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상욱 역사 칼럼니스트

여행(旅行)은 머물던 답답한 곳을 떠나 그 자리에 있지 않는 상태를 의미한다. 그러나 그 전제는 제자리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떠나기 전과 돌아온 후에는 무엇인가 달라야 한다. 독서는 앉아서 하는 여행이고, 여행은 길을 가면서 하는 독서라는 말처럼 삶을 풍성하게 만든다. 오래전 정릉의 컴컴한 지하에서 작업을 하던 전각가 최규일이 평생의 화두라고 하면서 갖가지 이미지를 지닌 여(旅)라는 글자를 수도 없이 새기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 무수한 이미지들이 주는 기묘한 감동은 작업실이 주는 스산함과 함께 오랫동안 언젠가는 풀어야 할 숙제처럼 나의 가슴을 답답하게 했다. 장소의 이동이 주는 새로운 느낌을 위해 수행자는 길을 걸으며 새로운 경지를 추구한다. 불교의 탁발은 여행을 통한 자기의 성찰과 성숙을 추구하는 수행방법이다.

여(旅)라는 글자는 원래 바람에 나부끼는 깃발 아래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모양을 의미한다. 옛날에는 500명을 일대로 하는 군사조직을 나타냈으며, 지금 우리나라 군대에도 사단과 연대의 중간 단위로 여단이라는 군사조직이 있다. 여기에서 유래하여 많다라는 의미를 파생시켰고 군대란 결국 전쟁을 위해 어딘가로 떠나야 하니까 떠난다는 의미와 길(Way)이라는 의미로 확대된 듯하다. 인체에서는 등뼈를 의미하는 려(膂)와 같은 뜻으로 쓰인다.

여행의 의미는 가수 최희준의 하숙생이라는 노래와 함께 분명해 지는 것 같다. ‘인생은 나그네 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구름이 흘러가듯 떠돌다 그는 길에…’ 라는 그의 노래는 현세를 잠깐 살다가 가는 하숙집 정도로 생각한 것 같다. 일본 천하를 통일한 도꾸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은 ‘인생은 무거운 짐을 지고 가는 나그네와 같다’라고 묵직하게 갈파한다. 최희준은 삶의 덧없음을 허무한 목소리로 노래하였고, 도꾸가와는 자신에게 주어진 천명을 다하기 위하여 삶의 무게를 견디는 묵묵한 영웅의 심회를 갈파했다.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노래하는 가수와 삶의 의미를 이미 찾은 영웅의 메시지는 다르지만 고통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아마도 같으리라. 서양인들은 여행을 레져(leisure)의 의미로 받아들인다. 일상으로부터 벗어나 남는 시간을 다른 것을 하며 보낸다는 휴식과 재충전의 의미일 것이다. 인생을 나그네의 여정과 비교하는 동양인과 스트레스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서양인의 인식이 모두 여행으로 모아지니 여행이란 인간의 삶과 밀착된 것임이 분명하다.

주역(周易)에도 여(旅)라는 괘가 있다. 위에는 화(火)를 의미하는 리(離☲)괘가 있고 아래에는 산(山)을 의미하는 간(艮☶)괘가 있다. 아래로는 너무 강력한 힘에 막혀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여도 대책이 없고, 위에는 그를 도와야 할 사람들이 스스로의 현실에 만족하여 아래의 정체된 상황을 애써 외면하고 있다. 아무리 호소를 해도 듣지 않는다. 문제를 해결하고자 애를 써도 이루어지지 않는 답답함! 그것이 화산려괘의 상황이다. 주역은 그 해결 방법으로 변화를 구하라고 한다. 구체적인 방법은 현상에서 잠시 벗어나는 것이다.

불은 산위에서 오로지 위로 타올라 가기만 하고 답답한 상황에 빠진 산 아래를 비추지 않는다. 산 아래는 어둡고 춥다. 그래서 불빛이 비치는 먼발치로 떠나야 한다. 떠나 보면 아마도 전체의 모습이 보이리라. 그러나 그 기대도 부질없다. 화산려괘의 초효에는 여쇄쇄(旅瑣瑣)면 사기소취재(斯其所取災)라는 효사가 붙어 있다. 서둘다가는 재앙을 만난다는 뜻이다. 상전(象傳)에서는 여쇄쇄는 지궁(志窮)하여 재(災)라라고 했다.

여행의 의미를 깊이 새기지 못하고 너무 기분에 들떠서 경솔하게 행동하면, 아무 의미도 없는 여행이 되어 화를 입게 된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여행을 떠나기 전에는 현실의 답답함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 때문에 공연히 설렌다. 그 설렘으로 변화를 추구할 때이다. 경솔하면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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