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은 루마니아가 공산정권에 맞서 민주화를 이룬지 30주년 되는 해이다.

한-루마니아 수교 30주년이기도 하다. 발칸반도 동북부에 위치한 루마니아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2018년 9월 방한한 에밀 콘스탄티네스쿠 루마니아 전 대통령이 세종대에서 청년들을 향해 ‘한반도 평화 통일 염원’이라는 주제로 진행한 강연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 오랜 세월 남과 북이 민주주의와 공산주의로 갈라져 있는 한반도, 공산주의를 경험하지 못한 전후(戰後)세대가 공산주의(사회주의)에 대한 막연한 동경으로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가치와 소중함을 잃을까봐 에밀 전 대통령은 본 강연을 자처했다. 특히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모든 영역에서 사상과 제도가 좌 편향적으로 기울어져가는 현실 가운데 2년 전 한국 국민 나아가 청년들에게 큰 울림을 줬던 에밀 전 대통령의 강연 전문을 소개한다.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이룸 아트와 레반트 문화 문명연구소가 공동 주최하고 HWPL 산하 국제청년평화그룹(IPYG) 주관으로 지난 2018년 9월 20일 서울 세종대학교 대양홀에서 ‘한반도 평화와 통일 염원 강연 콘서트’가 열렸다. 이날 강연에는 공산주의와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모두 경험한 에밀 콘스탄티네스쿠 루마니아 전 대통령이 특별강연에 나섰다. ⓒ천지일보 2018.9.20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이룸 아트와 레반트 문화 문명연구소가 공동 주최하고 HWPL 산하 국제청년평화그룹(IPYG) 주관으로 지난 2018년 9월 20일 서울 세종대학교 대양홀에서 ‘한반도 평화와 통일 염원 강연 콘서트’가 열렸다. 이날 강연에는 공산주의와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모두 경험한 에밀 콘스탄티네스쿠 루마니아 전 대통령이 특별강연에 나섰다. ⓒ천지일보 2018.9.20

에밀 루마니아 前 대통령, 戰後세대 향한 ‘민주주의 가치’ 역설

귀빈 여러분 그리고 학생 여러분,

먼저 초청해주신 세종대학교와 주최자인 국제평화청년그룹(IPYG)께 깊은 감사를 표합니다. 또한 루마니아 ‘레반트지역 문화 문명 연구소’의 협조에도 특별히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

이 자리 세종대학교에 서게 되어서 매우 기쁩니다. 저는 부카레스트 대학교 및 전 세계 다른 유수의 대학교에서 60년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제 모든 것은 대학교 덕분입니다. 저와 함께했던 전(前) 석사 박사 학생들이 이제는 전 세계에서 교수로써 그리고 많은 연구기관의 연구원으로 활동한다는 사실이 매우 자랑스럽습니다.

오늘 제 강연의 주제는 ‘고통의 기억과 자유의 교육학’입니다. 먼저 고백할 게 있습니다.

저는 1939년에 태어났습니다. 그 해에는 도쿄에서 리스본까지 건너갔을 수 있었을 것이고 태평양에서 대서양까지도 건널 수 있었을 것입니다. 제 가족은 군대 독재 정권 아래에 있는 소련 국경에 있는 드니스터 강 주변의 마을에서 살았습니다.

우리는 적군 때문에 수만 명의 사람들과 함께 두 번 강제로 피난을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의 첫 기억은 이 필사적인 탈출과 관련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떠나지 않은 사람들 대부분이 체포되거나 시베리아로 강제 이주되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 곳에서 50살이 될 때까지 독재정권 하에 살았습니다. 그곳에서는 이동의 자유가 없고, 나라를 떠날 수도 없고, 정부에 의해 배정된 특정한 곳에서 살아야 했고, 강제적으로 일해야 했습니다. 국가와 공동소유권만을 인정하는 독재정권은 모든 형태의 시민 권리와 자유로운 개인의 삶을 정치적으로 감시함으로서 무효화했습니다.

