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감독이 9일(현지시간) 미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의 돌비 극장에서 열린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영화 '기생충'으로 작품상을 받으며 환호하고 있다. (출처: 뉴시스)
봉준호 감독이 9일(현지시간) 미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의 돌비 극장에서 열린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영화 '기생충'으로 작품상을 받으며 환호하고 있다. (출처: 뉴시스)

[천지일보=백은영 기자]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한국 영화와 92년 아카데미 시상식 역사를 새롭게 썼다.

10일 오전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할리우드 돌비극장(Dolby Theatre)에서 열린 제92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오스카)에서 최고 권위인 작품상뿐 아니라 감독상, 각본상, 국제영화상까지 4관왕을 차지하면서다.

특히 기생충은 외국어 영화로는 처음으로 작품상을 받으면서 할리우드에서 자막의 장벽과 오스카의 오랜 전통을 깨뜨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작품상으로는 샘 맨데스 감독의 ‘1917’, ‘아이리시맨(마틴 스코세이지)’. ‘작은 아씨들(그레타 거위그)’, ‘결혼 이야기(노아 바움백)’,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쿠엔틴 타란티노)’ 등 쟁쟁한 경쟁작이 후보로 올랐다.

제작자 곽신애 바른손 E&A 대표는 무대에서 “말이 안 나온다. 상상도 해본 적이 없는 일이 벌어지니까 너무 기쁘다. 지금, 이 순간 굉장히 의미 있고 상징적인 시의적절한 역사가 쓰이는 기분이 든다. 이런 결정을 해준 아카데미 회원분들의 결정에 경의와 감사를 드린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날 무대에는 이미경 CJ 그룹 부회장도 직접 올라 기생충 제작진과 동생 이재현 CJ 회장, 한국 관객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영화 '기생충'이 9일(현지시간) 미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의 돌비 극장에서 열린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받아 이미경(미키리) CJ그룹 부회장이 무대에 올라 수상 소감을 말하고 있다. (출처: 뉴시스)
영화 '기생충'이 9일(현지시간) 미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의 돌비 극장에서 열린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받아 이미경(미키리) CJ그룹 부회장이 무대에 올라 수상 소감을 말하고 있다. (출처: 뉴시스)

봉준호 감독은 이날 4번이나 무대에 나서 상을 받는 쾌거를 이뤘다.

첫 상을 안긴 각본상 수상에는 또 하나의 기록이 더해졌으니, 바로 아시아계 작가로서도 92년 오스카 역사상 최초의 수상이라는 것이다. 외국어 영화로는 2003년 ‘그녀에게’의 스페인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 이후 17년 만의 수상이다.

각본상 수상에 봉 감독은 “감사하다. 큰 영광이다. 시나리오를 쓴다는 게 사실 고독하고 외로운 작업”이라며 “국가를 대표해서 쓰는 건 아닌데 이 상은 한국이 받은 최초의 오스카 상이다. 대사를 멋지게 화면에 옮겨준 기생충 배우들에게 감사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한진원 작가는 “미국에는 할리우드가 있듯 한국에는 충무로가 있다. 제 심장인 충무로의 모든 필름메이커와 스토리텔러와 이 영광을 나누고 싶다”고 말했다.

봉준호 감독은 ‘국제영화상(옛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하면서 각본상에 이어 다시 한 번 무대에 올랐다.

봉 감독은 “매우 영광이다. 이 부문의 이름 바뀌었다. 이름 바뀌고 처음 상을 받아 더더욱 의미가 깊다. 이름에 의미가 있는데, 오스카가 (이름 변경으로) 추구하는 방향에 지지를 보낸다”고 말했다.

봉 감독은 이어 “멋진 배우, 스태프들이 여기 있다”며 배우들과 제작진의 이름을 한 명씩 호명하며 박수를 요청했다. 봉 감독은 “I am ready to drink tonight until tomorrow(내일까지 밤새 술을 마실 준비가 됐다)”며 웃었고 객석은 위트있는 수상소감에 환호했다.

한국은 1962년 신상옥 감독의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를 시작으로, 매년 외국어영화상 부문에 출품해왔다. 지난해 <버닝>은 예비 후보 10편에는 들었지만 최종 후보에는 오르지 못했다. 지난해 10월 마감한 이 부문에는 90여개국이 출품했다.

이후 봉준호 감독은 ‘감독상’에 호명되면서 다시 무대에 올랐다. 아시아 감독의 감독상 수상은 아카데미 시상식이 진행된 이후 두 번째다. 봉 감독은 “마틴 스콜세지와 같이 후보에 오른 것만으로도 영광이다. 저희 영화를 미국 관객이 잘 모를 때 항상 저희 영화를 언급해준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에게도 감사하다. 쿠엔틴 아이 러브 유”라고 말했다.

감독상에는 마틴 스코세이지(아이리시맨), 토드 필립스(조커), 샘 멘데스(1917), 쿠엔틴 타란티노(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헐리우드) 등 세계적인 명장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명실상부 세계 최고의 감독으로 자리매김했다.

이미 지난 2019년 제72회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으며 전 세계 영화인들의 관심을 받은 영화 ‘기생충’은 이후에도 제77회 골든글로브 시상식과 제73회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하는 등 한국영화의 새로운 역사를 써내려가고 있다.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이 아카데미 작품상을 동시에 수상하는 것도 역대 2번째로, 1995년 델버트 맨 감독의 로맨틱 코미디 마티 이후 64년 만이다.

영화 '기생충'이 9일(현지시간) 미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의 돌비 극장에서 열린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받아 봉준호(왼쪽) 감독을 비롯한 제작진과 출연진이 무대에 올라 상을 받고 기뻐하고 있다. (출처: 뉴시스)
영화 '기생충'이 9일(현지시간) 미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의 돌비 극장에서 열린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받아 봉준호(왼쪽) 감독을 비롯한 제작진과 출연진이 무대에 올라 상을 받고 기뻐하고 있다. (출처: 뉴시스)

기생충은 총 6개 부문에서 후보에 올랐으나 미술상과 편집상 수상은 실패했다.

투자배급사인 CJ ENM에 따르면 ‘기생충’은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 전까지 57개 해외영화제에서 55개의 영화상을 받는 기염을 토했다. 트로피 개수만 80여개를 넘었다고 하니 그야 말로 전 세계 영화 관련 주요 행사를 휩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화 ‘기생충’을 향한 외신들의 보도도 호평 일색이었다. 아카데미 수상 예측 사이트 중 하나인 ‘골드더비’에서는 ‘기생충’이 감독상 예측 3위에 오르기도 했으며, 헐리우드 매체 ‘버라이어티’는 ‘1917’ ‘아이리시맨’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와 함께 ‘기생충’을 아카데미 최고상인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후보로 지목했다. 뿐만 아니라 이 매체는 “그동안 아카데미가 한국 영화를 무시해왔다”면서 “영화 ‘기생충’이 오스카에 발을 내디딘 첫 한국 영화로 역사를 만들었다”고 평하기도 했다.

일명 ‘오스카상’으로 불리는 아카데미상은 미국 영화업자와 사회법인 영화예술 아카데미협회가 수여하는 미국 최대의 영화상으로 전 세계 영화인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시상 식이다. 1929년 제1회 아카데미상을 시작으로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아카데미상은 올해로 92회째를 맞았으며, 한국영화 최초로 아카데미상 수상의 영예를 안긴 시상식으로 영화 팬들에게 기억될 것이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