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구 한동대학교 석좌교수

폭우와 폭설이 아무리 쏟아져도 오는 봄을 막을 힘은 없습니다. 어제 오늘 호남과 호서, 영동과 영남에는 장대비가 내리고 설악산과 태백산 일대에는 폭설이 내렸습니다.

3.1절의 주간입니다. 올해도 서울과 모든 주요도시에서 지극히 틀에 박힌 기념식이 열리고 별로 기미년(1919년)의 감격을 되살리는 혼(魂)의 감동은 찾기 힘들 것입니다. 슬프고 안타깝습니다. 오늘 이 겨레와 한반도에서처럼 비폭력 적극저항이 절실하게 필요한 때가 없어서 더욱 가슴이 아픕니다.

“최후의 일각, 최후의 일인”까지 맨손으로 혼의 힘 겨레의 힘, 잃어버린 나라를 다시 찾는 열망으로 일본의 침략에 저항하되 폭력 무력은 아니 쓰는 놀라운 지혜가 우리 민족지도자들에게는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운동정신이 대한민국으로 웅대하게 탄생케 했습니다.

이번 3.1절은 아주 특별한 날입니다. 백범 김구 선생님께서 국무회의를 주재하시고 흉탄에 쓰러져 순국하신 경교장(서대문)에서 기념식을 갖고 그 역사적인 건물을 복원하는 예식을 갖게 됩니다. 해방 후 그 혼란했던 정국에서도 임시정부의 국무회의는 경교장에서 열렸습니다. 잊어서는 아니 됩니다.

혈혈단신으로 아무런 도움이나 권력이 없이 평양으로 올라가서 남북이 따로따로 정부를 세우는 잘못을 막아보려 눈물과 땀을 흘리시고 많은 고통을 감내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런 외롭지만 의로운 일로 인해 극우파의 흉악한 음모에 의해 피를 흘리며 우리 곁을 떠나셨습니다. 경교장의 백범은 무방비, 비폭력 그리고 나라만 생각하는 충정으로 죽음을 맞으셨습니다.

3.1운동의 위력은 컸습니다. 상해 임시정부가 결성되어 빼앗긴 정부가 다시 섰습니다. 중국과 인도로 비폭력 시민항쟁운동이 번져나가고 간디 선생은 큰 감명을 받고 인도 독립운동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치게 됐습니다.

인도에서 5년 동안 유엔의 사역에 봉직하던 70년대에 저는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간디라는 20세기의 큰 스승이 활동하셨던 발자취를 찾아 다녔습니다. 선생께서 그렇게 강하게 외치시고 몸소 살아가신 “아힘사, 비폭력 저항의 정신”을 보고 듣고 피부로 느꼈습니다.

불살생(不殺生)-아힘사는 소극적으로 약한 사람이 총칼이 없어서 항복하는 행동이 아닙니다. 혼의 힘, ‘사티아그라하’ 진리에만 매달려 절대로 진리 밖에는 의지하지 않는 정신의 산물입니다. 진리는 생명입니다. 살아 있는 모든 것들, 사람취급을 못 받는 ‘하리잔’ 천한 계급의 어린이, 부녀자, 노인들을 간디는 하늘이 주신 귀한 사람들로 대접하고 사랑했습니다.

남북의 긴장이 오늘처럼 탱탱하고 언제 어디서 무슨 불장난이 일어날지 예측도 못하는 2011년 이 봄에 생각을 좀 하는 나라와 겨레의 지도자는 없는지 피눈물을 쏟는 마음입니다.

북한이 핵무기를 만들고 실험하는 일이 언제까지 계속이 될지 가슴이 찢어질듯 아픕니다. 그런데 며칠 전(6.25) 우리 국처에서 우리도 핵무기를 보유해야 하겠다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북에 맞서서 핵주권”을 행사할 필요가 있다고 하면서 “미군 전술핵 재배치”를 듣고 나온 네 사람의 우리 의원들이 있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남한에서 이런 생각이 이제야 터져 나온 것이 이상할 정도로 당연한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와 겨레의 지도자들은 깊이 아주 깊이 생각을 해야 합니다. 핵무기는 이제 군사적 국방의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됐습니다.

한번 터지면 그 힘이 너무 강해 원수만 죽이지 않고 우리도 함께 죽어야 합니다. 겨레와 한반도는 살아야 하고 푸른 산 맑은 강은 이대로 천 년 만 년 유구히 생존해야 합니다. 강대국들의 불장난에 희생양이 된 6.25는 다시 와서는 아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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