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안현준, 강은영 기자]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리는 박근혜 정부의 보수단체 불법지원(화이트리스트) 관련 선고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왼쪽).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화이트리스트 관련 선고 공판을 마치고 법정을 나서고 있다. ⓒ천지일보 2018.10.5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201년 10월 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리는 박근혜 정부의 보수단체 불법지원(화이트리스트) 관련 선고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왼쪽).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도 이날 화이트리스트 관련 선고 공판을 마치고 법정을 나서고 있다. ⓒ천지일보 2018.10.5

‘문화계 블랙리스트’ 혐의

직권남용은 원심 판단 인정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죄의

‘의무없는 일’ 여부는 재심리”

[천지일보=홍수영 기자] 대법원이 박근혜 정부 시절 정부 성향에 반대되는 문화예술인 등에 대한 지원을 배제한 이른바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 원심을 깨고 다시 재판하라고 판결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30일 오후 특별기일을 열고 김기춘(81) 전 대통령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청와대 정무수석 등의 상고심에서 유죄를 인정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다만 대법원은 “파기환송의 취지는 직권남용죄에 관한 법리오해와 그로 인한 심리미진”이라며 “반드시 무죄 취지 파기환송이라고 할 순 없다”고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김 전 실장 등은 정부 비판 성향의 문화예술인과 단체에 보조금을 지급하지 않도록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배제 사유 등을 기록하게 하고, 실제 이를 집행하도록 강요한 혐의로 기소됐다.

‘블랙리스트’ 혐의자들. 왼쪽부터 박근혜 전 대통령, 조윤선 전 청와대 정무수석,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 ⓒ천지일보 2018.1.23
‘블랙리스트’ 혐의자들. 왼쪽부터 박근혜 전 대통령, 조윤선 전 청와대 정무수석,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 ⓒ천지일보 2018.1.23

대법원은 김 전 실장 등이 문화체육부 공무원을 통해 예술위원회·영진위·출판진흥원 소속 공무원에게 특정 인사·단체 지원 배제를 지시한 것은 박근혜 전 대통령 뜻에 따라 그 직권을 남용한 것이라고 봤다.

재판부는 “개인 또는 단체의 이념적 성향이나 정치적 견해 등을 이유로 각종 사업에서 정부의 지원을 배제하도록 지시한 행위는 헌법과 법률에 위배되고, 위원회에 속한 위원의 직무상 독립성을 침해해 위법하므로 직원 남용해 해당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에 대한 각종 명단을 공무원들에게 송부하게 한 행위, 사업 과정에서 수시로 심의 진행 상황을 보고하도록 한 행위 등은 형법 제123조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죄에의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했다고 보기엔 어렵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사람으로 하여금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것’과 ‘사람의 권리행사를 방해한 것’은 형법 제123조가 규정하고 있는 객관적 구성요건요소인 ‘결과’로서 둘 중 어느 하나가 충족되면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가 성립한다”고 밝혔다.

즉, ‘공무원의 직권남용’과 ‘의무 없는 일’은 서로 구별되는 별개의 범죄성립요건이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해당 공무원들의 행위가 ‘의무 없는 일’에 해당하는지는 직권은 남용했는지와 별도로 그런 일을 법령상 의무가 있는지를 살펴 개별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은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해 사람으로 하여금 어떠한 일을 하게 한 때 그 상대방이 공무원 또는 유관기관의 임직원인 경우에는 그가 한 일이 형식과 내용 등에 있어 직무범위 내에 속하는 사항으로서 법령 그 밖의 관련 규정에 따라 직무수행 과정에서 준수해야 할 원칙이나 기준·절차 등을 위반하지 않았다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법령상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때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원심은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죄의 의무 없는 일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고 필요한 심리를 다 하지 아니했기에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며 사건을 파기환송했다.

[천지일보=박완희 기자] 문화·예술계 지원배제 명단인 이른바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재판에 넘겨진 김기춘(79) 전 대통령 비서실장(왼쪽)과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23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고법에서 열린 항소심 선고 공판에서 각각 징역 4년과 2년을 선고받은 뒤 법정을 나서고 있다. ⓒ천지일보 2018.1.23
문화·예술계 지원배제 명단인 이른바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재판에 넘겨진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왼쪽)과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천지일보 2018.1.23

다만 ▲지원배체 방침이 관철될 때까지 사업진행 절차를 중단 ▲지원배제 업무에 용이하도록 심의위원을 구성 ▲지원배제를 위한 명분을 발굴 ▲상영불가 통보 등의 행위를 김 전 실장 등이 예술위·영진위·출판진흥원 직원들에게 지시한 것은 ‘의무에 없는 일’을 하게 한 것이 맞다고 판단했다.

이 사건에 대해 앞서 1심은 “정치권력에 따라 지원금을 차별해 헌법 등이 보장하는 문화 표현과 활동에서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심각히 침해했다”며 김 전 실장에게 징역 3년을 선고했다. 조 전 수석은 국회 위증 혐의만 유죄로 보고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2심은 “정부와 다른 이념적 성향을 가진 개인이나 단체를 좌파로 규정해 명단 형태로 관리하며 지원을 배제하는 것은 헌법 원칙에 어긋난다”며 1급 공무원 사직 강요 혐의가 추가된 김 전 실장에게 징역 4년을 선고했다. 조 전 수석에 대해선 직권남용 혐의가 일부 유죄로 인정돼 징역 2년을 선고했다.

대법원은 2018년 2월 이 사건을 소부 2부에 배당했다. 그러나 같은 해 7월 전원합의체로 변경해 1년 6개월 동안 심리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심리는 소부에서 의견이 일치하지 않거나 기존 대법원 판례를 바꿔야 할 경우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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