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우 안전사회시민연대 대표

저소득층 서민, 저임금 노동자, 이주민 노동자가 밀집된 곳에 ‘방 쪼개기’가 유행이다. 정부는 방 쪼개기를 강력 단속하겠다고 한다. 시민단체들도 강력 단속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방 쪼개기는 합법적인 방법이 있고 불법적인 방법이 있다. 정부가 공동주택에 한해서지만 거주민의 일정한 동의를 전제로 방을 쪼개는 걸 허용하고 있다. 소형 평수에 대한 욕구에 응답하는 면도 있고 주거난을 완화하는 면도 있다.

불법적인 방법은 말 그대로 지자체의 허가 없이 임의로 가벽을 세우고 방을 쪼개는 방법이다. 당연히 안전이 문제된다. 화재에도 취약해진다. 또 다른 문제는 열악한 주거 공간을 양산한다는 것이다. 벽간 소음도 문제된다. 거주할 수 있는 공간이 만들어지면 그 공간은 누군가 채운다. 쪼개기 전에 비해 밀집된 생활이 될 수밖에 없다. 밀집된 생활은 또 다른 문제를 낳는다. 건강과 환경에 악영향을 주는 건 불 보듯 뻔하다.

불법 쪼개기방에 들어간 가구는 보증금을 회수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경매라도 되면 불법 쪼갠 집에 세 들어간 세입자는 보증금을 찾을 길이 없다. 세입자에게 보증금은 피와 땀이 배어있는 돈이고 길바닥에 나앉지 않을 수 있는 마지막 담보물이다.

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 불법 방 쪼개기가 유행처럼 번져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수요와 공급의 원리를 생각하면 쉽게 이해될 수 있다. 정상적인 주거 공간을 찾아가기에는 조건이 안 되는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쪼개기 방에 들어간다. 돈이 적어 들어갈 데가 없으니 쪼개기 방이라도 들어가지 않을 수가 없다.

수요가 있으니 건물주는 수요 믿고 불법 쪼개기 방을 만든다. 이익이 되니까. 단속이 느슨한 경우가 많으니까 모험을 감행한다. 쪼개기 된 방엔 사람이 들어와 살게 되고 일단 사람이 살고 있으면 사람을 강제로 내쫓기가 쉽지 않은 일이다. 또 불법 쪼개기 방을 폐쇄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미비한 상태라 속수무책의 상황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현재는 이행 강제금을 매기고 있다. 수요가 있으니 공급이 있고 공급이 있으니 수요가 있게 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방 쪼개기 수요 공급 문제를 살펴보면 국가의 부재를 느낄 수 있다. 국가기관은 국민의 위임을 받아 국민의 삶에 해를 끼칠 수 있는 문제가 야기되지 않도록 미리 대비해 국민이 편안하게 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문제가 터지고 나서 대처하려고 하면 늦는다. 문제가 터졌다는 것은 이미 문제가 심각해졌다는 것이고 심각해진 문제는 자체 관성을 가지고 있어 쉽게 해결되지 않는다. 해결을 하려면 그만큼 많은 에너지와 힘이 들어가야 한다. 또 해결 과정에서 또 다른 문제가 야기될 수 있다.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처음부터 잘 대처하는 것이 상책이다.

주거 문제는 잘못 시작되면 난마처럼 얽힐 수 있다. 한국사회가 실증적인 사례이다. 이승만 정권, 박정희 정권 때 주거 문제를 등한시한 결과 오늘의 고통이 잉태됐다. 서구 여러 나라와는 달리 전쟁 끝나고 주거난을 해결하기 위한 대책을 내지 않았다.

조국 근대화와 산업화의 기치를 내건 박정희 정권은 국가 전체 차원의 부의 축적에만 관심을 기울일 뿐 도시로 도시 몰려드는 산업 노동자의 집 문제는 관심이 없었다. 공업화 정책에 따라 서울로 온 청년들은 구로공단의 벌집에 살고 도시로 온 장년 세대는 무허가 판자촌에 살게 됐다. 국가는 벌집 살이나 판자촌 살이를 당연한 것으로 치부했다.

오늘의 ‘쪼갠 집’은 현대판 벌집이고 현대판 판자촌이다. 문재인 정부는 촛불 민심을 등에 업고 역사에 등장했다. 촛불민심은 정치권력 교체에만 관심 있었던 게 아니고 등 따숩고 배부른 세상을 원했다. 일부만 등 따순 것이 아니라 모두가 등 따순 세상을 원한 것이다. 양질의 공공임대주택 확보로 답해야 한다.

집이 필요한데 살만한 집이 없을 때 어떻게 하겠는가. 뻔히 알면서도 ‘쪼개기 방’을 찾지 않을 수 없다. 쪼개기 방에 거주하고 있는 세입자 가구에게 공공임대주택을 제공한다면 쪼개기 방은 사라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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