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레반

오탁번(1943-  )

잣눈이 내린 겨울 아침, 쌀을 안치려고 부엌에 들어간 어머니는 불을 지피기 전에 꼭 부지깽이로 아궁이 이맛돌을 톡톡 때린다 그러면 다수운 아궁이 속에서 단잠을 잔 생쥐들이 쪼르르 달려 나와 살강 위로 달아난다

배고픈 까치들이 감나무 가지에 앉아 까치밥을 쪼아 먹는다. 이 빠진 종지들이 달그락대는 살강에서는 생쥐들이 주걱에 붙은 밥풀을 냠냠 먹는다 햇좁쌀 같은 햇살이 오종종히 비치는 조붓한 우리 집 아침 두레반

 

지금은 많이 쓰지 않는, 그래서 잊혀진 어휘들을 만난다. ‘잣눈’, ‘이맛돌’, ‘아궁이’, ‘부지깽이’, ‘살강’, ‘까치밥’, ‘조붓한’, ‘두레반’ 등등, 그 뜻을 알 듯 말 듯한 말들이지만 참으로 살갑고 따뜻한 느낌을 주는 말들이다. 잊혀진 고향을 생각하게 하는 시어들이 아닐 수 없다.
‘주걱에 붙은 밥풀을 냠냠 먹는 생쥐’, ‘다수운 아궁이’, ‘오종종히 비추는 햇살’, ‘부지깽이로 톡톡 때리는 이맛돌’, ‘종지들이 달그락대는 살강’, 이런 말들이 모두 함께 둘러 앉아 밥을 먹는 ‘조붓한 우리 집 아침 두레반’. 그래서 두레반은 더욱 정겹고 따뜻했던 우리 기억의 반상이 된다. 시는 이와 같이 우리의 먼 기억 속의 일들을 떠올리게 해주고, 그러므로 자칫 메말라버리기 쉬운 우리의 마음에 따스하고 정겨운 입김을 불어넣어준다.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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