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그룹 창업주인 신격호 명예회장이 이날 오후 4시 29분 향년 99세로 별세했다. (제공: 롯데그룹)
롯데그룹 창업주인 신격호 명예회장이 이날 오후 4시 29분 향년 99세로 별세했다. (제공: 롯데그룹)

맨손으로 재계 5위 롯데 일궈낸 ‘거인’

10명 종업원으로 시작… 계열사 95개

호텔·면세점 등 韓관광산업 기틀 마련

30년 숙원 123층 ‘롯데타워 꿈’ 이뤄

자식들 경영권 분쟁으로 말년엔 쓸쓸

[천지일보=유영선 기자] 롯데그룹 창업주 신격호 명예회장이 19일 별세했다. 맨손으로 시작해 재계 5위의 롯데를 키운 ‘경영신화’를 남기고, 현대 아산병원에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이날 오후 4시 29분께 향년 99세로 세상을 떠났다.

신 명예회장은 식민지시대에 일본 유학 중 소규모 식품업으로 출발하여 한·일 양국에 걸쳐 식품·유통·관광·석유화학 분야의 대기업을 일궈낸 자수성가형 기업가이다.

그는 제조업 중심의 한국 산업계에 유통과 관광산업에 투자해 성장을 이끄는 데 공헌했다.

1921년 경남 울산에서 5남 5녀의 첫째로 태어난 신 명예회장은 울산농고를 졸업한 이후인 1941년 93엔을 들고 일본으로 건너가 와세다 대학에서 화학을 공부했다. 그의 일본 이름은 시게미쓰 다케오(重光武雄)다.

대학에 다니며 학업에 정진하던 신 명예회장을 신문과 우유 배달 등으로 학비를 충당하는 등 고단한 고학생 새활을 했다. 평소 그의 성실성을 눈여겨 보아온 한 일본인 사업가 하나미쓰의 5만엔 출자로 신 명예회장은 1944년 커팅 오일을 제조하는 공장을 세움으로써 기업 경영인으로서의 첫발을 내딛었다. 하지만 2차 대전 당시 미군기의 폭격으로 공장을 가동해 보지도 못하고 전소되고, 5만엔은 고스란히 빚으로 남았다.

이듬해인 1945년 해방이 되면서 일본에 머물던 한국인들은 대부분 귀가했지만 5만엔의 빚을 갚기 위해 신 명예회장은 일본에 남았다.

그는 1946년 도쿄에 ‘히카리특수화학연구소’라는 공장을 짓고 비누 크림 등을 만들어 팔았다. 사업이 잘 되어 1년 반 만에 빚을 다 갚았다. 신격호는 자신을 믿고 기다려 준 하나미쓰에게 빌린 자금을 모두 돌려주면서 고마움의 표시로 집까지 한 채 사 주었다고 한다.

이후 신 명예회장은 1948년 자본금 100만엔, 종업원 10명 법인사업체를 만들고, 껌 사업인 ㈜롯데를 설립했다. 이후 초콜릿, 캔디, 비스킷, 아이스크림, 청량음료 부문에도 진출해 성공을 거뒀다.

고국인 한국에서 사업을 시작한 것은 한·일 국교 정상화 이후다. 1967년 롯데제과를 설립했고, 유통과 관광으로 영역을 확장했다. 1973년 서울 소공동에 선보인 롯데호텔과 1979년 롯데쇼핑센터(현 롯데백화점 본점)를 열면서 입지를 굳혔고, 화학과 건설 등으로 사업 영역을 넓히면서 현재 계열사 95개, 자산규모 115조원대 재계 5위 그룹으로 우뚝 섰다.

특히 신 명예회장은 롯데월드, 롯데면세점 등 관광산업에 대규모 투자를 했다. ‘부존자원이 빈약한 한국은 관광입국을 이뤄야 한다’는 신념으로 국내 호텔 브랜드 최초 해외진출 등 관련 산업의 발전을 이끌었다. 1995년에는 관광산업을 국가전략산업으로 끌어올린 공로로 해당 분야에서는 처음으로 금탑산업훈장을 받았다.

서울 송파구 잠실에 위치한 123층 롯데월드타워. (제공: 롯데그룹)
서울 송파구 잠실에 위치한 123층 롯데월드타워. (제공: 롯데그룹)

2017년 초에는 숙원사업이었던 롯데월드타워도 개장했다. 1987년 부지를 산 지 30년 만이다. 각종 교통, 도시계획 등의 이유로 사업계획이 잇달아 반려됐지만 신 명예회장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명소를 짓겠다는 일념으로 제2롯데월드 건설 계획을 포기하지 않고 2011년 지상 123층 높이 555m의 초고층빌딩을 포함해 80만 5782㎡에 이르는 ‘롯데월드타워’를 완공시켰다. 2017년 4월 3일 롯데 창립 50주년을 축하하며 초고층빌딩을 포함한 롯데월드타워가 그랜드 오픈하였다. 30여 년에 걸친 신 명예회장의 집념이 결실을 맺은 순간이었다.

우리나라 최고층 건물이자 최대 규모의 쇼핑몰로 탄생한 롯데월드타워는 고용 창출 및 지역경제 활성화에 이바지하는 한편, 서울의 랜드마크로 외국인 관광객을 유치하며 국내 관광산업 활성화에 앞장서고 있다.

하지만 자식들의 경영권 분쟁으로 그의 말년은 순탄치 않았다. 2015년 장남인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과 차남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사이에 경영권 분쟁이 벌어졌고, 이 과정에서 신 명예회장은 장남 신 전 부회장과 함께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신 명예회장은 두 아들과 함께 경영비리 혐의로 2017년 징역 4년에 벌금 35억원을 선고받았으나 건강상의 이유로 법정 구속은 면하기도 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시게미쓰 하츠코 여사와 장녀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 장남 신 전 부회장, 차남 신 회장, 사실혼 관계인 서미경 씨와 딸 신유미 씨 등이 있다. 신춘호 농심 회장, 신경숙 씨, 신선호 일본 식품회사 산사스 사장, 신정숙 씨, 신준호 푸르밀 회장, 신정희 동화면세점 부회장이 동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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