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병 정치평론가

해방 이후 이식된 ‘미국식 민주주의’ 제도는 한국사회에 나름 뿌리를 내리며 ‘한국적 방식’으로 계속 진화하고 있다. 그러므로 당연히 긍정적인 것도 또 부정적인 것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무엇이든 한국의 토양에서 살아남은 생명력 강한 것들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생명력 강한 ‘독초’를 꼽으라면 양당체제가 아닐까 싶다. ‘그들만의 리그’로 만들어 거의 완벽하게 양당 중심의 기득권체제를 구축했기 때문이다.

군사정권시대를 지나 민주화 이후에도 양당 기득권체제는 지역과 이데올로기, 세대와 계층 등을 두 쪽으로 갈라서 서로 권력을 뺏고 뺏기는 방식으로 진화했다. 여기에 정치제도는 물론 자본과 노동, 언론과 지식 그리고 여론까지 가세함으로써 양당 기득권체제는 갈수록 더 공고화된 셈이다. 전형적인 ‘진영 대결’이라 하겠다. 선거 때만 되면 두 정당이 싸우고 대결하지만 실상은 그들 자체가 하나의 기득권체제였다. 말 그대로의 ‘적대적 공생관계’를 통해 기득권 양당체제를 구축해 온 것이다.

기득권 양당체제의 가장 큰 폐해는 정당정치가 민의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기득권을 쥔 양당체제는 그 민의마저 둘로 나눠버렸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권은 시도 때도 없이 싸우다가도 때만 되면 다시 ‘내편과 네편’을 가르는 ‘프레임 전략’을 폈다. 그것은 양당 기득권체제가 가진 ‘전가의 보도(寶刀)’였다. 그 프레임 전략으로 기득권 양당체제는 선거 때마다 늘 일등 아니면 이등이 되면서 서로 권력을 주고받았다. 반대로 그들 기득권 양당체제에 반대하는 정치세력은 태어나기도, 생존하기도 어려울 수밖에 없다. 지금의 바른미래당 현실은 그 고단한 정치역정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최근 작은 변화 하나가 양당 기득권체제를 위협하는 통로가 되고 있다. 비록 소규모이고 그 마저도 반쪽짜리긴 하지만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도입된 것이다. 득표율 3%를 넘기면 최소 2~3석의 비례대표 국회의원을 배출할 수 있다. 그렇다보니 21대 총선을 불과 두어 달 남겨 놓은 이 시점에서 스토리와 테제(These)를 가진 작은 정당들이 대거 등장할 채비를 갖추고 있는 것이다. 시대전환, 여성의당, 기본소득당, 교육당 등 이름만 들어도 그들의 테제를 알 수 있는 그런 정당들이다. 오는 4월의 21대 총선을 맞아 얼어붙은 한국 정당정치에도 새롭고 알록달록한 봄꽃들이 만개할 듯 보여 더 없이 반갑다.

정당정치가 발전된 유럽만 보더라도 기득권 양당체제의 몰락은 거대한 시대변화의 흐름처럼 보인다. 대통령까지 배출한 프랑스를 비롯해 스페인, 이탈리아, 그리스, 오스트리아 등에서는 최근 다양한 형태의 신생정당이 기득권 정당체제를 흔들면서 급부상하고 있다. 이런 흐름은 슬로바키아 등 일부 동유럽 국가들로 확산되고 있는 추세다. 이것은 이념과 계층을 바탕으로 수 십 년간 기득권을 독점했던 기성 정당체제의 위기요 동시에 새로운 정치질서를 향한 도전과 투쟁으로 풀이된다. 기존의 기득권 정당체제로는 탈이념과 시대변화 그리고 새로운 가치를 담아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한국의 상황도 예외가 아니다. 양당 기득권체제에서 벌어지고 있는 그들만의 ‘무한 정쟁’에 진저리 난 국민의 분노가 이미 정점에 도달했다. 네가 죽어야 내가 사는 방식이라면 그것은 이미 정치가 아니다. 매 시기마다 진영으로 갈라서 내편과 네편으로 나누는 정치라면 그건 ‘전쟁’에 다름 아니다. 그런 곳에 대화가 무슨 필요가 있으며 상식이나 품격인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저 상대방을 비방하고 우기고 왜곡하고 폄하하면서 망가뜨리는 게 상책이다. 그 마저도 쉽지 않다면 고소하거나 고발하면 된다. 이런 정치가 펼쳐지고 있는 곳에 무슨 미래가 있고 희망이 있겠는가.

그럼에도 현행 헌법과 선거법은 이런 양당 기득권체제의 지속성을 담보해 왔다. 따라서 헌법을 바꾸고 선거법을 바꾸려는 시도가 왜 그리도 어려운지를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정치권 안팎에서 10년 이상을 논의해 왔던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대표적 사례다. 양당 기득권체제를 흔들 수 있다는 이유로 만신창이가 돼 버렸다. 한국당은 아예 반대했고 민주당은 조이고 비틀어서 누더기로 만들어 버렸다. 양당 기득권체제의 속살이다.

비록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만신창이가 되고 누더기처럼 변질되고 말았지만 그럼에도 작은 통로를 통해 한국정치의 햇살을 비추고 있다는 생각이다. 그 작은 통로를 통해 여성과 청년세력 그리고 기본소득과 교육, 환경 등의 테제를 지닌 새로운 정치세력의 등장은 그것만으로도 풍성하고 건강하다. 그들끼리 때론 경쟁하고 연대하면서 양당 기득권체제가 외면했던 수많은 아젠다를 공론화 시킬 것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여론을 얻는다면 양당 기득권체제를 붕괴시키는 핵심 동력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성공보다 실패의 가능성이 훨씬 높을 것이다. 민주화 이후 30년 이상을 누려왔던 양당 기득권체제를 어느 한 순간에 무너뜨린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작은 정당들이 설사 이번 총선에서 비례대표 의석을 얻는다 한들 그 숫자도 많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이번 총선에서도 막강한 양당 기득권체제가 재구축되고 그 주변부에 일부 작은 정당들이 포진되는 모양새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21대 국회에서 새로운 정치세력의 등장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지난 총선에서 국민의당이 열어놓은 양당 기득권체제의 파열구를 그들 새로운 정치세력들이 더 확장시킬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동토의 대지에서 작지만 새로운 꽃들이 피어난다면 그건 봄날이 가까워졌다는 징표다. 얼어붙은 한국 정당정치에도 봄이 찾아오는 것일까. 4월, 새봄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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