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칼럼] 인권으로서 환경권
[인권칼럼] 인권으로서 환경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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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겸 동국대 교수

1962년 미국 선교사 레이철 카슨이 무분별한 화학품의 남용으로 생태계 파괴를 경고한 ‘침묵의 봄’을 출판하면서 환경문제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인간을 둘러싼 환경의 훼손으로 인해 발생한 환경오염은 인간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환경문제가 중요한 이슈가 됐다. 1972년 로마클럽은 환경으로 인한 성장의 한계라는 보고서를 만들었다.

국제연합은 1972년 스웨덴에서 제1회 UN 환경회의를 개최했고, 여기서 환경권도 인권이라는 스톡홀름 선언을 했다. 이후 환경에 관한 권리는 인권이 됐고, 세계 각국은 환경에 관해 헌법에 명문으로 규정을 둘 것인지 고민했다.

우리나라는 1980년 헌법을 개정하면서 제33조에 “모든 국민은 깨끗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를 가지며”라고 해 환경권을 명문화했다.

현행 헌법은 제35조에 환경에 관하여 규정하면서, 제1항에서는 “모든 국민은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를 가지며”라고 했고, 제2항에서는 “환경권의 내용과 행사에 관하여는 법률로 정한다”라고 해 환경권의 구체적 내용은 법률에 유보하고 있다. 현행 헌법조항은 구 헌법의 규정과 달리 환경권에 건강을 추가했고, 환경권의 내용과 행사에 대해서는 법률에 구체화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헌법에 환경권에 관한 규정이 도입되기 전에도 이미 환경문제가 심각하고 중요한 문제라는 인식은 있었다. 우리나라는 이미 1960년대부터 공해방지법을 제정해 환경오염의 심각성을 어느 정도 인식하고 있었다. 물론 당시에는 환경오염에 관한 인식보다는 공공에 해를 가져오는 공해라는 인식 속에서 환경오염 문제를 다루었다. 그러다가 세계적으로 환경권이 하나의 인권으로 인정되면서 1977년에는 환경보전법이 제정됐고, 1980년에 오면서 환경정책기본법과 개별환경법들이 제정됐다.

환경문제가 인류사회에서 점차 중요한 문제가 되고 있었지만, 산업발전으로 경제발전을 추구하면서 경제성장과 환경오염을 방지하기 위한 환경보전이 양립할 수 있는지 여부를 놓고 국가 간에 갈등이 컸었다.

소위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간에는 국가의 성장추구와 환경보전을 놓고서 어디에 중점을 둘 것인지 치열한 다툼이 있었다. 1992년 브라질에서 이 문제를 놓고 국제회의가 개최됐고, 이 결과 경제성장과 환경보전을 위한 리우선언이 있었다.

리우선언 이후 국제사회는 기후변화협약과 생물다양성협약 등 수 많은 환경조약을 체결하면서 환경보전과 지속가능한 개발이란 명제의 실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헌법에 환경권을 명문화하고 있으며, 환경 각 분야에 대한 법제를 구축해 환경보전에 힘쓰고 있다. 그런데 헌법상 환경권은 사회권으로 헌법규정으로부터 직접적으로 환경권을 보장받을 수 없다.

환경정책기본법은 환경을 자연환경과 생활환경으로 나누고 있으며, 자연환경은 지표·지하·해양·지상의 모든 생물과 이들을 둘러싸고 있는 비생물적인 것을 포함한 자연의 생태계와 자연경관 등을 말하고, 생활환경은 대기, 물, 토양, 폐기물, 소음·진동, 악취, 일조(日照), 인공조명, 화학물질 등 사람의 일상생활과 관계되는 환경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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