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영헌 사랑의나눔쌀 회장. ⓒ천지일보(뉴스천지)

‘나눔 문화’의 바람을 일으키는 허영헌 회장
농부‧고객‧업체‧이웃 모두 웃게 하는 ‘사랑의나눔쌀’
 

[천지일보=이승연 기자] 화려했던 행사가 끝남과 동시에 골칫덩이 신세로 전락해버려 결국에는 쓰레기차로 직행하게 되는 ‘화환(花環)’. 화환의 이러한 운명은 이제 우리 사회에서 ‘아깝지만 어찌할 수는 없는, 어쩌면 당연한 모습’이 돼 버렸다.

의미 없이 형식적으로 행해지던 이런 관습 속에서 ‘나눔’이라는 단어를 떠올린 사람이 있었다. 바로 ‘쌀 화환’을 만들어낸 창시자이자 (주)사랑의나눔쌀의 든든한 수장이기도 한 허영헌 회장이 그 주인공이다.

어쩌면 사랑의나눔쌀은 ‘기업’이라는 단어보다 ‘나눔 단체’라고 말하는 게 더 어울릴지도 모른다. 그만큼 사랑의나눔쌀은 기부 문화에 떠오르는 샛별이라 불릴 만큼 적극적으로 ‘나눔 문화’의 바람을 일으켰다.

허영헌 회장의 노력 덕분일까? 요즘 결혼식장이나 장례식장 등 큰 행사에 가보면 화환이 서 있을 자리에 쌀 포대가 줄지어 행사장을 빛내주고 있는 모습을 종종 목격한다. 또 경조사 때 들어온 쌀 화환에 있던 쌀로 어려운 이웃을 도왔다는 훈훈한 미담 기사도 곳곳에서 눈에 띈다.

쌀 화환은 이름 그대로 꽃이 아닌 쌀이 주인공이다. 이 제품은 쌀을 지게에 실어 나르던 과거의 추억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허 회장이 구상했는데 그중에서 지게는 화환의 골격처럼 쌀 포대를 안전하게 고정해주는 지지대 역할을 한다. 지게에 쌀 포대를 주문량만큼 올려두고 나머지는 리본 등으로 장식하면 쌀 화환이 완성된다.

◆ 몹쓸 ‘바람’ 덕분에 탄생한 ‘쌀 화환’

쌀 화환이 등장하기 전 화환시장의 규모는 약 7000억 원에 달했다. 농림수산식품부가 지난해 전국 농협화훼공판장 등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살펴보면 국내에서 연간 소비되는 화환 수는 700만 개에 이를 정도로 많다.

제조업을 하던 그가 어떻게 이 큰 화환시장에 뛰어들어 성공을 거두고 나눔 문화를 이끌어가는 것일까. 그 사연을 묻자 그는 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당시에는 ‘몹쓸 바람’이었지만 이제는 ‘고마운 바람’이 돼버린 ‘바람’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18년 동안 열심히 제조업에 종사하면서 악착같이 돈을 모은 그는 2007년 확장 개업을 하게 됐다. 개업식 당일, 허 회장의 새 출발을 축하하는 지인들로부터 200개가 넘는 화환과 화분이 들어왔다. 하지만 그날따라 거세게 불어오는 바람에 화환들은 계속 쓰러졌고, 직원들은 넘어지는 화환을 붙잡고 있느라 개업식도 제대로 진행할 수 없었다. 화환은 애물단지에 불과했다.

“사실, 화환이 쓰러졌던 것보다 더 큰 문제는 행사가 다 끝난 후에 발생했습니다. 그 많은 화환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몰라 고민하다 결국 김해시청에 협조를 구해 쓰레기차 2대 분량의 화환을 다 버렸죠.”

알뜰하고 검소하게 살아온 허 회장에게 그날의 일은 충격적이었다고 한다. “그렇게 버려지는 화환이 아까워 고민하던 중 당시 쌀값 하락으로 논을 다 갈아엎는 농민의 모습을 보고 쌀과 사업의 연관성을 찾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다 어렸을 적 집안 행사가 있을 때 이웃 농민들이 와서 일을 도와주고 돌아갈 때 지게에 쌀을 지어 보내던 모습이 생각났고 그 추억을 바탕으로 쌀 화환을 개발하게 된 것이다.

