질을 잃고 분열하며 신뢰를 잃어갔다. 개혁을 부르짖는 목소리는 하늘에 닿았다. 어두운 시대 속, 새 시대 새 종교를 원하는 그리스도인의 절규에 대한 답이 무엇일까. 본지가 예수 이후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기독교역사를 통해 살펴봤다.

가톨릭교회, 로마 국교 인정 후

교황 권력 커지며 부패 싹 틔어

면죄부 매매 횡횡… 신앙은 혼란

 

루터, 성경 강조하며 회개 촉구

종교개혁으로… 개신교회 등장

[천지일보=임혜지 기자] 가톨릭교회가 로마로부터 국교로 인정받은 이후, 종교 안에서 높은 정치적 지위를 획득한 성직자 곧 종교지도자들이 교회를 주도해 나갔다. 특히 당시 ‘교황은 태양, 황제는 달’이라고 할 정도로 교황의 권력이 상당히 커지기 시작했고, 이는 곧 부패로 이어지며 개신교 시대를 열게했다. 

◆ 가톨릭의 로마 국교 인정, 부패로 이어지다

로마 가톨릭교회의 부패가 가장 극단으로 치닫기 시작했던 때는 바로 1513년 레오 10세가 교황으로 즉위한 이후부터다. 당시 면죄부 판매, 성자 칭호 제정, 죽은 자를 위한 기도, 평신도의 성경 소유 금지, 연옥 교리 제정 등 사람의 생각으로 생겨난 새로운 신학들이 교회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부와 명예를 얻기 위한 교황의 욕심은 급기야 추기경 직과 사제직을 팔고, 일반 신자들에게까지 면죄부를 판매하기에 이르렀다.

면죄부는 16세기 초 교황 레오 10세가 성 베드로성당 개축비용 마련을 위해 죄를 면하는 대가로 돈을 받고 발행한 증명서다. 당시에 면죄부를 팔러 다니던 성직자들은 “죽은 사람의 죄까지 사해준다”며 면죄부를 판매했다.

비슷한 시기, 로마 가톨릭은 종교로 잡은 절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신에 대한 일체의 도전과 모독을 반역의 중죄로 다스린다는 명목으로  ‘마녀사냥’에도 관심을 갖기에 이르렀다.

마녀사냥은 12세기 경 로마 가톨릭 개혁 운동에 대한 탄압으로 출발했다. 14세기 후반부터 18세기 중반에 걸쳐 50만명에서 많게는 900만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마녀 혹은 마법사라는 죄목으로 잔인하게 처형됐다. 

완전히 발가벗겨진 여인이 산 채로 매달려 화형을 당하는 장면은 당시 최고의 볼거리로 평가받을 정도였다. 잔다르크와 갈릴레이 등도 모두 이 과정에서 희생을 치른 인물들이다.

중세시대 기득권 종교계가 마녀사냥으로 자신들의 권세를 지켰다면, 현대판 마녀사냥 즉 이단규정이 한국교회의 기득권을 공고히하는 하나의 도구가 되고 있다. 그림은 마녀로 판명된 여인을 화형시키는 장면을 묘사한 삽화. (출처: 위키피디아) ⓒ천지일보 2019.2.11
중세시대 기득권 종교계가 마녀사냥으로 자신들의 권세를 지켰다면, 현대판 마녀사냥 즉 이단규정이 한국교회의 기득권을 공고히하는 하나의 도구가 되고 있다. 그림은 마녀로 판명된 여인을 화형시키는 장면을 묘사한 삽화. (출처: 위키피디아) ⓒ천지일보 2019.2.11

마녀라고 낙인이 찍히면 낙인을 찍는 자가 마음대로 살육했다. 사냥에도 가까운 무자비한 살육엔 이름난 수도사, 신학자, 법학자 등 지식인들이 대거 가담했다.

무엇보다 마녀사냥이 가장 극심했던 때는 가톨릭교회가 가장 약했을 때였다고 전해진다. 마녀사냥은 권위 또는 권력의 공백이 발생했을 때 폭발할 수 있는 종교적 광기를 드러내는 사건이었다.

마녀사냥은 신앙의 자유를 찾아온 미 청교도 사회에서도 자행됐다. 신대륙 식민지가 처한 어려운 현실, 청교도 사회의 완고한 배타성이 원인이 됐다.

