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상’ 받는 봉준호 감독[로스앤젤레스=AP/뉴시스] 봉준호 감독이 9일(현지시간) 미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의 돌비 극장에서 열린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영화 '기생충'으로 작품상을 받으며 환호하고 있다.
‘작품상’ 받는 봉준호 감독[로스앤젤레스=AP/뉴시스] 봉준호 감독이 9일(현지시간) 미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의 돌비 극장에서 열린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영화 '기생충'으로 작품상을 받으며 환호하고 있다.

영리한 봉준호의 수상 소감
아카데미 존중하며 녹아들어
센스 있는 번역·통역 뒷받침
언어의 벽 넘어 전세계 홀려

[천지일보=이예진 기자] 기생충이 드디어 일을 냈다. 무려 아카데미 시상식 4관왕의 기염을 토해낸 것이다.

기생충은 10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할리우드 돌비극장에서 열린 제92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오스카)에서 작품상·감독상·각본상·국제영화상을 받으면서 전 세계 영화인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는 101년 한국영화사 최초의 오스카 수상이었으며 ‘백인 잔치(#OscarSoWhite)’라고 비판받는 오스카의 다양성을 위한 노력이 드러나는 현장이었다.

엄청난 돌풍과 함께 트로피를 거머쥔 기생충이 몰고 온 화제를 정리해봤다.

◆‘스코세이지 키드’ 자처한 영리한 수상 소감

먼저 기생충을 연출한 봉준호 감독의 오스카 수상소감이 화제를 낳았다. 봉 감독은 각본상과 국제영화상에 이어 감독상까지 거머쥐자 한국어로 “좀 전에 국제영화상을 받고 오늘 할 일은 끝났다고 생각하고 있었다”면서 새로운 수상소감을 전했다.

그러면서 “영화 공부를 할 때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이라고 책에서 읽었다. 그 말은 마틴 스코세이지의 말이었다”고 말하며 전설적인 영화감독 마틴 스코세이지에 헌사를 바쳤다. 사실상 봉 감독의 오늘을 이끈 숨은 주역은 스코세이지 감독이었다는 고백이자 최고의 찬사였다. 카메라는 스코세이지 감독을 비췄고, 참석자들은 모두 기립하며 스코세이지와 봉 감독에게 열렬히 박수를 보냈다.

봉 감독의 수상소감은 여러모로 영리했다. 그는 미국 영화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스코세이지를 치켜세우며 자신이 아카데미의 선택을 존중했다. 동시에 자신이 ‘스코세이지 키드’임을 강조하면서 이 자리에 앉아있는 아카데미 회원들과 다를 바 없는 문화의 영향을 받았다는 점을 어필해 이질적인 무언가가 아니라는 점 또한 내비친 것이다.

◆수상의 숨은 공로자 통역·번역

기생충은 외국적인 요소가 전혀 들어있지 않은 토종 한국 영화다. 봉 감독이 “전 작품인 ‘옥자’는 한미 합작 프로덕션이었는데 그 영화보다 한국적인 것들로 가득 찬 기생충이 여러 나라에서 반응을 얻었다”며 “주변에 있는 것을 들여다봤을 때 오히려 가장 넓게 전 세계를 매료시킬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고 말할 정도였다.

이러한 한국적인 기생충을 영어 자막으로 옮긴 이는 한국에서 20년 넘게 자막 번역과 영화평론가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미국 출신 ‘달시 피켓(Darcy Paquet)’이다. 그는 한국인들만 알 수 있는 ‘짜파구리(짜파게티+너구리)’를 라면(ramen)과 우동(udon)을 합친 ‘람동(ramdon)’으로 번역하면서 세계인의 이해를 도왔다.

거기다 기우(최우식)의 재학증명서를 위조하는 기정(박소담)의 모습을 보던 기택(송강호)이 “서울대 문서위조학과 뭐 이런 건 없냐”고 한 대사에서 ‘서울대’를 ‘옥스퍼드’로 바꾼 센스는 무수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이뿐만이 아니라 지난해 5월 칸국제영화제부터 봉 감독 옆에서 통역을 하면서 ‘언어의 아바타’라고 불리는 최성재(샤론 최)씨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전문번역가가 아닌 미국에서 대학을 다니면서 영화를 연출한 감독인 최씨는 봉 감독의 의도를 정확하게 살려 통역을 했다. 특히 지난달 열렸던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외국어상을 받은 봉 감독의 소감의 통역은 숱한 화제를 낳았다. “자막, 그 1인치의 장벽을 뛰어넘으면 여러분들이 훨씬 더 많은 영화를 즐길 수 있습니다. (Once you overcome the one-inch tall barrier of subtitles, you will be introduced to so many more amazing filmes.)”

◆엄청난 투자로 이뤄진 수상 ‘오스카 캠페인’

봉 감독이 오스카 트로피를 들 때 그 영광을 함께 누린 이가 있다. 바로 이미경 CJ그룹 부회장이다. 그는 아카데미 수상 소감에서 “나는 봉 감독의 모든 것을 좋아한다. 그의 미소, 머리 스타일, 그가 말하고 걷는 방식, 특히 그가 연출하는 방식을 좋아한다”며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그의 유머 감각이다. 그는 자기 자신을 놀리지만, 결코 심각해지지는 않는다”고 말하면서 봉 감독의 팬임을 자처했다. 기생충의 책임 프로듀서로 이름을 올리기도 한 이 부회장은 사실 기생충이 4관왕을 받도록 큰 기여를 한 인물 중 하나다.

사실 오스카에서 트로피를 받기 위해서는 뛰어난 작품성뿐만이 아니라 치열한 홍보전이 필요하다.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투표권을 행사하는 8000여명의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 회원들에게 영화를 홍보해야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외국어영화상을 받은 넷플릭스의 ‘로마’는 오스카 캠페인에 최소 2500만 달러를 썼다는 소문도 있다. 이는 영화 제작비의 6배가 넘는 금액이었다.

기생충의 이러한 홍보비를 전적으로 지원한 것이 CJ ENM이다. 이에 봉 감독은 가장 고마운 사람으로 통역사 최성재씨와 최윤희 CJ ENM 해외배급팀장을 지목하기도 했다. 최 팀장은 현지에서 오스카 캠페인을 이끌고 있는 인물이다.

봉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아무래도 디즈니나 넷플릭스 같은 거대한 회사가 아니다 보니 물량 대신에 (맷돌 돌리는 시늉을 하며) 감독을 갈아 넣는 식으로 엄청난 양의 GV(관객과의 대화)를 진행했다. 마치 봉고차를 타고 미사리를 도는 유랑극단처럼 하루에 몇 군데씩 움직였다”고 밝혔다. 그는 오스카 캠페인의 살인적인 일정을 얘기한 것이겠지만 봉 감독이 참석했던 수많은 북미 상영회, 영화제, 시상식 등의 모든 비용은 CJ ENM에서 다 뒷받침 해줬다. 그리고 그 비용은 오스카의 4관왕으로 돌아왔다.

영화 '기생충'이 9일(현지시간) 미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의 돌비 극장에서 열린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받은 배우들. (출처: 뉴시스)
영화 '기생충'이 9일(현지시간) 미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의 돌비 극장에서 열린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받은 배우들. (출처: 뉴시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