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시 무형문화재 23호 궁장 권무석 선생은 “부드러우면서도 강한 각궁이 한민족과 닮았다”고 전하고 있다. (사진=박선혜 기자) ⓒ천지일보(뉴스천지)
서울시 무형문화재 23호 궁장 권무석 선생
韓 명궁, 영국의 로빈 후드 이긴다
옛 활쏘기, 위장병·오십견 등 만병통치
각궁의 세계화 위해 오늘도 뛴다
장인, 활을 만드는 자를 뜻해

[천지일보=김지윤 기자] “장인(匠人)은 원래 활을 만드는 기능장을 뜻하는 단어였어. 그만큼 활 만들기가 가장 어려웠다는 이야기지. 어렸을 적에 형이 내게 ‘혼을 넣어라’라고 수없이 당부했어. 쏠 수 있는 활을 만들어도 혼을 넣어 만들기란 결코 쉽지 않지. 만들면 만들수록 어려운 게 활이야.”

활을 왜 만들어야 하는지 그는 알고 있었다. 질문이 채 나오기 전에 권무석(67) 궁장은 활의 역사부터 ‘궁장이 활을 만들기만 하면 되지 공부를 왜 했느냐’라는 자문(自問)을 던져가며 활의 인생을 풀어 놓았다.

권 선생은 자신이 활을 만들 수밖에 없었던 운명을 설명했다. 활을 빼놓고 한민족을 설명할 수 없기 때문에 궁장의 길을 선택했다고 한다. 그는 거두절미하고 손자에게 전래동화를 들려주듯 활에 대한 옛 이야기를 담담히 전했다.

국내 활의 역사는 동이(東夷)족부터 시작한다. 동이는 ‘활을 잘 쏘는 동녘 민족’을 뜻한다. 여기서 ‘오랑캐 이(夷)’는 ‘큰 대(大)’와 ‘활 궁(弓)’으로 자획을 풀어 설명한 것이다.

동이족의 활 실력은 중국의 제갈공명도 두려워할 정도였다고 한다. 오죽하면 제갈공명이 <동이전>에서 “동이족이 강한 이유는 활이라는 날아가는 창이 있는데 우리는 그 무기를 이길 수 없다”며 “전쟁을 해서는 안 되고 가급적 외교적으로 마무리해야 한다”고 서술했을까.

이후 고주몽이 세운 고구려와 그 뒤를 이은 발해, 고려 역시 백발백중하기로 유명했다. 이뿐만 아니라 조선을 세운 태조 이성계, 임진왜란에서 큰 공로를 세운 이순신 장군도 활을 쏘는 무술에서 진가를 발휘했다.

“신소재가 많이 발명됐지만 우리 각궁처럼 살을 멀리 쏘는 활은 없어. 중국에서 만든 화살은 100m밖에 나가지 않아. 현재 올림픽게임이라든지 아시안게임에서 남·여 양궁 최고 거리는 70m인 것으로 봐서 양궁도 멀리 나가지 않지. 로빈 후드를 배출한 영국도 시원치 않아. 반면, 삼국시대 기록을 살피면 우리 궁은 천 보(500m) 가량까지 나갔다는 것을 알 수 있지.”

우리 궁은 여느 나라보다 작은 크기지만 살이 잽싸고 멀리 나간다. 권 선생은 “우리나라의 기후와 토양이 궁을 만들기에 아주 적합하다”며 “외국에서 만든 화살보다 연하고 부드러워 유약해 보이지만 사실 반동력으로 멀리 나갈 수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가 만드는 궁의 종류는 각궁(角弓)이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물소뿔로 만든다. 이 외에도 소 등의 힘줄, 민어의 부레, 자작나무 껍질, 대나무, 뽕나무, 참나무, 명주실 등이 각궁의 재료로 쓰인다.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재료들이 한데 모여 최상의 활로 다시 태어난다. 이를 수천 번 봐온 권 선생이지만 만들 때마다 선조들의 지혜가 경이롭다고 한다.

“한민족은 똑똑해. 다른 나라의 경우 나무면 나무 등 한 가지 재료만 쓰는데, 우리는 갖가지를 사용하잖아. 똑똑하지 않고는 이런 발견을 할 수 없지. 각궁이 우리 민족을 잘 대변하지. 부드러우면서 강한 민족이 우리야.”

그의 민족에 대한 자부심은 하루아침에 나온 것이 아니었다. 권 선생이 각궁을 본격적으로 제작해야겠다고 다짐했을 때부터 역사를 파고들었다고 한다. 궁에 ‘혼’을 실기 위함이었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선진들의 혜안이 눈에 들어왔고 가슴이 두근거렸다. 가만히 앉아 각궁만 만들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육군사관학교, 경찰대학교 등을 찾아다니며 전통 활쏘기의 위대함을 전했다.

권 선생은 전통 활쏘기를 전하기 위해 활터를 돌아다니며 어르신들에게 직접 듣고 배웠다. 우리 활쏘기의 매력에 푹 빠진 그는 ‘웰빙 스포츠’라고 말했다.

“옛 법도대로 호흡까지 재현하면 위장병과 관절염, 오십견을 완화시킬 수 있지. 지금도 활터에 가면 80~90대 어르신들이 나와. 이분들의 건강은 전통 활쏘기를 꾸준히 했기 때문이야. 내가 조사도 다 해봤어.”

그는 우리 궁이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도록 길을 닦고 있다. 국내에 주재하는 외국 대사들에게 활쏘기를 손수 가르치다 문예진흥기금을 지원받았다. 이 기금으로 미국에 건너가 활쏘기 시연을 벌이기도 했다. 가까운 연변에는 사비 2000만 원을 들여 우리 궁을 만들어 기증했으며, 궁도협회까지 설립했다.

지난해에 활쏘기가 스포츠로 분류돼 지원받지 못해 권 선생은 미국을 가지 못했다. 하지만 우리의 활과 활쏘기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브랜드가 될 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계속 노력할 것이라고 전했다.

활 1점을 만들려면 손이 1000번 이상 가야 한다. 여기에 손만 대는 것이 아니라 온 정신과 혼을 불어넣었을 때 비로소 온전한 각궁이 된다. 고희(古稀)를 앞둔 권 선생의 눈빛은 여전히 청년이다. 우리 활에 대한 집념과 열정을 마음에 고스란히 담았기 때문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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