저는 또한 공리주의(功利主義) 시대로 넘어가는 과도기를 거치기도 했습니다. 사회적으로 여러 힘든 상황에 있었습니다. 저의 세대에 속한 사람들에게 민주주의는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었습니다. 민주주의 아래의 제 상황과 자유를 누릴 수 있는 특권은 저희에게 깊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한국과 루마니아에 영향을 준 제 2차 세계대전에서 2500만명 이상의 군인들이 사망했습니다. 7300만명 이상의 시민들은 경제적으로 큰 손실을 입었으며, 세계 문화유산이 파괴됐습니다.

20세기 상반기에 일어난 두 번의 잔인한 전쟁이 증명한 것은 얼어붙은 갈등을 조절하는 것만으로는 평화를 강화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동유럽에서 발생한 공산주의로 인해 건설적인 경쟁을 하지 못하게 되었으며, 표현의 자유도 억압 받았습니다. 이념이 감정을 대체하는 사회가 되며, 이는 부도덕한 형태의 사건들로 이어졌습니다. 자유로운 발언을 담은 표어나 평범한 생활 속 자유는 지속적인 테러로 인해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변화로 인해 동유럽 전역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으며,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았습니다.

동유럽 공산주의는 폭력적인 방법을 통해 펼쳐지게 되었고, 공산주의에 저항하는 이들을 유혈로 진압했습니다. 고문과 사상개조를 위한 재교육센터, 투옥, 강제 노동 착취, 정치적 암살, 재판의 판결 폐기, 대량 수입을 통해 실제 법령들을 없애 나갔습니다. 무기 경쟁을 통해 냉전이 지속되는 동안, 불안정한 평화가 유지되었고 동유럽 공산주의 국가 시민들은 많은 희생을 감수해야 했습니다.

셀 수 없이 많은 죽음이 있었고, 수천만의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억압, 검열, 테러는 공산주의의 작은 미래를 보장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 모든 어려움은 결국 사람들은 진정한 자유를 갈망하게 했고, 이 상황을 뜯어 고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주었습니다. 공산주의의 몰락은 무엇보다 이념의 붕괴를 일으켰고, 이전 소련 연방에 속한 대부분의 국가들로 하여금 독재 정부의 영향에서 벗어나게 해주었습니다.

루마니아 반공 혁명 30주년인 지난달 22일(현지시간) 시민들이 수도 부쿠레슈티의 전 공산당 중앙위원회 건물에 혁명 당시 희생자들의 이름이 비치는 것을 바라보고 있다. 루마니아 혁명은 1989년 12월에 발생한 반공 민중혁명으로 16일 티미쇼아라에서 발단, 22일 부쿠레슈티에서 시작됐다. 당시 루마니아 독재자였던 니콜라에 차우셰스쿠와 그의 아내 엘레나 차우셰스쿠가 공개 처형당했고 시민 천 명 이상이 희생됐다. (출처: 뉴시스)
루마니아 반공 혁명 30주년인 지난달 22일(현지시간) 시민들이 수도 부쿠레슈티의 전 공산당 중앙위원회 건물에 혁명 당시 희생자들의 이름이 비치는 것을 바라보고 있다. 루마니아 혁명은 1989년 12월에 발생한 반공 민중혁명으로 16일 티미쇼아라에서 발단, 22일 부쿠레슈티에서 시작됐다. 당시 루마니아 독재자였던 니콜라에 차우셰스쿠와 그의 아내 엘레나 차우셰스쿠가 공개 처형당했고 시민 천 명 이상이 희생됐다. (출처: 뉴시스)

문화는 이 과정에서 필수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자유롭게 자기 생각을 말할 수 있게 되었으며, 거짓으로 속이고자 하는 자나 생각 하지 않는 자들에게 비난을 할 수 있는 문화가 만들어졌습니다. 공산당 조직원이라고 밝혀진 지식인들이 각자 자신의 나라에서 어려움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민주주의를 옹호하는 지식인들은 검열 중단을 요구하는 글을 써서 알렸으며, 이러한 행위들로 인해 많은 위협을 받게 되었습니다.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경제 개혁, 특히 ‘글라스노스트’를 실시했을 때,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글라스노스트’는 투명한 소통의 자유란 의미입니다.

