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우 안전사회시민연대 대표

어제가 김용균 기일이다. 청년이 처참하게 죽어간 지 1년이 되는 날이다. 김용균이 일했던 일터에는 어떤 변화가 찾아왔을까. 많은 사람들이 큰 변화가 생긴 줄 아는데 실제로는 별다른 변화가 없다.

김용균은 홀로 일하다 변을 당했다. 2인 1조로 운영하게 돼 있는데 왜 홀로 근무했나 하는 물음이 쏟아졌다. 2년 전 구의역 사고 때 목숨 잃은 김 군 역시 홀로 일하다 참변을 당했다. 그 동안 무엇을 했느냐는 비판이 쏟아졌다. 그 사이 또 다른 김 군들 가운데 한 명인 김용균이 희생되고 나서야 ‘위험업무 2인 1조’가 ‘준수’된다.

현재 김용균이 사고를 당한 태안화력발전소에서 2인 1조는 지켜지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로 인해 더 악화된 게 있다. 인력 추가 배치는 제대로 안되면서 2인 1조 규정을 지키려다 보니까 더욱 바빠지고 더욱 고달파졌다. 오히려 노동 강도가 더 세졌다.

처참한 환경 속에서 홀로 일하다가 처참하게 목숨을 잃은 청년 김용균! 어머니 김미숙씨가 직접 나서서 “다시는 내 아들처럼 목숨을 잃는 청년이 나오지 말아야 한다” “법을 바꿔야 산다”고 호소했다. 자식 잃은 어머니의 호소가 큰 울림을 주어 법 개정의 문이 열렸다. 자식이 죽은 것도 서러운데 법과 제도를 바꾸기 위해 투쟁까지 해야 하는 현실이니 얼마나 서글픈 일인가.

2018년 12월 산업안전보건법의 개정 과정을 잠시 곱씹어 보자. 자본 세력과 자유한국당 측이 정부가 제출한 개정 법안에서 핵심 내용을 빼기 위해 전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법률안은 누더기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원안에 비해 많이 후퇴했다. 위험의 외주화를 근절시키자고 하면서 ‘유해 위험 업무의 사내 도급 금지’ 조항을 넣긴 했는데 예외가 많아 위험의 외주화를 근절시킬 수 없는 법률이 되고 말았다. ‘도급인의 사업장’의 범위와 ‘도급승인 대상 사업장’을 매우 협소하게 규정했다. 김씨가 수행했던 전기사업설비 운전·점검 분야도 예외에 해당된다. 김용균 사업장도 예외가 돼버리고 만 것이다. 노동부는 시행령과 시행규칙에서 법안의 취지를 후퇴시켰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민주노총은 지난 9일 청와대 앞에서 현대제철이 하청 형태의 도급이 금지돼 있는 도금 분야에 ‘별정직 비정규직’을 채용해 도급금지 규정을 무력화하려고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있는 규정도 각종 기발한 발상으로 회피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계속되는데 폭넓은 예외를 둔 산업안전보건법으로는 위험의 외주화를 막아 낼 수 없다. 산업안전보건법이 다시 개정돼야 하는 이유이다.

위험의 외주화를 원천 금지하는 규정이 도입되지 않는다면 다단계 하청구조를 혁파할 수 없을 것이고 언제나 위험에 노출되고 죽음과 삶의 경계선에서 하루하루 살아야 하는 비정규직의 고통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몇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사망사고 등 중대재해를 야기하는 기업은 사기업이든 공기업이든 원청의 대표자와 책임자를 처벌하고 금전적인 것으로 배상하도록 법률로 만들어야 한다.

노동계와 시민사회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과 징벌적손해배상제를 도입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정부와 국회, 정당들은 결단을 내려야한다. 그렇게 해야만 제2,제3의 김용균을 막을 수 있다.

2014년 2월 대한민국의 한 복판 서울 강남 송파에서 세모녀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여론이 들끓었다. 바로 이 때 세모녀법이 등장했다. 세모녀에게는 적용도 될 수 없는 법률을 만들어 놓고 세모녀법이라고 불렀다. 안철수씨가 맨 먼저 ‘세모녀법’을 발의한다면서 내놓았는데 애초부터 세모녀에게 실효성이 없는 내용이었다. 그 내용조차 논의 과정에서 후퇴를 거듭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세모녀법이라고 부른다.

사회적 파장이 큰 사고가 터지면 사건의 중심에 있는 인물의 이름을 따 ○○○법이라는 이름의 입법 작업이 시작된다. 이름을 따서 법안의 이름을 짓는 건 나름의 의미가 있을 때도 있지만 세모녀법과 김용균법의 경우처럼 이름을 따서 만들어진 법률이 알맹이가 빠진 것이라면 사람 이름을 따서 법안 이름 짓는 의미는 없는 것이다. 오히려 고인을 욕되게 하는 행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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