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근 부장판사. (출처: 연합뉴스)
임성근 부장판사. (출처: 연합뉴스)

사법행정권 남용 재판개입 혐의

法 “위헌적 행위는 맞다”면서도

“죄형법정주의 위배… 죄 아냐”

[천지일보=홍수영 기자] 이른바 ‘사법농단’ 의혹에 연루돼 재판에 넘겨진 임성근(56) 서울고법 부장판사에게 1심이 무죄를 선고했다. 사법농단 관련 벌써 3번째 무죄 판결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송인권 부장판사)는 14일 사법행정권을 남용해 재판에 개입한 혐의(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로 기소된 임 부장판사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임 부장판사는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로 재직하면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지시로 2015년 3~12월 가토 다쓰야 전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의 재판에 청와대의 입장이 반영되도록 한 혐의로 기소됐다.

가토 전 지국장은 ‘세월호 7시간’ 관련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바 있다.

재판부는 “임 부장판사가 임 전 차장 요청으로 가토 다쓰야 사건을 맡은 재판장에게 ‘여성 대통령이 모처에서 다른 남성을 만났다는 부분은 아주 치명적이다. 국민의 관심 많으니 이 부분이 재판 과정에서 드러나면 그걸 명확히 정리하고 가는 게 좋다’고 말한 사실이 인정 된다”며 “이런 중간 판단 요청은 그 자체로 특정 사건의 재판 내용이나 절차 진행을 유도하는 재판 관여행위로 법관의 독립을 침해하는, 또는 침해 위험이 있는 위헌적 행위”라고 지적했다.

임 부장판사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소속 변호사들의 판결 내용 일부를 수정·삭제하라고 재판부에 지시한 혐의도 받는다.

재판부는 “판결문 수정 요구는 그 자체로 계속 중인 재판에 대해 결과를 유도한 걸로 재판관여행위에 해당해 법관 독립 침해로 위헌적이고 형사소송법상 위법한 행위”라고 꼬집었다.

또 임 부장판사는 재판부가 정식재판에 회부하려 했던 프로야구 소속 임창용·오승환(원정도박 혐의)씨를 약식명령으로 사건을 종결하도록 종용한 혐의도 받고 있다.

재판부는 이 혐의 역시 재판 관여가 맞다고 봤다.

그러나 이 모든 혐의에 대해 직권남용죄는 아니라고 재판부는 판결했다.

재판부는 “지난달 31일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나온 개별의견과 같이 임 부장판사의 행위가 위헌적이라는 이유로 직권남용의 형사처벌을 지우는 것은 피고인에 불리하게 범죄구성요건을 확장하는 것”이라며 “죄형법정주의에 위배된다”고 밝혔다.

앞서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 등의 ‘문화계 블랙리스트’ 상고심에서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죄에서의 ‘의무 없는 일’의 해석을 엄격히 했다.

이날 재판부도 임 부장판사의 재판 관여 행위로 인해 의무 없는 일이 발생했다고 볼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천지일보DB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천지일보DB

이어 “임 부장판사의 재판관여 행위는 지위를 이용한 불법행위로 징계사유에 해당한다고 볼 여지는 있다”면서도 “이를 직권남용으로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합의부의 사건은 합의에 따라 심판하므로 재판장의 의사와 독립된 것”이라며 “각 사건 재판장은 피고인의 요청을 무조건 따르지 않고 독립적으로 합의해 결정했다”고 덧붙였다.

이번 재판은 사법농단으로 기소된 전·현직 판사에 대한 3번째 선고다. 현직 판사로는 2번째다. 그 가운데 유죄를 선고받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전날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유영근 부장판사)는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로 기소된 신광렬(55)·조의연(54)·성창호(48) 부장판사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2016년 ‘정운호 게이트’ 당시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였던 신 부장판사는 판사들에게 미친 수사망을 물리기 위해 영장전담 재판부를 통해 검찰 수사상황과 앞으로의 계획을 수집, 법원행정처에 보고한 혐의를 받고 있다. 조·성 부장판사는 당시 영장전담 판사로서 수사기밀을 보고한 혐의를 받는다.

지난달 13일엔 특정 재판의 경과 등을 파악하는 문건을 만들고, 소송 당사자들의 개인정보가 담긴 보고서를 유출한 혐의로 기소된 유해용(54)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이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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