친애하는 여러분, 이 자리에는 민주주의로 평화적 이양을 촉구했던 고르바초프 팀 중에 가장 중요한 분들 중 한 분이 계십니다. 철학 박사로써 후에 독립 몰도바 의회 의장직을 역임하게 된 페트루 루친스키 전 몰도바 대통령님께 경의를 표합니다.

평화로운 동유럽의 전체주의 정권 전환 후, 국민들의 자유로운 민주주의 선거로 뽑힌 첫 대통령들은 대표적인 지식층 지도자들이었습니다. 지식층에서 대통령이 선출되었다는 것은 세계 정치사에 있어 매우 생소한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기억할 것은 유명한 첫 민주주의 대통령입니다.

헝가리의 첫 번째 대통령은 작가 협회의 대표였습니다. 불가리아의 첫 민주주의 대통령은 소피아 대학을 졸업한 철학자였습니다. 리투아니아의 첫 민주주의 대통령 비타우타스 란즈베르기스는 음악학회의 회장이었습니다. 에스토니아의 첫 민주주의 대통령 또한 음악 학회의 회장이었고, 에스토니아 두 번째 대통령은 농업 대학의 학장이자 총장이었습니다.

이 학구적인 엘리트 지식층은 부패, 비리, 사익이나 가족의 이익에 대해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조국과 국민, 유럽의 변화, 그리고 세계의 변화를 위해서 일했습니다.

공산주의와 공산주의 붕괴 후 민주주의로의 과도기는 쉽지 않은 경험이었습니다. 그들에겐 성경 속 ‘출애굽기’를 읽는 것이 무엇보다 유익하고 유용했을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의 출애굽기를 통해 유대인들이 거룩한 땅에 도착하는데 왜 40년이나 걸렸는지를 이해 할 수 있습니다. 금송아지를 숭배하는 것, 집단적 행음의 유혹, 폭력 그리고 반역은 무엇을 의미하며, 법의 필요성 그리고 십계명을 지키지 않은 것에 대한 벌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이런 역사적인 기억은 과거 공산주의 국가 출신 시민들이 왜 전체주의적 접근을 거부했는지 잘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자유의 교육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고통의 기억’이 필요합니다. 자유의 진정한 가치는 우리가 더 이상 자유를 가질 수 없을 때에야 비로소 인식되기 때문입니다.

민주적인 권력과 각 개인의 자유는 부의 분배에도 그 목적을 두고 있었습니다. 유명한 러시아 작가인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에서 보면 이반이라는 인물이 알료샤라는 사람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들에게 자유와 빵 중 하나를 선택하라.’ 하면 대부분이 빵을 선택할 것이다. 이것 또한 심리적인 전략으로써 전체주의 체제 속에서 사람들을 복종하도록 만들어 정권을 유지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전에 공산 체제 속에 살았던 많은 사람들은 당시 정부로부터 안정적으로 급여를 받았던 시절을 그리워했습니다. 비록 그들은 비참한 환경에서 살았지만, 적어도 정부로부터 거주지를 할당 받았으며 최소한의 식량을 배급 배급 받을 수 있었습니다. 비참했음에도 그러한 삶을 계속 유지하도록 만들었던 가장 중요한 심리적인 요인이 있습니다. 역설적이게도 모두가 평등하게 가난했기에 국민들은 서로 서로에게 모욕감을 느끼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그 시절의 향수로 인하여 신(新)공산당이 창설되었습니다. 서구에서 온 민주주의 시장경제사회에서 사람들은 자유롭게 물질적인 이익을 쫓았고 그로 인해 부의 양극화는 극대화되었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노동의 질이나 양, 개인의 사회 복지 기여도와는 상관없이 부의 차이가 벌어졌습니다.

