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용 칼럼니스트 

 

한국교육개발원(KEDI)이 발표한 2019년 교육여론조사에서 학부모 98%가 사교육을 시킨다고 응답했다. 사교육을 시키는 이유로 ‘남들보다 앞서기 위해(24.6%)’와 ‘남들이 하니까 심리적으로 불안해서(23.3%)’라는 답이 많았다. 사교육을 시킨 후 변화에 대해 ‘별다른 변화가 없다’가 51.9%, ‘다소 심화했다’가 30.9%였다. 초중고 교육 내실화를 위해 가장 필요한 과제로 학벌 위주의 사회 체제 개선(25.7%), 대입 선발 방식 개선(21.1%), 교원 전문성 제고(18.1%), 수업 방식 다양화(17.9%) 등이 필요하다고 했다.

학부모들은 공교육의 내실화를 위해 가장 필요한 과제로 ‘학벌 위주 사회 개선’을 꼽으면서 사교육을 시키는 이유로 ‘남들보다 앞서기 위해’서라고 답했다. 내 자식은 좋은 학벌을 만들어 남들보다 앞서야 해서 사교육을 시킨다면서, 학벌 위주 사회는 개선돼야 한다는 모순적인 응답을 했다. 60년대부터 있던 사교육이 지금까지 없어지지 않고 기승을 부리는 이유로 부모의 이기심이 가장 큰 원인임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며칠 전 한 TV 프로그램에 나온 삼수로 연세대에 입학한 학생의 사례는 공부에서 동기의 중요성을 가장 잘 표현했다. 이 학생은 시험 범위도 시험날 아침에 물어볼 정도로 전교 꼴등으로 고교를 졸업하고, 재수도 실패했다. 삼수하던 시기에 엄마와 도서관에 앉아 같이 공부하다 “오늘은 공부가 안 되는 날이야!”라고 푸념을 늘어놓았다. 그 말을 들은 엄마가 “공부는 스스로 하는 건데 공부가 안 되는 날이 있다는 게 이해가 안 간다”고 일갈했다. 엄마의 그 말에 ‘공부는 마음먹기 달려있는데 내가 평생 핑계만 대고 살았구나!’라는 자각을 했다. 그 후 단 1초도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고 허리에 병이 생길 정도로 공부해 연세대에 진학했다. 스스로 공부에 대한 동기를 부여하지 않으면 사교육은 큰 의미가 없다는 걸 보여 준다.

98%가 사교육을 받지만 98% 학생의 성적순에는 대부분 변화가 없다. 부모들은 학원만 보내면 아이의 수준이 일취월장할 것이라고 믿는다. 자녀가 영재인 줄 알고 사교육으로 뺑뺑이 돌리다 성적이 오르지 않으면 학교 탓을 하고, 교사 탓을 하다 수능 시험을 보고 난 후 그제야 자식 탓, 부모 탓을 한다. “성적이 오르길 바라고 학원을 보내는 게 아니고 친구들과 어울리라고 보낸다”며 부모가 시간을 갖기 위해 사교육을 시킨다는 부모도 많다. 사교육 시키는 이유를 학교 수업의 질에서 찾는 부모는 그나마 공부에 관심이 있는 부모다.

혁신학교, 창의성 교육, 자유학기제 등의 정책이 가장 큰 문제다. 너무 다양한 활동을 교육과정에서 요구하기 때문에 수업의 질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수업의 질에 비해 시험의 질은 높으니 학부모나 학생은 사교육에 의존한다. 학교에서 선행학습, 심화학습을 금지하는데 수능 문제는 학교 수업으로 따라잡을 수 없는 어려운 문제가 나오니 선행학습, 심화학습을 시켜주는 학원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교사도 “학원을 보내세요!”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교육정책이 만들고 있다.

‘명문대 진학=성공’이라는 공식이 엄연히 존재하는 학벌 위주 사회가 변하지 않는 상태에서 학교만 혁신 교육, 창의성 교육, 자유학기제를 도입하며 공교육 몰락을 자초했다. 상위권 학부모들은 선행학습 시킬 기회라 생각하고 자녀들을 각종 사교육에 내몰고 있다. 아이들이 행복한 학교를 만든다는 거창한 취지가 사교육을 조장하는 꼴이 됐지만, 실패를 인정하지 않는다. 혁신학교, 자유학기제 방침에 충실히 따른 아이들만 뒤처져 용이 될 기회를 상실하고 개천에서 가재와 붕어로 살게 만든다.

학력고사 시대에는 사교육 없이 독학으로 명문대에 진학하는 학생이 많았다. 초중고 공부는 의지만 있으면 독학으로 얼마든지 가능하다. 교사 시절 사교육 없이 전교 1, 2등을 하는 학생을 많이 봤다. 운동선수, 가수, 배우 등의 자식이 부모의 유전자를 물려받아 성공하는 사례를 보면 공부도 부모에게 물려받는 소질이 중요하다.

학교 탓에 공부를 못했다고 하는 것은 핑계에 불과하다. 초등학생에게 학원을 5개 이상 보내는 것은 아이와 같이 시간을 보내려는 의지가 아예 없는 자녀 학대에 가깝다. 부모가 집에서 아이들과 어떤 활동을 하는지 보면 아이의 미래가 보인다. 성장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공부가 몸에 익힌 아이들은 사교육이 없어도 상위권을 유지한다. 수업을 듣는 시간이 2시간이면 8시간은 스스로 공부해야 자기 실력이 된다는 ‘공부 2:8 법칙’은 진리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