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산=연합뉴스) "훈련소에서는 항생제를 주고 양호실에만 있으라고 해요, 외부 병원으로 잘 안보내주는데 약을 보낼 수 있는 방법을 알아봐 주세요"
지난 27일 충남 논산 육군훈련소에서 숨진 채 발견된 훈련병 정모(21)씨는 유족들에게 남긴 쪽지를 통해 "중이염 때문에 고통스럽다"는 마지막 말을 남겼다.

입대하지만 않았어도 원하는 병원에서 마음껏 치료받을 수 있었을 정씨는 중이염의 고통을 잊기 위해 훈련소 화장실에서 극단적인 방법을 택할 수 밖에 없었을까.

28일 유족 측에 따르면 이날 부검을 위해 국군통합병원에 안치된 정씨의 옷 속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기 전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워낙 고통스럽다, 식물인간이 되면 안락사를 시켜주고, 화장을 해달라"는 글이 적힌 메모가 발견됐다.

중이염 때문에 고민한 흔적은 정씨가 숨지기 전인 지난 10일 어머니에게 써 놓은 '부치지 못한 편지'에도 고스란히 나타나 있다.

유족은 지난 27일 저녁 늦게 이 편지를 훈련소 측으로부터 건네 받았다.

정씨는 "설 연휴기간 급성 중이염에 걸렸다"며 "엄마한테 걱정 안 끼치려 일부러 말 하지 않으려 했는데 너무 답답하고 속상해서 말하게 됐다"는 말로 편지글을 시작했다.

그는 "오른쪽 귀가 먹먹하고 물이 들어간 것처럼 그렇게 들린다"며 "오래 달리기도 100중에 3등 했고, 힘도 좋아서 훈련도 정말 잘 받을 수 있는데 중이염에 걸려서 너무 속상하고 마음고생 하고 있다"고 전했다.

또 "생활은 괜찮은데 이러다가 귀가 잘못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며 "나중에 아예 안 들리면 어떡할지 이런 생각도 들고 컨디션도 귀 때문에 더 나쁜 것 같아 미치겠다"는 속마음을 표현했다.

그는 "훈련 잘 받을 수 있는데 귀 때문에 가슴이 너무 답답해서 죽을 것 같다"며 "여기서 혹시나 부당한 취급이나 일이 있으면 진짜 마음 독하게 먹고 미친 짓을 해서라도 뚫고 나가겠다. 조금만 더 커서 사회를 좀 더 알고 군대 올 걸 너무 많이 후회된다"는 말로 편지를 마무리했다.

자신을 정씨의 삼촌이라고 밝힌 한 유족은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저렇게 고민을 하고 있던 아이에게 약만 처방하고, 복귀하면 훈련하는 절차가 반복된 것으로 보인다"며 "체력도 좋은 아이였는데 '꾀병'으로 바라보는 군 당국의 시선과 언행때문에 마음에 상처를 입었다. 결국, 군 당국이 조카를 극단의 선택을 하도록 내몬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육군훈련소 측은 "유족들의 안타까운 마음은 충분히 이해를 하고 있으며, 현재 대전 국군병원에서 부검일정을 논의하고 있다"며 "헌병 수사대에서 정씨의 외진기록 등을 파악하고 있으나 자세한 것은 수사가 끝나야 설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정씨가 중이염을 앓고 입소했으며, 고통을 호소해 절차대로 외래진료하고 약 처방도 했다"며 "하지만 사고 후 확인해보니 약을 복용하지 않아 사물함에 약이 그대로 있었다. 훈련소 측에서는 절차대로 대응해 별문제가 없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덧붙였다.

정씨는 지난 27일 오전 11시26분께 충남 논산시 연무대읍 육군훈련소의 한 생활관 화장실에서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지난달 24일 입대한 정씨는 내달 8일 모든 훈련을 마치고 일선 부대에 배치될 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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