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쿠크’ 뭐길래
개신교 ‘으름장’에 정치권 ‘움찔’

수쿠크(sukuk)로 불리는 이슬람채권의 비과세 법안 논쟁에 정치권은 물론 종교계까지 끼어들고 있다. 야당은 중동 원전 수주와 결부시켜 수주를 따낸 대가로 정부가 수쿠크 비과세 법안을 추진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고, 여당 일각에서는 특정 종교에 대한 특혜라는 주장을 내세우고 있다.

기독교계에선 선거 1년여를 앞둔 표심(票心)을 이용해 낙선운동까지 거론하며 정치권을 압박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이 벌어지자 경제적 이유로 수쿠크 발행을 추진했던 기획재정부는 예상치 못한 복병을 만나 난색을 표하고 있다.

외화표시채권 중의 일부인 수쿠크 발행에 왜 이토록 정치권과 종교계의 입김이 거세게 불고 있는지 이면을 짚어봤다.


‘이슬람시장’ 대규모 자금 쌓여 해마다 15% 성장
수쿠크 면세, 글로벌 스탠다드 “OECD‧UN서 인정”

[천지일보=김두나 기자] 정부의 수쿠크 발행의 가장 큰 목적은 경제적인 이유에서다. 간단히 말해 오일머니(중동자금) 유치를 통한 외화조달 통로의 다변화 정책이다. 기획재정부는 외화 유동성 확보라는 분명한 명제 아래 지난해 9월 ‘이슬람금융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을 마련했다.

◆중동자금, 외화유동성 확보 수단

이 개정안의 시초는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국내에 유입된 미국과 유럽 자본이 금융위기 당시 썰물처럼 빠져나가면서 우리 경제는 외화유동성 취약이라는 치명타를 발견하게 된다.

만일 외화자본 차입통로를 미국이나 유럽 외에 중동을 비롯한 다른 국가까지 확대했다면 충격을 완화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게다가 수쿠크는 여타 외화채권과 달리 반드시 실물투자를 수반하기 때문에 급격한 유출입을 막을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외국자본이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만 대부분 미국이나 유럽 쪽에 치우쳐 있다”며 “금융위기 당시 외화자본 차입통로를 중동까지 확대해 다변화했다면 다른 자금이 빠져나갔어도 중동자금으로 위험을 분산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투자증권 해외사업추진실 남경훈 과장은 “수쿠크를 도입하게 된 근본적인 필요성은 글로벌 금융위기 때 겪은 외화 유동성 취약 극복에 있다”며 “이는 국가적인 위기대처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슬람금융, 블루오션 부상

중동자금은 글로벌 금융시장의 새로운 블루오션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해마다 15%의 성장률을 보이는 데다 샤리아(이슬람율법)에 의한 이자수수료 금지로 대규모 자금이 쌓여있음에도 불구하고 금융상품이 낙후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이 같은 측면에서 우리에게는 풍부한 자금을 활용할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삼을 수 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중동국가의 여유 자금을 들여오면 우리 경제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수쿠크 발행 규모도 크게 늘어나는 추세다. 2000년대 이후 오일머니가 축적되면서 지난해 전 세계에서 발행된 수쿠크 규모는 390억 달러로 전년에 비해 40% 넘게 늘었다. 올해는 450억 달러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이다.

증권업계에선 이 같은 흐름에 우리나라도 하루빨리 동참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한국투자증권 남경훈 과장은 “현재 전 세계적으로 미국이나 영국을 대체할 만큼 많은 달러를 보유하고 있는 나라는 중국과 중동으로 이들 지역이 금융관심지역이 될 것”이라며 “현재 이슬람금융 유치는 금융트렌드가 됐다. 해야 되나 말아야 되나 설득을 할 단계가 아니라 금융발전을 위해 꼭 해야만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원유 수입으로 매년 큰 폭의 적자를 보이고 있는 대(對)중동 경상수지를 줄이기 위한 방법으로 이슬람채권 발행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수쿠크를 발행하면 국내 기업이 중동 현지에 건물을 세우거나 원전수출을 할 경우 저렴한 금리로 자금을 조달해 유리한 수주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우리투자증권 안현덕 글로벌파이낸스팀장은 “새로운 파이낸싱을 할 수 있는 자원을 넓혀주고 기업자금 조달 차원에서 다변화를 줄 수 있다”고 말했다.

