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역사문화 여행] 그 옛날의 향수, 청계천박물관서 찾아볼까
[지하철 역사문화 여행] 그 옛날의 향수, 청계천박물관서 찾아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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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일보 2020.2.18
ⓒ천지일보 2020.2.18

2호선 상왕십리역
전철역서 버스로 5분 거리 

서울의 젖줄 청계천 역사 담아
6.25 후 강 따라 판자촌 형성
당시 판잣집 모습 재현·체험

[천지일보=장수경 기자] 추적추적 봄비가 내리는 계절이다. 내리는 비는 어느덧 봄소식을 전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추운 겨울은 들어갈 듯 말 듯 자꾸 고개를 내민다. 뭘 입을지 옷 걱정도 참 많이 고민되는 참 변덕스러운 이 계절, 차분하게 둘러볼 곳 어디 없을까. 이럴 때 추천할 장소가 있으니 바로 ‘청계천박물관’이다.

◆한양 가로지르는 명당수

서울 지하철 2호선 상왕십리역에서 버스를 타고 5분여 정도 가면 도착하는 청계천박물관. 우리 인생과 함께했던 청계천의 역사가 담긴 곳이다. 입구 옆의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오면, 청계천의 역사적 여정이 주제별로 전시되어 있다. 무료 전시여서 인근을 지나다가 쉽게 들어와서 편하게 볼 수 있다.

상설전시는 복원되기 이전의 청계천의 모습부터, 10여 년 전 진행된 복원공사, 청계천 복원 이후 도시 변화의 모습을 담아냈다. 옛 추억을 찾아 이곳을 오는 이들도 있다. 도심 인근에 있어서 외국인의 모습도 종종 볼 수 있다.

옛 판잣집의 모습 (출처: 서울역사박물관)
옛 판잣집의 모습 (출처: 서울역사박물관)

역사적으로 보면 청계천은 조선왕조가 새 도읍지로 정한 한양을 동서로 가로질렀다. 청계천이 정비된 것은 1406년 태종 때였다. 당시 자연 상태 하천의 바닥을 쳐내고 넓혔다. 그리고 양쪽 기슭에 둑을 쌓았다.

조선시대 청계천에 공을 들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하나는 풍수지리상으로 서울을 가로지르는 하천인 청계천을 명당수로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에서였다. 또 다른 이유는 하수도로서의 역할이었다.

오늘날 청계천은 서울 종로구에서 중구, 그리고 왕십리까지 이어진다. 도심을 가로지르는 청계천은 수백년 동안 도심의 하천 역할을 했고 오늘날까지 이어오고 있다.

일제강점기에는 도시 인구 증가와 산업화, 생활양식의 변화로 청계천의 수질이 급속히 나빠졌다. 과거 명절이면 풍성했던 천변의 민속놀이는 자취를 감추었다. 청계천의 본류 복개공사가 시작된 것은 1958년이었고 청계천 전 구간은 1977년 복개됐다. 이 장기간의 공사를 통해 청계천은 청계로가 됐고, 도로변에는 상가와 공장들이 들어서 한국의 산업화를 선도해 나가기 시작했다.

청계천 판잣집 체험관 모습 ⓒ천지일보 2020.2.18
청계천 판잣집 체험관 모습 ⓒ천지일보 2020.2.18

◆소설 속 청계천의 모습은

소설 속에도 청계천 모습이 잘 담겨있다. 1930년대에는 서양과 일본에서 들어온 다양한 문물이 관광, 상업, 교통 전반을 바꿨다. ‘모던보이, 모던걸’들이 거리에는 활보했다. 당시 청계천변에 살았던 소설가 박태원은 1936년 잡지 ‘조광’에 소설 ‘천변풍경’을 연재했다. 이 소설에는 이곳에 사는 사람들을 마치 기록 영화 찍듯 묘사해 놓았다. 이 소설은 남자들이 주로 모이는 이발소와 여성이 모이는 빨래터를 무대로 동네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50여개 삽화로 표현했다. 소설 속 인물들은 1930년대 중반 급격한 근대화의 물결과 전통적 인습 사이에서 방황했는데 이는 도시 서민들의 삶을 고스란히 표현해 놓았다.

1934년 발표된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도 있다. 이 소설에는 홀어머니와 함께 사는 미혼의 소설가 구보가 어느 날 집을 나서서 경성의 거리를 배회하는 과정이 담겼다. 일명 ‘도시소설’로 불리는 이 소설은 구보가 1930년대 경성거리의 근대 시설과 문물을 접하고, 사람들을 만나면서 느끼는 내면의 감정을 잘 표현했다.

◆주거지이자 시장이던 ‘판잣집’

청계천 박물관 앞에는 판잣집이 재현돼 있다. 향수가 담긴 만화책, 생활용품 등이 진열돼 있는데 판잣집을 체험해 볼 수 있는 공간으로 마련됐다.

조선 후기 청계천 다리 밑과 오간수문 양쪽의 가산(假山)에는 거지들이 살았다. 근대화 과정에서 서울에 인구는 급증했고, 이때마다 청계천은 가장 가난한 사람들에게 쉴 자리를 내주었다. 한국 전쟁 이후에는 월남민들과 상경민들이 청계천변에 판잣집을 짓고 살았다. 당시 판자촌은 주거지인 동시에 시장이고 산업지대였다. 천변 사람들은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물품을 사고팔았다. 폐품은 재활용해 새 상품을 만들었다. 판잣집은 이 같은 옛 풍경을 느껴볼 수 있는 곳이었다. 다만 최근 발생한 코로나19로 인해 판잣집 테마존 내부 체험은 당분간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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