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병 정치평론가

ⓒ천지일보 2020.1.16

한국당과 새보수당, 보수진영의 정치 및 시민단체 등으로 구성된 통합추진기구인 혁신통합추진위원회(혁통위)가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그동안 수차례에 걸쳐 회의도 열고 나름대로의 원칙과 방향도 밝혔다. 한마디로 사분오열된 보수진영,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구 새누리당 세력’을 하나로 묶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당이 새보수당과의 통합을 이뤄내느냐가 핵심이다. 그 밖의 것들은 주변부에 있을 뿐이다.

박근혜 정부 탄핵을 계기로 구 새누리당 세력은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단순히 탄핵에 대한 찬반의 문제만이 아니다. 오랫동안 구 새누리당을 뒷받침 하고 있던 ‘모든 것들’이 재편되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자본과 노동, 관료와 권력기구 그리고 지식과 언론 등 한국의 기득권체제를 쥐락펴락했던 기존의 질서(구체제)가 통째로 흔들렸다. 박근혜 정부 탄핵은 곧 박정희와 박근혜를 잇는 ‘구체제의 종말’에 다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구체제의 힘은 그리 만만치 않았다. ‘복고(復古)의 힘’이 스멀스멀 지난 몇 년의 정세를 좌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역대급의 ‘길거리 집회’와 ‘극단적인 진영싸움’은 그 상징이다. 우리 사회 곳곳에서 저주와 막말, 음해와 왜곡 그리고 고소와 고발이 난무한 것은 그 결과물이다. 그러니 그 새 제대로 변한 것이 뭐가 있느냐는 국민적 냉소가 쏟아지고 있는 것이다. 이는 무기력한 문재인 정부가 오히려 판을 키워 주고 있는 셈이다. 물론 지금도 이 싸움은 진행형이다.

복고의 힘 또는 구체제의 저항이 이뤄지는 핵심 영역이 바로 ‘정치’다. 그 중에서도 박근혜 탄핵의 직격탄을 맞은 구 새누리당, 지금의 한국당이 그 전면에 서있다. 박근혜 탄핵 속에서도 납작 엎드린 채 옆으로 새고 뒤고 뒤로 빠지면서 용하게도 살아남은 그들이다. 그나마 임기 4년 덕분에 지금껏 버티고 있지만 그게 아니었다면 벌써 끝났어야 할 사람들이다. 역설적으로 문재인 정부의 좌충우돌이 반대로 그들에겐 저항의 원천이 됐다. 정치판을 무한 전쟁터로 바꿔버린 그들의 힘은 거기서 나온 것이다.

이래저래 버텨온 그들 친박세력이 다시 위기에 섰다. 21대 총선이 다가온 것이다. 이젠 버텨야 할 단계가 아니라 싸워서 이겨야 할 단계에 직면한 것이다. 그러나 싸워서 이길 재간이 없다. 우군들은 떠났거나 눈치를 보고 있고 여론은 싸늘하다. 친박세력의 구심체도 약하고 표를 달라는 명분도 별로 없다. 게다가 남아있는 세력마저 사분오열돼 있다. 이대로라면 대통령권력 탄핵에 이어 의회권력까지 사실상의 탄핵을 자초할 수도 있는 일이다. 뭔가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야 했다.

이에 구 새누리당 원로들이 나섰다. 명분도 만들었다. ‘중도·보수 세력 대통합’이 그것이다. 이른바 ‘반문연대’ 보다는 뉘앙스나 명분이 더 있어 보인다. 한국당과 새보수당을 묶는 것이 관건이지만 시선을 더 모으기 위해 ‘플러스 알파’도 끌어 들였다. 그리고 기구도 만들었다. 혁통위가 그것이다. 혁신과 통합, 이름도 거창하다. 지난 15일에는 회의를 열어 3개의 합의문도 발표했다. 중도·보수 세력의 통합신당 창당, 혁신과 통합 대의에 함께하는 세력 규합 그리고 국민이 공감하는 통합 등이다.

혁통위가 나서서 뭔가 총선 준비를 해보겠다는 것에 대해 비난하고 싶지는 않다. 그 또한 정치영역이며 결국은 국민이 판단할 뿐 그 모색에 대해 시비를 따질 문제가 아니다. 더욱이 보수든 무엇이든 불법이 아니라면 선거를 앞두고 세력을 규합하는 것을 비난해서도 안 될 일이다. 그러나 혁통위가 착각하고 있는 몇 가지 문제만큼은 짚어볼 필요가 있다. 그것이 조언이든 비판이든 혁통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첫째, 혁신은 말 뿐 통합에 방점을 찍어도 국민이 믿을 것이라는 착각이다. 유승민과 안철수까지 거론되자 일부 언론도 춤을 추고 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 몰락의 공범들이 한국당에 대거 포진돼 있다는 사실을 국민은 알고 있다. 그런데도 책임이나 성찰은커녕 마치 다른 사람들처럼 혁신과 통합을 거론하고 있다. 그들이 말하는 혁신은 양두구육의 깃발이요, 통합은 그들의 자리보전을 위한 수단에 다름 아님을 국민이 모른다고 보는 것일까. 혁통위는 그 바람잡이 일 뿐이다.

둘째, 감동 없는 그들만의 ‘프레임 전략’에 국민이 힘을 실어 줄 것이라는 착각이다. 선거 때만 되면 갑자기 나타난 구시대 인물들이 이런저런 판을 짜고 정치공학적 그림도 그려댄다. 일종의 프레임 전략이다. 물론 과거에는 통했던 사례가 많았다. 그러나 이젠 그런 시대가 끝났다. 설사 어느 정도는 유효한 프레임 전략이라 하더라도 거기엔 최소한의 명분과 비전, 스토리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친박’과 ‘친이’를 모아서 ‘통합’으로 가겠다는 지금의 논의에 무슨 의미나 스토리가 있을까. 그저 당신들의 판짜기일 뿐이다.

셋째, 한국당과 새보수당 그리고 외곽의 일부가 통합하면 21대 총선에서도 그만한 성과가 있을 것이라는 착각이다. 뭉치고 또 뭉쳐봤자 ‘도로 새누리당’이다. 바로 박근혜 정부 때의 그 집권당이다. 심판을 받아도 벌써 받았어야 할 그 정당이 ‘부활’했다고 한들 거기서 무슨 큰 성과를 만들어 낼 수 있을까. 물론 선거는 모른다. 그러나 국민을 무시하는 정당이 선거에서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낼 수는 없는 일이다. 있다면 ‘외부 변수’에 기인한 것이다. 혁신이니 통합이니 하면서 아무리 포장을 하더라도 그 본질이 ‘도로 새누리당’이라면 표가 아니라 ‘돌’을 맞을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들은 이미 청산의 대상일 뿐이다. 말없이 지켜보고 있는 국민을 부디 바보로 보지 않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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