15세기 유럽 사회에서 본격화됐던 마녀사냥은 16, 17세기에 절정을 이루다 18세기 들어 계몽사상, 과학발전, 근대 사법체계의 확립으로 사라지기 시작했다.

이러한 시대가 계속될수록 신앙적 혼란은 극심했던 것으로 보인다. 독일관광청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1483년부터 1546년까지 신앙인들은 경건을 찾고 하나님을 경외했지만 중세 말엽에 와서는 악마, 마귀, 악몽 등에 시달렸고 두려움과 걱정으로 암울했다고 한다.

전염병과 자연 재앙은 신앙인들에게 세상의 멸망이 다가왔다고 느끼도록 만들었고, 특히 1520년 술레이만 대제가 터키군을 이끌고 빈을 포위했을 때 신앙인들은 멸망이 왔다고 생각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루터가 95개조 반박문을 붙였던 비텐베르크의 성교회(슐로스교회)의 철문에는 현재 그 내용이 새겨져 있다. ⓒ천지일보DB
루터가 95개조 반박문을 붙였던 비텐베르크의 성교회(슐로스교회)의 철문에는 현재 그 내용이 새겨져 있다. ⓒ천지일보DB

◆ “부패 가톨릭, 더 이상 못참아” 루터의 종교개혁

이런 가운데 독일 비텐베르크의 사제 겸 신학교수였던 마르틴 루터는 교황과 천주교의 잘못된 교리와 부패한 교회 권력 행태를 지적하면서 저항에 나섰다.

마르틴 루터는 1517년 10월 31일 부패한 교회 권력을 비판하는 내용의 대자보를 비텐베르크 교회 문 앞에 내붙이며 가톨릭교회의 개혁에 도전장을 던졌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잘 알려진 ‘95개 반박문’이다. 반박문은 교황의 면죄부 판매에 대한 지적과 함께 교황권의 본질과 신앙에 핵심에 대한 부분까지 포함해 설명하고 있다.

그 일부를 살펴보면 이렇다.

교황은 직권 혹은 교회법의 위세로 부과된 형벌 이외의 어떤 벌이든 용서할 힘이나 뜻을 갖지 못함

교황이 어떤 죄든지 사할 힘은 없음

예수가 외친 ‘회개하라’ 의미는 신자들의 전 생애를 참회하는 것이 돼야함

‘회개’가 성례전적 참회 곧 사제의 직권으로 수행하는 고백과 속죄(고해성사)는 아님

내적인 회개를 해도 육신의 정욕 등 억제가 되지 않으면 무의미함

내적 참회의 형벌은 하늘나라에 들어갈 때까지 계속됨

사제의 권력에 복종하면서도 다른 모든 일에서는 겸손할 줄 모르는 자는 죄가 있음

루터의 종교개혁 핵심은 ‘오직 믿음’ ‘오직 성경’ ‘오직 은혜’ ‘오직 하나님의 영광’ 등 크게 네가지로 요약된다.

◆ 가톨릭 부패 전철 밟기 시작한 개신교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 외침은 중세 유럽을 휩쓸었고, ‘개신교(프로테스탄트)’ 시대를 열었다. 루터 지지자들은 독일과 북유럽, 미국 등 전 세계로 퍼져 로마 가톨릭교회의 부패 개혁을 외쳤고, 10여년에 걸친 투쟁 끝에 1555년 아우크스부르크 제국의회에서 정식 종교로 인정받아 프로테스탄트교회, 즉 오늘날 개신교가 됐다.

이렇게 출현한 개신교는 로마 가톨릭을 사실상 ‘이단시’하는 모습을 보여 왔다. 많은 개신교 신학자 역시 로마 가톨릭은 루터의 종교개혁과 함께 이미 끝난 종교라고 입을 모았다.

하지만 루터의 종교개혁도 결국 미완성이라는 평이 지배적이다. 루터의 종교개혁 이후 장로교, 성공회, 감리교, 침례교 등 개신교 안에서도 수많은 교회와 교파가 난립했고 하나가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종교개혁 2세대라고도 불리며 장로교 창시자로 알려진 ‘존 칼빈(1509~1564)’은 ‘절대예정론’을 주장, 자신과 교리가 다른 이들을 ‘이단’으로 규정해 사형시키는 종교 지도자로서는 보기 힘든 악행들을 일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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