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1일 오전 10시 32분께 충북 청주시의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제주동부경찰서 형사들에 의해 살인 등 혐의로 긴급체포되는 고유정의 모습. (출처: SBS·세계일보)
지난 6월 1일 오전 10시 32분께 충북 청주시의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제주동부경찰서 형사들에 의해 살인 등 혐의로 긴급체포되는 고유정의 모습. (출처: SBS·세계일보)

전남편 살해 사건 증거 인정

“죄질 불량… 사회서 격리해야”

반면 ‘의붓아들 살해’는 무죄

“의붓아들 사건 범죄증명 부족”

“父다리 눌려 질식 배제 못해”

[천지일보=홍수영 기자] 전 남편을 살해한 뒤 시신을 훼손·유기(살인·시체손괴·은닉)한 혐의로 구속돼 재판에 넘겨진 고유정(37)이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반면 법원은 의붓아들을 숨지게 한 혐의에 대해선 무죄를 선고했다.

20일 법조계에 따르면 제주지법 형사2부(정봉기 부장판사)는 이날 살인 및 사체손괴·은닉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고유정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고유정은 5월 25일 오후 8시 10분에서 9시 50분 사이 제주 조천읍 소재 한 펜션에서 전 남편 강모(35)씨를 흉기로 찔러 살해한 뒤 시신을 훼손하고 유기한 혐의(살인·사체손괴·은닉)로 구속기소됐다.

이후엔 의붓아들 살해 혐의까지 추가돼 재판을 받았다. 검찰은 고유정이 지난해 3월 2일 오전 4~6시쯤 충북 자택에서 잠을 자던 의붓아들(5)의 등 뒤로 올라탄 뒤 의붓아들의 얼굴을 침대 매트리스에 파묻고 뒤통수를 10분 정도 강하게 눌러 피해자를 살해했다고 봤다.

전남편 살해와 관련해 재판부는 “고유정은 극단적인 범행을 계획하고 실행에 옮겼다는 점에서 죄질이 대단히 불행하다”며 “피고인은 유족의 고통은 외면하면서 오히려 피해자가 자신을 성폭행하는 과정에서 저항하다 살해했다는 도저히 납득 안 되는 진술로 범행을 부인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고유정은 전 남편 사건의 경우 전례 없는 참혹한 방법으로 사체를 훼손하고 숨기는 등 범행이 계획적으로 판단된다”며 “범행에 대해 전혀 반성하지 않는 태도로 일관하는 등 고유정을 영구적으로 사회에서 격리할 필요가 있다”고 양형 사유를 설명했다.

◆의붓아들 사건 증거 대부분 불인정

그러나 재판부는 의붓아들 살해 혐의는 무죄로 판결했다. 범죄의 증명이 부족하다는 게 그 이유였다.

재판부는 “간접증거만으로 유죄를 입증할 수 있다하더라도 간접 사실 사이에 모순이 없어야 하고 과학법칙에 부합돼야 한다”면서 “의심사실이 병존할 경우 무죄추정의 원칙을 고수해야 한다”고 이유를 밝혔다.

이어 “피해자의 사망 원인이 비구폐쇄성 질식사로 추정됐으나, 피해자가 같은 또래의 아이들에 비해 왜소하고 통상적 치료 범위 내에 처방받은 감기약의 부작용이 수면 유도 효과임을 고려해 봤을 때 아버지의 다리에 눌려 사망했을 가능성 등을 배제하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또 “현남편의 모발에서 수면제 성분이 검출됐으나 고유정이 차에 희석해 먹였다고 확증할 수 없다”고도 덧붙였다. 의붓아들 사건에 대한 검찰 증거 대부분을 인정하지 않은 셈이다.

살인죄는 경험칙과 과학적 법칙 등으로 피고인이 고의적으로 범행을 저지르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배제할 수 없다면 인정할 수 없는 것이고, 그것이 우리 헌법상 원칙이자 대법원의 일관된 법리라는 게 재판부 설명이다.

의붓아들의 살해 사건이 무죄가 되자 고유정의 현남편이자 피해자의 아버지 A(37)씨는 눈물을 흘리며 한 동안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전 남편과 의붓아들을 살해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고유정이 20일 오후 1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제주지법에 도착해 호송차에서 내리고 있다. 2020.2.20 (출처: 연합뉴스)
전 남편과 의붓아들을 살해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고유정이 20일 오후 1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제주지법에 도착해 호송차에서 내리고 있다. 2020.2.20 (출처: 연합뉴스)

앞서 검찰은 결심공판에서 “피고인 고유정은 아들 앞에서 아빠(전 남편)를, 아빠(현 남편)앞에서 아들을 참살하는 반인륜적 범행을 저질렀다. 두 사건 모두 극단적 인명경시태도에서 기인한 살인으로 전혀 반성의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며 고유정에게 사형을 구형했다.

그러면서 “전남편인 피해자 혈흔에서 수면제 성분인 졸피뎀이 검출됐고, 의붓아들이 누군가에 의해 고의로 살해됐다는 부검 결과가 바로 사건의 스모킹건(결정적 증거)”이라며 구형 이유를 설명했다.

반면 고유정은 최후진술에서 “제가 믿을 곳은 재판부와 변호사님 밖에 없다. 모든 진실을 밝힐 수 있도록 현명한 판단해주시길 바란다”며 “제 목숨, 제 새끼 걸고 아닌 것은 아니다”라고 전남편 살인의 고의성과 의붓아들 살해 혐의를 완강히 부인했다.

특히 고유정은 “타임머신이라도 타고 판사님과 저의 뇌를 바꾸고 싶다”며 “하늘이 알고 땅이 알텐데 어떻게 이런 상상을 했나 할 정도로 검찰의 공소장 내용이 억지”라고 주장했다.

무기징역이 선고된 후 “하고 싶은 말이 있느냐”는 재판부 질문에 고유정은 “하고 싶은 말 없다”고 담담하게 말한 뒤 법정을 빠져나갔다.

의붓아들의 아버지이자 고유정의 현남편인 A씨는 재판 이후 “열흘 후 아이가 사망한지 딱 1년 되는 날이다. 제 아이 죽음의 진실은 어디서 찾아야 하는 것인지 재판부에 한 번 묻고 싶다”며 “고유정이 무죄라면 저는 아빠로서 제 아이 죽음의 원인조차 모르는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눈물로 호소했다.

A씨의 변호사인 이정도 변호사는 “국가나 경찰에 대해 반드시 책임을 묻고 배상을 요구하겠다”며 “경찰이 초동수사를 제대로 했더라면, 유족 조사 외에 좀 더 구체적인 수사를 했다면 결코 이런 결과는 나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이러한 사실오인과 법리 오해, 부당한 판결에 대해서는 항소심에서라도 꼭 사실이 밝혀지길 바란다”며 항소 의지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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