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한체대 스포츠언론정보연구소장

미국 프로미식축구 결승전인 슈퍼볼은 미국 최고의 스포츠 이벤트이다. 매년 2월 첫째주 일요일 열리는 슈퍼볼은 단 한 번의 생방송으로 1억여명 이상의 미국 시청자 눈을 사로잡는다. 매번 최고의 슈퍼스타들이 참여하는 하프타임 공연으로도 유명하다. 과거 마이클 잭슨을 비롯해 폴 매카트니 등이 하프타임 쇼 무대를 밟았다. 지난 주 벌어진 올해 하프타임 쇼는 이 시대 최고의 팝 디바 제니 로페즈의 멋진 공연으로 팬들을 열광의 도가니 속으로 몰아넣었다.

하지만 올해 하프타임 쇼를 둘러싸고 ‘슈퍼볼이 정치색으로 물들었다’는 논란이 미국내에서 제기됐다. 그동안 슈퍼볼에서 볼 수 없었던 이례적인 일이다. 문제를 일으킨 이들은 미식축구 선수들이 아닌 로페즈 등 예능 슈퍼스타들이라는 점이 색다르다. 로페즈는 3번째 의상으로 푸에르토리코와 미국 성조기가 그려진 망토를 입고 자신의 11살 딸 엠마가 새장에 갇혀 노래 부르는 모습을 연출했다. 이 무대는 이민자 아동을 격리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이민정책을 비판하는 것으로 해석됐다. 뉴욕의 푸에르토리코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로페즈는 2017년 1월 트럼프 대통령이 반이민 정책을 강행하자 “이민자가 세운 나라에서 어린 이민자를 차별하는 정책을 어떻게 할 수 있는가”라며 맹비난을 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에 비판적인 자세를 취한 로페즈이지만 올해 슈퍼볼 무대에서 ‘정치 퍼포먼스’를 하리라고는 전혀 예상되지 않았던 일이다. 최고의 흥행 무대인 슈퍼볼에서 슈퍼스타들이 정치적인 제스처를 취하는 것은 자신들의 인기 관리과 수익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게 일반적인 관측이었다. 로페즈는 돌발적인 행동으로 이러한 인식의 허를 제대로 찔렀다.

올해 슈퍼볼에서 로페즈만 정치적인 행보를 취한 것은 아니다. 팝스타 비욘세와 제이지 부부는 가수 데미 로바토가 미국 국가를 부르는 공연에서 일반인들이 자리에서 일어난 것과는 달리 자리에 앉아있는 모습이 포착됐다. 제이지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은 이유에 대해 국가에 대한 어떤 정치적인 의미를 보여주려고 한 것이 아니라 단지 쇼를 감상하고 싶었을 뿐이라는 해명을 내놓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지난 2016년 8월 NFL 경기 당시 흑인 인종 차별에 대한 항의의 표시로 국가를 제창할 때 기립을 거부하고 무릎을 꿇은 캐퍼닉을 지지하는 발언을 한 바 있어 의혹을 사기에 충분했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캐퍼닉을 두고 트위터를 통해 맹비난했으며 그는 결국 팀에서 방출됐다. 올해 슈퍼볼에서 벌어진 슈퍼스타들의 일련의 행동들을 두고 미국 조야에서는 보수, 진보층에서 찬반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보수층들은 “혐오스럽고 수치스러운 행동이다.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됐을 것”이라며 반발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탄핵 정국으로 어수선한 틈을 타 여론을 유리하게 이끌려는 것이라는 게 보수 측의 시각인 것 같다.

인종차별, 국가 간 영토 분쟁, 빈부 격차, 환경 피해 등 날로 다양해지는 현대 문명사회에서 정치적인 문제는 더욱 복잡하고 풀기 어려워져가는 양상이다. 많은 대중들의 관심이 쏠리는 슈퍼볼, 올림픽 등 대형 스포츠무대는 정치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 소통의 통로가 될 가능성이 높다. 무하마드 알리 등은 스포츠 무대에서 자신의 정치적인 의사를 행동으로 보여주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올 슈퍼볼에서는 무대공연하는 연예인까지 정치적인 제스처를 드러냈다. 스포츠팬들은 이제 정치논리에 휘둘리는 경기나 쇼를 보면서 스포츠 뒤에 숨어있는 정치적인 함의를 생각해야 하는 짐을 짊어지게 됐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