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속으로] 레슬링과 ‘상남자’ 커크 다글라스
[스포츠 속으로] 레슬링과 ‘상남자’ 커크 다글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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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수 한체대 스포츠언론정보연구소장

선 굵은 외모와 강력한 근육질, 날카로운 눈매와 끊어지는 허스키한 목소리.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즉시 알아볼 수 있는 강한 인상을 지녔다. 지난 주 10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커크 다글라스는 독특한 외모와 행동으로 뚜렷한 연기를 펼친 세계 최고의 배우였다.

뚝 튀어나온 광대뼈와 턱에 살짝 패인 보조개까지 지닌 그는 억센 남자의 표상이었다. 영화 ‘스파르타쿠스’(1960년)에서 이러한 외모는 절묘하게 잘 어울렸다. 그가 맡은 역할은 로마시대, 노예 해방을 부르짖으며 매번 목숨을 건 승부를 펼쳐야 했던 검투사였다. 검투사끼리 피가 튀기고 살점이 떨어져 나가고, 사자와도 싸워야만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던 비정한 승부사의 모습을 보면서 그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었다.

1940년부터 1970년대의 할리우드 영화 황금시대를 장식한 그는 버트 랑카스타, 그렉고리 팩, 스티브 맥퀸, 폴 뉴먼 등과 함께 세계적인 배우로 이름을 날렸다. 특히 남성적인 매력을 발산한 것으로 유명했다. 로마시대를 배경으로 한 대형 스펙터클 ‘스파르타쿠스’를 포함한 영화에서 영웅으로 활동할 수 있었던 것은 그만이 갖고 있는 남성미 때문이었다. 자신만의 강점을 캐릭터로 삼아 할리우드에서 누구도 넘볼 수 없던 영역을 만들어냈던 것이다.

전형적인 마초 기질의 그가 격투기 스포츠인 레슬링으로 강건한 몸을 만들었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된 것은 최근 그의 부고를 통해서였다. 그는 레슬링으로 다진 당당한 체격 때문인지 전쟁 영웅으로 잘 맞았다. 생전에 발간된 자서전 ‘래그맨(넝마주이)의 아들’에서 “연기는 엄청난 훈련이 필요하며, 환상을 만들어내는 인간의 기술”이라며 “배우는 절대 자신이 연기하는 캐릭터에서 길을 잃어버려서는 안 된다. 관객들도 자신의 삶을 살듯이 연기자도 본성적으로 기질을 갖고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영화배우로서 그는 데뷔작 ‘챔피언(1949년)’에서 은퇴한 프로복싱 선수 역할을 하기 위해 몇 달동안 새도우복싱과 스파링훈련을 하기도 했다. 대표적인 서부영화 ‘OK 목장의 결투(1957년)’에서는 찰나의 순간도 놓치지 않는 최고의 총잡이 연기를 보여주기 위해 6연발 권총 사격훈련을 집중적으로 했다고 한다.

그는 1916년 12월 9일 뉴욕 암스테르담에서 알바니에서 북서쪽으로 약 35마일 떨어진 작은 도시에서 태어났다. 러시아 유대인 이민자의 아들인 그는 어릴 적 극심한 가난과 싸워야했다. 그는 자서전에서 “마을에서 가장 가난했으며 날품벌이를 하며 생활을 해야 했다. 나는 넝마주이의 아들이었다”고 밝혔다.

신문배달, 식당일 등 40개 직업 아르바이트를 하며 힘든 어린 시절을 보냈던 그는 뉴욕주 캔튼 로렌스대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교통비가 없어 히치하이킹으로 가야만했다. 레슬링은 대학생활에서 그에게 희망과 자신감을 불어 넣어주었다. 그는 레슬링 선수가 되면서 체력적으로 강해졌고, 유대인이라는 차별을 딛고 3학년때 학생회장으로 선출됐다. 그 대학에서 유대인이 학생회장이 된 것은 그가 처음이었다. 그리스 고전에서 레슬링은 신들에 대한 예배 의식 전 암흑세계의 힘을 물리치기 위해 경건한 의식 속에서 치러졌던 경기라는 점 때문에 그를 비롯한 여러 유대인 학생들이 체력적으로 단단해지고 정신력을 강화하기 위해 레슬링을 배웠다고 한다.

가난한 어린 시절을 딛고, 불우한 프로복싱 선수의 삶을 다루었던 ‘챔피언’에서 성공적인 출발을 했던 당대의 최고 남자 배우 커크 다글라스가 한 시대를 풍미할 수 있었던 데는 청년 시절 배운 레슬링과 맺은 인연이 적지 않은 힘이 됐다는 사실은 특기할만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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