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현의 세상보기] 로또 꿈
[최상현의 세상보기] 로또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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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현 주필

 

 

로또 복권을 사 한 주일을 즐겁게 보낼 수 있다면 매주 로또 한 두어 장 사는 것이 꼭 나쁜 일일 수는 없다. 다만 로또 한 장이 1등에 당첨될 확률이 814만 5060분의 1이므로 로또에 올 인(All-in)하는 것은 어리석다. ‘되면 좋고 안 되면 말고’ 식으로 가볍게 해야지 추첨에 떨어졌을 때의 허탈감에 마음 아파할 지경이 돼서는 안 될 것이라는 것이다.

서민의 삶이 힘들어서인지 서민을 중심 구매층으로 하는 로또 열풍은 광풍에 가깝다. 왜 로또를 사느냐고 물으면 흔히들 ‘로또를 사는 것이 아니라 희망을 산다’고 말한다. 비록 당첨이 안 되더라도 추첨 날을 기다리는 희망과 기대가 있다는 것이다.

로또에라도 기대야 하는 우리 서민의 삶이 얼마나 팍팍한가를 잘 말해준다. 로또가 확률이 낮은 게임이므로 돼도 그만 안 돼도 그만 이렇게 편하게 마음을 먹는 것은 자기 방어적인 영민한 태도다. 그렇더라도 그 마음속에 대박과 횡재의 꿈, 인생 역전의 요행을 바라는 사행심은 강렬하게 꿈틀거린다. 확실히 사람의 본성에는 이런 사행심이 있을 것이다.

로또가 수학적으로는 요행 중에서도 요행인 매우 어려운 확률 게임이지만 매주 몇 사람씩의 억세게 운 좋은 행운아들을 배출한다. 이렇게 당첨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사행심을 더욱 부추긴다. 1에서 45까지 45개 숫자 중에서 6개를 자기 판단으로 선택하기도 하고 컴퓨터가 골라 주기도 하는 게임, 나라고 당첨되지 말라는 법 있나. ‘아무리 어려운들 불가능한 하늘의 별 따기는 아니지 않는가.’

이런 생각이 사람들을 로또에 붙잡아 두는 것 같다. 어떤 사람은 로또 투자 계획을 세우기도 한다. 몇 사람씩 모여 로또 계를 하기도 한다. 마음대로 되는 것은 아니지만 ‘올해 안으로 기필코 끝내야 해. 내년까지는 결코 끌고 가지 않을 거야’하고 의욕을 불태우기도 한다. 사실 모두 행운이 있기를 빌 뿐이다.

로또 당첨에 의한 뜻밖의 횡재가 꼭 사람의 행복을 보장해주지 않는다. 이런 사람이 있었다. 몇 주가 가도록 당첨자가 안 나와 쌓인 엄청난 액수의 당첨금을 타는 횡재를 했다. 상상도 못한 일확천금이었다. 이 사실이 어떻게 알려졌는지 주변의 시선이 갑자기 살벌해졌다. 나누어 먹자는 가난한 친척들의 압력을 견딜 수가 없었다. 목숨이 위태롭다고 느꼈다.

결국 버젓한 직장을 포기하고 집도 세간도 다 팽개친 채 아무도 모르게 외국으로 도피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행복할까. 물도 땅도 말도 얼굴도 낯선 곳에서 행복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돈만 있으면 뭐하나. 로또 당첨 후에 패가망신하거나 돈은 다 탕진하고 불행하게 된 사례들은 얼마든지 더 있다.

그렇지만 이런 얘기들이 로또 열풍을 잠재우지는 못한다. 당첨금을 타서 행복하고 불행하고는 나중의 일이고 당첨이나 돼보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요 피하기 어려운 유혹이기 때문이다. 희망 없는 세상에서 희망을 산다고 생각하는 한 로또는 서민의 생활의 중심에 있을 수밖에 없다.

1969년에 발행되기 시작한 한국 주택은행의 주택복권이 한동안 인기를 누렸었다. 하지만 지금의 로또 열풍은 그것을 훨씬 뛰어 넘는다. 로또는 마치 불특정 다수의 국민, 특히 서민이 참여하는 ‘국민 계’ ‘서민 계’라 해야 맞다.

로또와 같은 복권사업은 특별한 목적 사업에 쓸 재원 마련을 위해 국가가 벌이는 사행 사업이다. 민간이 허가 없이 할 수는 없다. 국가는 이를 철저히 규제한다. 그렇지만 국가가 나서서 하면 합법이고 정당하다. 복권은 본질적으로 국민의 사행심을 이용하는 것이며 또 사행심을 조장하는 것이기 때문에 결코 권장해서는 안 된다.

그럼에도 세계 100여 개 국가에서 각양각색의 복권 사업을 시행해 불특정 다수의 국민에게 세금과 마찬가지의 부담을 지운다. 세금에는 저항이 크지만 사행심에 의지하면 별 저항이 따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복권 사업은 우리의 로또 사업이 말해주는 것과 같이 주로 서민들에게 인기를 끌기 때문에 부담도 서민계층에 돌아간다는 점이다. 미국의 한 연구 조사에 따르면 복권은 고 학력자보다는 저 학력자가, 백인보다는 흑인들이 몇 배나 더 구매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이유로 복권을 ‘빈자(貧者)의 세금’이라고 부른다. 그런가 하면 복권 사업을 세금을 거두어들이기 위한 핑계이며 ‘있지도 않은 희망에 매기는 세금’이라고도 한다.

설(說)에 의하면 한국 복권은 조선 후기의 작백계(作百契), 산통계(算筒契)에서 유래됐다고 알려져 있다. 그렇지만 인간 본성에 내재한 사행심으로 미루어 보아 더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도 있을 것이다.

한국 땅에서 발행된 근대적 의미의 최초 복권은 일제가 패망 직전인 1945년 7월에 발행한 승찰(勝札)이다. 군수 자금 조달을 위해 발행했다.

우리의 주권 정부에 의해 발행된 진정한 최초의 공식 복권은 대한체육회가 1947년 12월 발행한 ‘올림픽 후원권’이다. 다음 해 열릴 제14회 런던 올림픽 참가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발행한 것이다. 그 후 후생복권 애국복권 주택복권 엑스포복권 체육복권 찬스복권 또또복권 자치복권 녹색복권 신용카드복권 등 이루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많은 종류의 복권들이 쏟아져 나왔다.

세계적으로는 고대 로마의 아우구스티누스 황제가 천재지변과 전화(戰禍)의 복구자금 마련을 위해 복권을 발행했다고 한다. 당첨되면 경품으로 노예나 집, 배를 주었다. 근대 복권의 효시는 15세기 말 경 벨기에와 네덜란드에서 사회간접자본 건설비용을 조성하기 위해 발행됐다. 1530년에는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로또(Lotto)라는 이름의 복권이 나왔다. 90개의 숫자에서 5개를 뽑아내는 게임이었는데 여기서 복권을 뜻하는 로터리(Lottery)라는 말과 로또 복권이 유래했다.

이렇게 국가가 국민의 사행심을 이용해 손쉽게 재원을 염출한 역사는 길다. 이에 따라 사람들은 어느 나라를 가릴 것 없이 ‘있지도 않은 희망에 매기는 세금’을 꼬박 꼬박 바치며 살아왔다. 그렇지만 진정 바라는 것은 복권에 목을 매지 않아도 되는 희망이 강물처럼 넘치는 세상 아닌가. 그런 세상은 그저 꿈일 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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