이는 우리를 포함한 서구사회의 민주주의 원칙을 따르는 사람이라면 자주 마주하는 현실입니다. 투명성이 보장되어야만 정부의 정책 이행 과정과 정경유착 여부를 엄격하게 감독할 수 있습니다.

이는 유럽인들에게서 인본주의에 대한 사명의식을 없애고자 했던 공산 정권과 투쟁하며 희생당한 수천만 명의 생명의 대가로 얻은 경험입니다. 희생을 통해 자유를 되찾았고, 우리의 권리뿐만 아니라 종종 사회적으로, 심리적으로 어려운 상황이 닥칠 때 책임감에 대한 인식도 점차 되찾게 되었습니다.

이전에 공산체제 국가에서 살았던 사람들은 반세기에 걸쳐 그들의 삶에 대한 권리를 포함한 모든 권리를 박탈당했습니다. 고통을 겪으며 인권을 박탈당하는 과정에서 투쟁하며 얻은 교훈은 첫 째로 자유는 소중하며, 우리는 타인의 자유를 존중해주고 서로를 이해해주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루마니아 국민들이 2014년 12월 21일(현지시간) 부쿠레슈티에서 1989년 일어난 민중 봉기를 재연하면서 골판지 상자 더미를 불 지르며 반공 구호를 외치고 있다. 처형당한 독재자 니콜라에 차우셰스쿠의 정권을 무너뜨리고 수많은 사람이 희생된 반공 민중 봉기가 지난 1989년 12월16일 루마니아 남서부 티미쇼아라에서 시작해 21일 수도 부쿠레슈티까지 확산했다. (출처: 뉴시스)
루마니아 국민들이 2014년 12월 21일(현지시간) 부쿠레슈티에서 1989년 일어난 민중 봉기를 재연하면서 골판지 상자 더미를 불 지르며 반공 구호를 외치고 있다. 처형당한 독재자 니콜라에 차우셰스쿠의 정권을 무너뜨리고 수많은 사람이 희생된 반공 민중 봉기가 지난 1989년 12월16일 루마니아 남서부 티미쇼아라에서 시작해 21일 수도 부쿠레슈티까지 확산했다. (출처: 뉴시스)

민주주의 의식을 강화시키는 과정은 민주주의적 법과 제도를 세우는 과정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합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미국의 분권제도를 남미와 동남아시아에 적용시키려 하자, 예외 없이 전체주의 체제가 먼저 자리 잡았고, 시간이 지난 후에야 민주적 의식이 생겨나면서 민주적 제도가 구축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민주주의 문화는 새천년 초기에 위협을 받았습니다. 또한 우세한 탈근대주의(포스트모더니즘) 문화로 인해 이 민주주의 문화는 유럽 연합 창시자들이 보인 신념에 대해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일반 시민들과 같이 정치 지도자들은 신뢰와 미덕, 중도적인 자세와 중요한 도덕 가치를 맞춘 통치의 사회적 중요성을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사회가 특권층과 불우한 계층으로 나누어져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분열 되고, 통치가 어려워졌을 때 위의 가치들은 다른 이유에서 정치를 재건하는 도구가 될 것입니다.

공산주의 기간 동안 집산주의(集産主義) 충동이 있었으며 동시에 자본주의를 앞당겼던 이기적인 개인주의가 있습니다. 도덕 가치의 회복은 물의 대량공급이나 상품의 제조자와 소비자들로만 해결될 수 있는 수요를 향한 부족한 대안이었습니다.

제 아들, 제 딸, 저의 학생들은 그 당시 부카레스트 대학 광장에 있었습니다. 한 밤중에 진압군은 비무장 시위에 대항하여 탱크를 가지고 진입했고 그들은 정부 기관을 위협하지 않고 군인들에게 꽃을 제공하였습니다.

