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구 한동대학교 석좌교수

아랍문화권에서 10년 가까이 살아본 제게 제일 잊혀지지 않는 금 같은 격언이 있습니다. 요르단에서 아랍 팔레스타인 피란민을 돕는 사업에 종사하는 동안 자주 피란민 천막 수용소에 들를 일이 있었습니다. 천막 속 좁은 임시 거처지만 아랍 사람들은 손님 대접에 극진한 풍속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주 들은 인사말이 “베이트 나아 베이트 쿰”이었습니다. (우리 집은 당신의 집입니다) 이보다 더 정겨운 말이 있을까요? 현대사회의 제일 큰 비극은 우리 집 대문을 굳게 잠그고 아파트 출입문에 자물쇠를 겹겹이 채우고 사람이 오는 것을 환영하지 않는 풍조입니다.

1967년 여름 이스라엘과의 전쟁으로 예루살렘을 떠나 요단강을 건너서 레바논으로 피란을 했습니다. 시리아 크네이트라 지역에서 다마스카스로 피란 나온 수많은 사람들에게 긴급구호를 지휘하는 자리에서 많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우리의 6.25를 생각하며 제 적은 정성을 다해 봉직했습니다.

날마다 구라파와 북미에서 담요와 식품, 약품 등을 비행기로 날라 와서 빈들에서 새우잠을 자는 어린이들과 노인들에게 나누어 주던 일은 지금도 눈물 없이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급하게 피란민 여성들에게 베개를 만들게 했습니다. 깔고 덮을 것도 필요하지만 베고 누울 것이 없으면 잠이 안 온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6.25전쟁 때 우리나라 피란민을 연상했습니다. 그들의 천막집이 꼭 우리 집 같은 측은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집이 나의 집입니다.

요사이 우리는 이집트의 혼란한 정국소식을 날마다 접하고 가슴이 쓰립니다. 카이로에서 날마다 출퇴근을 하면서 지금 시민봉기 집회가 열리고 있는 곳을 지나다녔습니다. 카이로가 제게는 남의 나라 도시가 아닙니다. 나와 내 가족이 몇 년 동안 사랑을 받으며 살던 제2의 고향입니다.

이집트는 우리와 비슷하게 5000년, 반만년의 유구하고 화려한 역사를 가진 자랑스런 민족국가입니다. 아랍계 이집트종이 98%, 우리처럼 단일민족입니다. 누비안, 베자 등 소수민족과 외국인 정착민(아르미니아, 희랍 등이 겨우 2%입니다.)

저는 애굽(이집트)을 떠난 지 40년이 가깝지만 그 나라 8000만 국민과 나일문명의 사랑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전혀 외국이라는 인식이 제게는 없습니다. 그들이 자기네 집(메이트)을 제게 내 집처럼 생각하게 해 준 것은 아랍문명의 우수한 본질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집트에서 국제아동기금(UNICEF)의 일을 하는 동안 저는 이따금 나일 강을 남쪽으로 내려가서 아스란 일대 황무지를 몇 시간씩 찾아가 유목민들의 원시적 생활을 보았습니다. 아주 특별한 일화가 있습니다.
어느 조그만 부족이 살고 있는 마을에 갔을 때였습니다. 반갑게 맞아주는 족장(族長)도 “이집은 당신의 집입니다. 편히 앉고 우리 음식을 함께 들자”고 꼭 우리나라 시골에 간 것 같은 인상이었습니다.

가족이 어떻게 되느냐고 물었습니다. 우리 유니세프의 주요사업이 가족계획이었습니다. 할아버지 족장께서 며느리들 불러서 애들이 몇 명인지 말하라고 명했습니다. 수줍어하면서 그 중년의 여인은 “17명을 낳아서 다 잃고 셋만 남았다”고 조용히 그러나 눈물을 머금으며 말했습니다.

그 후 수십 년이 지난 지금 물론 많은 발전이 있어 왔습니다. 그러나 지금도 삶의 질이 세상에서 112번째로 어렵습니다. 여성문맹자가 아직도 50%가 넘습니다. 그런데 무바라크 대통령은 저로서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천문학적인 부귀를 부정하게 모아서 해외로 빼돌린 것으로 보도되고 있습니다.

이집트, 우리의 다른 고향이 우리를 목메어 부르고 있습니다. 아랍나라들로 우리의 사랑을 보내야 합니다. 우리가 내 집처럼 가서 섬겨야 할 시대가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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