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조선시대 ‘한량(閑良)’이라는 유한계급이 있었다. 용비어천가에는 한량을 가리켜 ‘관직이 없이 한가롭게 사는 사람을 한량이라 속칭한다’고 했다. 부모를 잘 만났거나 집에 재산이 있어 무위도식하며 산 젊은이들이다. 조선이 기생충과 같았던 한량 계급들 때문에 망한 것은 아니었을까.

한량들은 군대도 면제 됐으며 나라에 세금을 내지도 않았다. 과거에 뜻을 두지 않았으면서도 양반자제들과 함께 기방을 전전하며 그야말로 호색풍류를 즐겼던 부류들이었다.

조선 후기 호패사목(戶牌事目. 1625AD 인조 3년 작성)에는 ‘사족으로서 속처가 없는 사람, 유생(儒生)으로서 학교에 입적(入籍)하지 않은 사람, 그리고 평민으로서 속처가 없는 사람을 모두 한량으로 호칭 한다’고 썼다.

그런데 재미있었던 것은 장안의 잘 나가던 기생들이 한량들을 좋아해 기둥서방으로 두거나 비밀리 내연관계를 맺고 보호를 받았다는 것이다. 지체 높은 사대부를 사랑해봐야 이별해야 하고 평생 경제적 도움을 받지도 못했다. 그러나 지방 한량들은 과거를 보지 않아 기생 곁을 떠나지 않았으며 기둥서방 역할을 충실히 했기 때문이다.

고전 삼선기(三仙記)에 나오는 한량 이춘풍은 본래는 도학에 빠진 청년이었다. 그러나 홍제원에서 무관들에게 능욕을 당하고는 달라졌다. 이 때 이춘풍을 유혹한 여자들이 바로 기생들이었다.

춘풍은 기생 둘을 데리고 평양으로 자리를 옮겨 교방의 포주가 된다. 그리고 대성산에 초당을 짓고 세상의 영욕을 뜬 구름으로 여기며 풍류로 즐겼다. 사람들이 그들을 부러워해 ‘지상삼선(地上三仙)’이라 불렀다고 묘사하고 있다.

한량이 똑똑한 기생을 만나 출세한 경우도 있었다. 조선 선조 때 심희수는 3살 때 부친을 잃었으며 고관 자제들과 어울려 시간을 허비했다. 하루는 어느 재상 집 잔치가 있어 찾아갔다가 동석한 기생이 마음에 들었다. 그가 마음을 둔 여자는 금산 출신의 17세 일타홍(一朶紅)이었다. 일타홍도 심희수가 장차 크게 될 인물임을 알고 그에게 의탁했다. 일타홍은 그동안 모은 패물을 가지고 심희수 집에 들어와 살았다. 그리고는 그에게 과거준비를 하도록 주선했다. 이후 심희수는 마음을 바로잡고 공부를 해 진사시를 거쳐 대과에 급제했다. 심희수는 일타홍의 간절한 부탁으로 처가인 금산군수가 됐다. 마침 병을 앓고 있던 일타홍은 부군의 품에 안겨 죽었다. 심희수는 일타홍을 못 잊어 묘 옆에 움막을 짓고 살다 죽었다고 한다.

조선 후기 도화서 화원인 신윤복은 한량들과 기생들의 은밀한 연애풍경을 그리기도 했지만, 실학자들은 한량들을 비판했다. 이들은 시정 뒷골목을 돌아다니며 주막과 기생들을 겁박하고 나약한 양반 자제들에게 행패를 부린 쓰레기 같았던 존재였기 때문이다. 조선 양반사회는 이런 부류들을 국가 동력으로 만들지 못했다.

최근 보도를 보면 지난해 ‘쉬었음’ 인구가 8년 만에 최대 증가하며 처음으로 200만명을 넘어섰다는 것이다. 이들은 실업 상태로 전락하거나 아예 구직을 포기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20대를 포함해 전 연령층에서 골고루 높게 나타나는 현상을 보였다고 한다. 문재인 정부들어 포퓰리즘으로 자립 의욕을 잃은 ‘현대판 한량’들이 크게 늘어난다는 증거가 아닌가. 한국이 망해버린 베네주엘라의 전철을 밟고 있다. 현대판 한량들에게 국민세금으로 무조건 지원하는 포퓰리즘이 장차 나라를 위해 옳은 일이 아니다. 더구나 표를 의식해 이런 정책을 쓰는 것은 매표행위와 다를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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