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관우 칼럼] 역사 속에 잊혀진 종친부 변천사 재조명(6)
[박관우 칼럼] 역사 속에 잊혀진 종친부 변천사 재조명(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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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관우 역사작가/칼럼니스트

1907년(융희 1)에 발생한 헤이그 특사 사건의 결과로 고종황제가 강제 퇴위되고 순종황제가 즉위한 이후 그 해 11월 통감부에 의해 종친부가 폐지되는 불행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와 관련해 부지가 8천평이 넘었으며, 3백칸이 넘는 규모로서 경근당(敬近堂)을 비롯해 10여개의 건축물로 이뤄졌던 종친부가 폐지되고 그 기능이 규장각(奎章閣)으로 이관됐다.

그 이후 1910년 8월 29일 공포된 한일병합조약으로 인해 국권을 완전히 잃게 되는 불행의 역사가 시작됐으며 그 이듬해인 1911년 이왕직(李王職) 도서과(圖書課)가 종친부의 건축물을 사용했다.

한편 이왕직 도서과에서 소장했던 도서들을 1915년 창경궁에 신축된 4층 서고로 이건했으며, 그 이전인 1913년에 종친부에 일본군의 수도육군병원(首都陸軍病院)이 건립됐던 것이니 결국 종친부에 병원과 이왕직 도서과가 공존하는 상황이 발생했던 것이다.

일제는 1913년에 환구단을 철거하고 그 이듬해에 조선철도호텔을 건립했는데, 아무리 국권을 잃었다고는 하지만 대한제국의 발상지가 호텔로 전락하는 수모를 겪었다.

그런데 환구단이 철거된 해에 종친부에 일본군이 운영하는 수도육군병원을 건립하였던 것이니 이러한 사례를 통하여 황실의 존엄성을 훼손했던 일제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종친부에 건립된 일본군 수도육군병원에 진료소(診療所)와 연결된 두 건축물 및 독립된 한 건축물이 있었으나 1928년 경성의학전문학교(京城醫學專門學校) 부속 병원을 건립하면서 기존의 진료소 건물은 개축하였으나 나머지 건물들은 철거했다.

위의 글에서 소개한 바와 같이 종친부에 일본군 수도육군병원에 이어서 경의전 부속 병원(京醫專附屬病院)까지 연속적으로 건립되었는데 어떤 배경에서 경의전 부속 병원이 종친부 에 세워진 것인지 그 과정을 살펴본다.

1899년(광무 3) 설립된 관립의학교(官立醫學校)는 1907년(융희 1) 통감부의 의학체계 재편구상에 입각하여 설립된 대한의원(大韓醫院)에 통합되면서 교육부(敎育部)로 축소됐다.

대한의원은 서양의학의 기준에 근거하여 전문분과(專門分科)를 설치하고 의무비(義務費)를 증가시켜 치료의 비중을 높이는 등 일정한 발전을 도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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