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한 쪽박 찬밥 한 술이라도(水一瓢食簞)
그저 먹지 말며(切勿素餐)
한 그릇을 먹었으면(受一飯)
한 사람의 몫을 하되(使一力)
모름지기 의로움의 뜻을 알라(須知義適)

매월당 김시습 作 ‘북명(北銘)’ 中

[천지일보=김지윤 기자] 영국 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은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낫다”라는 말을 남겼다. 소크라테스는 이전에 “너 자신을 알라”라며 먼저 자아성찰에 힘쓰라고 말하고 있다.

조선 중기 세종대부터 세조대까지 삶을 보낸 매월당 김시습도 마찬가지다. 마땅히 사람이라면 배만 채울 것이 아니라 ‘의(義)’를 알라고 한다. 앞서 말한 영국 철학자와 고대 그리스를 풍미했던 현인의 명언처럼 ‘의’는 자신이 누구며, 사람의 명분을 가지고 어떠한 일을 해야 하는지 깨달아야만 하는 과제다. 그렇지 않고서 ‘사람’이라고 입에 담을 수 없으리라.

김시습이 ‘북명’을 시작(詩作)했을 때 시대적 상황은 암울했다. 수양대군은 조카인 단종을 강제 폐위시키고 왕위에 올라 나라를 통치하던 시기였다. 이때 비밀리에 단종을 다시 왕위에 모시려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김시습이 제자로 여길 만큼 아꼈던 남효온 역시 생육신 중 한 사람으로 수양대군 앞에서 충언과 직언을 하는 데 서슴지 않았다.

하지만 남효온이 불혹도 채 안 돼 생을 마감했다는 소식을 접한 김시습은 애통한 마음에 시를 지었다. 사랑하는 이를 잃은 슬픔도 슬픔이지만 왕위를 찬탈한 수양대군을 향해 인간의 도리에 대한 말을 작품을 통해 아낌없이 쏟아부었던 것이다.

‘북명’은 김시습이 공주 계룡산 한 초가에 칩거할 무렵 북쪽 벽에 걸어두고 아침저녁으로 읽었다. 북명을 좌우명으로 삼고 평생토록 새기고 또 새기면서 선비로서 풍모와 염치를 지켰다.

특히 작품에서 ‘칭찬을 경계하라’는 구절도 있다. 세태의 흐름은 사특하기 때문에 칭찬에 기뻐하지 말며, 욕을 하더라도 성내지 말라는 게 잠언이다. 또한 처신과 말에 휘둘리지 않고 올바른 몸가짐과 법도를 항시 생각에 둘 때에 비로소 태평성대가 온다는 것이 그의 논리다.

그의 문장력은 당대 으뜸이었다. 태어난 지 불과 8개월 만에 시작(詩作)했을 정도니 그와 견줄 만 한 사람이 없었을 정도다.

그는 자신의 능력에 대해 “천지가 내게 문장을 빌려줬으니 틈틈이 쓰지 않고 배길 수 있겠는가”라고 설명했다. 현실을 벗어나 상상의 세계를 바탕으로 한문소설 <금오신화>와 다양한 한시를 저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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