◆“기독교 주장 논리적으로 설명 안 돼”

“영국이나 미국 쪽은 프랑스 등은 기독교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선제적으로 이슬람금융을 유치하고 있다. 영국은 이슬람 금융의 메카로, 프랑스는 허브로 만들겠다며 경쟁하고 있다. 이 가운데 우리나라는 일부 정치권과 종교단체의 편견으로 이슬람시장을 놓치게 생겼다.”

3~4년 전부터 수쿠크 발행을 준비해온 증권사들은 이 같은 현실에 안타까움을 금치 못하고 있다. 주요 증권사들은 2007년께부터 수쿠크 발행에 대비해 현지 금융회사들과 제휴를 맺고 준비해왔다. 이들 증권사는 수쿠크 발행을 위한 법개정안이 특혜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A증권 관계자는 “이슬람채권은 기타 외화표시채권과 동일하지만 이자수수료를 금지하는 샤리아를 회피하기 위해 형식적인 거래를 수반하고 있을 뿐이다. 비과세되는 다른 일반 채권과 동일하다”며 “이는 국제적으로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국제연합(UN)에서도 인정하는 글로벌 스탠다드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개신교계의 편파적인 행동에 대한 불만도 커지고 있다. B증권 관계자는 “한국기독교총연합 등 개신교계 단체가 반대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이슬람교가 들어오는 것 자체를 싫어하기 때문”이라며 “목사님 몇 분의 의견이 아니라 전체 기독교인의 의견을 들어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도 기독교인이지만 이 같은 행동은 논리적으로 설명이 안 되는 부분이며 국민을 위한 정책에 적극 동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종교와 정치는 분리되야 하는데 낙선운동까지 불사하겠다는 건 거의 폭력 수준에 가깝다”고 덧붙였다.

이슬람채권을 둘러싼 논쟁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순전히 국가의 경제를 위해 추진한 세법 개정안이 일부 종교단체의 반발로 인해 정치권까지 발목 잡히는 일은 매우 이례적인 경우다.

특히 다문화‧다종교 사회임을 자부하는 대한민국이 특정 종교 특혜라는 시비에 가려 국익을 창출할 수 있는 기회를 저버린다는 건 비합리적이라는 지적이다.

개신교를 국교로 삼고 있는 미국이나 프랑스는 오히려 이슬람금융을 서로 차지하겠다고 나선 마당에, 우리나라는 ‘국익’에 앞선 ‘종단 이기주의’로 굴러들어오는 복을 발로 차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면세혜택을 받는 다른 외화표시채권과의 형평성 문제에서도, 글로벌 시대에 글로벌 스탠다드를 준수하는 차원에서도 수쿠크법 통과는 종교적 차원에서가 아니라 해마다 무섭게 성장하는 오일머니를 끌어안을 ‘기회창출’이라는 측면에서 논의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용어설명: 수쿠크는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것을 금지하는 이슬람율법에 따라 만들어진 금융상품이다. 실질적으로 채권이지만 부동산 거래 등의 실물거래를 통해 이자 대신 수익금을 지급하는 형태로 취급된다. 수쿠크 발행자는 부동산 등의 자산을 특수목적회사(SPV)에 임대한 뒤 여기서 나오는 수익을 이자 대신 투자자들에게 배당금 형식으로 지급한다. 이같이 실물자산 거래가 수반되기 때문에 현행 국내법상으로 취득‧등록세 및 양도소득세 등의 세금이 부과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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