수십 명의 사람들이 죽었고, 수천 명이 체포되어 고문당했습니다. 체포된 사람들은 루마니아의 ‘티미쇼아라’라는 다른 대학 도시에서 5 일 전에 일어난 것처럼 살해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50만 명의 부카레스트 시민들이 다음날 탱크를 둘러쌌고 이것은 공산정권 붕괴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공포와 두려움 없이 독재로부터의 자유를 외치던 사람들의 연대가 드디어 자유를 얻을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그리고 역사의 밝은 순간 중 하나에서, 사람들은 신념, 자유와 민주주의의 신념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쳤습니다.

동유럽이 어떤 참혹한 피해도 없이 공산주의 독재체제에서 민주주의로 넘어온 것은 세계 역사에서도 아주 드문 경우입니다. 공산주의 정권과 그 아래에서 탄압받았던 생존자들은 그들이 겪어야 했던 고통을 그 누구도 겪지 않기를 바랍니다. 모든 도시들은 해당 국가의 민주화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이런 상황은 특히 루마니아에 의미하는 바가 큽니다. 루마니아는 지난 마지막까지 유혈사태가 벌어졌던 곳입니다. 이런 루마니아의 상황은 한반도에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들과 흡사한 것입니다. 루마니아도 두 개의 다른 국가로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소련의 붕괴와 몰도바의 독립 후, 특히 루친스키 몰도바 전 대통령의 임기기간 동안에는 루마니아와 몰도바는 분쟁 없이 원만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천지일보=안현준 기자] 에밀 콘스탄티네스쿠 루마니아 전 대통령이 20일 인천의 한 호텔에서 가진 이상면 천지일보 대표와의 인터뷰에서 질의를 경청하고 있다. ⓒ천지일보 2018.9.21
[천지일보=안현준 기자] 에밀 콘스탄티네스쿠 루마니아 전 대통령이 20일 인천의 한 호텔에서 가진 이상면 천지일보 대표와의 인터뷰에서 질의를 경청하고 있다. ⓒ천지일보 2018.9.21

친애하는 여러분,

이 일은 가까운 과거의 일입니다. 민주주의 자유 미래에 대한 답은 각각의 세대 그리고 결국 우리 각자의 선택에 달려있습니다.

저는 공산주의 독재에서 민주주의로 넘어가는 이 사건과 경험에 대해서 여러분들에게 진심으로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다음 세대인 여러분들이 이 경험을 통해서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이 안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지 선택 할 수 있습니다.

강연을 마치기 전, 대한민국이 겪었던 일들을 통해서 우리 루마니아 사람들이 무엇을 배울 수 있었는지, 그리고 제가 지난 24년 동안 한국을 3번 방문하면서 한국에 대해 무엇을 이해하게 되었는지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한국을 방문할 때 마다 느꼈던 것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애국심입니다. 국제화가 된 사회이지만 애국심은 점점 더 커져가고 있으며 한국인들의 단결하도록 하는 첫번째 큰 요소였습니다. 지난 30년 동안 저 또한 그런 정신에서 제 경험을 나누고 싶습니다.

지난 30년 동안 우리는 영토에 대한 보전을 보장받아 왔습니다. 경제도 안정적이었습니다. 유럽 연합과의 통합으로 경제도 보장되었습니다. 그래서 지난 5년 동안에는 유럽 연합에서 가장 높은 경제 성장률도 이루어 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루마니아가 단일국가가 된 지 100년이 지난 지금, 오히려 우리는 분열되어 있으며 각자의 정치적 그리고 사회적 관심에 의하여 나뉘어져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공동의 목표 즉, 우리를 하나로 묶어주는 것을 다시 찾아야 합니다. 국제화된 세계에서 우리가 소유한 것에 의해서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가 누구인지를 깨달음으로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다시 정의해 보아야 합니다. 이를 통해서만이, 우리는 국제화된 세계 속에 살면서 다른 모든 국가들을 존중하고 동시에 우리의 민족 주체성과 국위를 지켜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에밀 루마니아 전 대통령 약력

루마니아 제3대 대통령

부쿠레슈티대학교 총장

루마니아 인민행동당 회장

세계사법프로젝트 이사회 이사

레반트문명문화연구소(ISACCL) 회장

유럽문화외교협회(ICD)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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