그는 “화환 대신 쌀 화환을 보내면 행사도 잘할 수 있고 누군가는 행사 후 쌀을 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며 “이뿐 아니라 농촌에 자고 있던 쌀을 빼낼 수 있어 자연스럽게 농민을 도울 수 있는 등 쌀 화환은 많은 장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쌀 소비를 장려한다고 정부에서는 막걸리나 쌀 과자 등 쌀 가공식품을 권장하고 있지만 허 회장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그는 “막걸리나 쌀 과자 권장도 농민을 도울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매일 막걸리와 쌀 과자만 먹을 수 없지 않느냐”며 “하지만 쌀 화환은 농민을 돕는 것뿐 아니라 얼마든지 활용이 가능해 나눔 활동으로 확산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 ‘쌀 화환’으로 퍼져가는 ‘나눔 물결’
그의 바람처럼 현재 쌀 화환의 나눔 문화는 점점 퍼져가고 있다. 올해로 4년 차에 접어든 사랑의나눔쌀은 전국에 가맹점도 184개로 늘었고 하루 평균 주문량은 300여 건에 달할 정도로 의미 있는 쌀 화환을 찾는 전화가 늘었다. 덕분에 한 달에 10억 원이라는 매출이 보장됐고 이를 통해 쌀 지게를 만드는 공장, 포장지 공장 등 여타 협력업체들도 함께 성장하고 있어 요즘 허 회장은 더 보람을 느낀단다.

매출이 늘어 가맹점주에게도 도움을 줄 수 있고 관련 업종에 일자리를 만들어 주는 것이 그에게 기쁨이 되지만, 사실 그에게 더 힘을 주는 건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이다.

“아침마다 오늘도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는 생각에 기쁜 마음으로 눈을 뜬다”는 그는 “이 사업을 하면서 처음으로 딸에게 ‘아빠 같은 사람이랑 결혼하고 싶다’는 고백도 듣게 됐다”며 뿌듯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가끔 주변에서는 기업이 아니라 봉사단체라는 말까지 듣기도 한다는 허 회장은 오히려 이런 말이 좋단다. 그는 “매일 나눔 활동을 할 수 있어 주 5일 경상남도 김해시에서 경기도 광명시까지 출근하는 그 길이 너무 즐겁기만 하다”며 “부자라고 많이 도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조금씩 매일 돕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한다”고 말한다.

▲ 결혼식, 개업식 등에서 삼단화환 대신 주목받고 있는 ‘쌀 화환’. 사랑과 나눔의 정신을 바탕으로 불필요하고 소모적인 과거의 틀에서 벗어나 사용 후에 ‘나눔’으로도 이어져 사회에 보탬이 되고자 허영헌 회장이 만들었다. (사진제공: (주)사랑의나눔쌀)

◆ 사랑의나눔쌀 ‘나눔 정신문화’ 만들어가길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늘 가난했고, 너무 가난해 평생 본인의 장화 한 켤레 못 사본 게 한이 된 허 회장이지만 그는 “다시 태어나도 이 사업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한다.

본인이 어렵게 살다 보니 어려운 사람을 만나면 가슴이 아파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이유 때문도 있지만 이 사업을 하면서 그가 만난 따뜻한 사연들이 그를 쌀 화환 사업에 더 빠지게 했다.

“어떤 고객은 부친상에 들어온 쌀 화환의 쌀을 모아 살아생전 아버지가 잘 가시던 고향 마을회관 어르신들을 모셔 잔치를 베푸는 것을 봤다”며 “그런 고객들을 만날 때면 마음이 따뜻하고 뿌듯해진다”고 말한다.

또 한번은 신용불량자로 매일 일도 안 하고 놀던 남편이 사랑의나눔쌀 가맹점을 내면서 열심히 생활하는 모습을 보이자 그의 아내가 감사편지를 보내온 적도 있었다.

이렇게 따뜻한 사회를 그리는 허 회장의 ‘나눔’ 사랑은 사업장 외에서도 나타난다. 그는 개인적으로 카네기 클럽에 가입해 꾸준히 봉사도 하고 있고 그것도 모자라 ‘1:1 사랑의 끈 연결 운동’을 통해 한국장애인협회를 후원하고 있다. 게다가 허 회장은 이곳을 후원하기 위해 담배도 끊어가며 후원금을 마련할 정도로 ‘나눔’과 늘 함께하려고 노력한다.

이뿐 아니라 올해부터는 사회적 기업을 지향하며 순이익의 10% 이상을 사회에 기여하기로 결정하고 직원들과 상의해 일 년 내내 꾸준히 자금을 모을 수 있도록 사전집행제도를 만들기로 했다.

앞으로도 그의 바람은 쌀 화환을 통해 따뜻한 이야기와 따뜻한 나눔 활동이 퍼져가는 것이다.

허 회장은 “돈을 만들어 기부해야 한다고 생각하기보다 ‘기존에 생각 없이 버려지던 돈으로 쌀 화환을 구매해 자연스럽게 기부에 동참할 수 있다’는 정신문화 운동이 일어났으면 한다”고 바랐다.

허 회장의 말처럼 사랑의나눔쌀 사업 취지를 잘 이해해 더 많은 고객이 쌀 화환을 찾고 그 쌀이 더 많은 소외된 계층에게 전달돼, 쌀 화환 하나를 통해 더 많은 국민이 따뜻한 행복을 누리게 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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