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쿠크(이슬람채권) 면세 법안 파장이 정치권을 넘어 개신교계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우리나라 전체 인구 4명 중 1명은 개신교인이다. 그렇다 보니, 개신교인에게 밉보여서는 정치인의 생명이 위태로운 게 현실이다. 이런 현실을 반영하듯 얼마 전 한기총 길자연 회장은 한나라당 임원들을 만나 “수쿠크 법안을 지지하면 낙선운동도 불사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이에 대해 개신교 신자로 알려져 있는 한나라당 안상수 대표는 “참 무서운 말씀을 하신다”고 응수했다. 개신교계의 반발 때문인지 수쿠크 법안에 대해 개인의견을 묻는 찬반 투표가 열릴 가능성도 작다고 한다.

참 대단한 개신교의 힘이다. 한편으로는 참 이상한 개신교의 모습이다. 개신교인이 따르는 예수는 정교분리를 가르치고, 예수를 따른다는 국내 개신교인들은 정책 개입을 당연시 하고 있으니 말이다. 2000년 전 예수는 가이사에게 세금을 내야하는지 묻는 제자들에게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라고 답했다. 예수의 이 말은 종교인이라도 세상 정치인들이 정한 법을 따르고, 거기에 개입하지 말라는 뜻으로도 해석된다.

수쿠크 법안에 대한 한기총의 표면적 반대 이유는 “수쿠크 법안은 이슬람교에 대한 특혜이며, 수쿠크 법안이 통과돼 자금이 국내로 유입되면 테러 자금으로 활용돼 국내에서 이슬람 과격단체에 의한 테러 위험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본질적 이유는 자금 유입과 더불어 이슬람 포교가 급속도로 확산될 것에 대한 우려다.

그러나, ‘돈’과 함께 관련 ‘신도’도 늘어날 것이라는 이상한 계산법은 어디서 기인한 것인지 궁금하다. 우리나라 개신교의 시작은 핍박과 환난에서 비롯되었고, 돈이 없던 시절 목회자들의 희생이 빛이 돼 개신교는 놀라운 성장을 일궈왔다. 돈이 넘쳐나는 지금은 오히려 온갖 비리에 실망한 교인들이 교회를 떠나고 있지 않은가.

개신교 지도자들이 이슬람의 교세 확장을 두려워한다면, 국익을 가져올 수쿠크 법안 반대에 나설 것이 아니라, 개신교 지도자들이 이슬람 지도자보다 바르고 곧게 사회에 빛과 소금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 옳을 것이다. 종단의 흥망성쇠는 ‘돈’이 좌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종단을 이끄는 지도자의 희생과 사랑에 의해 좌우된다는 사실을 진정 모른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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