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천지TV=김미라·이예진 기자] 금강산 일만 이천 봉이 부러울쏘냐.

능선을 따라 삐쭉삐쭉 솟아 있는 바위들이 그 위용을 드러낸다.

멀리 강진만에 펼쳐진 다도해가 그 빛을 발하고 아침 안개를 살포시 밀어낸 햇살이 산능선까지 찬란히 밝아온다.

모든 것이 하나로 통일되고 회복된다는 경자년 새해.
희망찬 기운이 샘솟듯 솟아난다.

붉은 봉황을 뜻하는 주작.

이 붉은 봉황이 날개를 펴고 활짝 나는 형세를 닮았다 하여 이름 붙여진 주작산(475m).

탐방팀은 도암면 봉황천을 따라 떨어져 있는 소석문에서 첫 새해맞이 등산을 시작했다.

변화무쌍한 기후에
미끄럽고 거친 낙엽과 잔설의 속살
끝도 없이 밀려오는 험준한 바위들까지.

주작산의 화려한 자태 속에 가려진 위험요소에 등산 내내 긴장을 늦출 수가 없었다.

시작부터 가파른 등산로를 따라 얼마 오르지 않았는데 벌써 눈호강이 시작됐다. 일렬로 도열한 듯한 장중한 암봉들이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할 만큼의 위력으로 우리의 발길을 붙잡았다.

힘껏 다리를 옮겨 등산로를 올라가니 낮은 산이라고 쉽게 보지 말라는 듯 떡하니 내려뜨려진 밧줄, 아찔한 수직 암벽, 매어져 있는 밧줄을 유일한 안전 장비로 삼아야 하는 현실 앞에 눈앞이 깜깜해온다.

조금 위험하다 싶으면 모두 철계단을 설치한 여느 산들관 차원이 다르다.

힘껏 밧줄을 타고 동봉을 오르니 이제 반기는 것은 공룡능선.

이빨처럼 날카롭게 치솟은 흰 암봉이 병풍처럼 길게 늘어선 범상찮은 산세가 시선을 압도한다.

주작을 한 마리의 봉황에 견준다면 덕룡산은 주작이 펼치고 있는 거대한 왼쪽날개. 정말 설악산의 공룡능선을 능가할 만큼의 암릉 구간들이 이어졌다.

동봉에서 서봉으로 가는 길은 바로 눈앞에 있듯 가까워 보였지만 산세만큼은 그렇지 않았다. 참으로 사신(四神) 중 하나인 주작의 날개를 오르는 일은 험하고 용기가 필요한가 보다.

그렇게 동봉을 지나고 덕룡산의 최고봉인 서봉 정상에 오르면 강진만 일대의 풍광이 죄다 발아래로 펼쳐진다. 이만한 높이에선 맛볼 수 없을 것 같은 아찔한 고도감과 힘찬 바위의 기운이 몸속 깊이 스며든다.

이 순간만큼은 마치 주작이 금방이라도 날개를 쳐 올라 하늘로 올라갈 것만 같은 묘한 상상도 불러일으킨다.

하늘과 땅, 말없이 흘러가는 구름과 바람.
저멀리 아스라이.. 다문다문 바다를 향해 질주하는 작은 섬들.
그리고.. 돌꽃으로 피어난 주작산.

한고비를 넘었는가 했는데 또 다른 바위가, 그걸 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쉴 때쯤 또 날 선 암봉이 휘몰아치듯 버티고 서있다.

높고 영화롭지만 좁고 협착한 피안의 세계. 수많은 역경과 고난을 이겨내지 않으면 그 문에 절대 도달할 수 없음을, 어쩌면 우리네 인생길과 너무도 흡사한 이치를 자연은 말없이 말해주고 있다.

귀한 진주를 얻기 위해 거친 모래를 참고 견디는 조개처럼
피안의 세계로 향하는 인생들의 걸음 또한 그렇지 않을까.

남쪽으론 바다인 강진만이 동·서·북으로는 소백산맥과 노령산맥의 지맥으로 둘러싸여 있는 전라남도 강진. 산맥들이 험하다 보니 예로부터 다른 지역과 교류하기가 힘든 데다 서울과 멀리 떨어져 있는 탓에 유배지로도 많이 이용됐다.

하지만 천혜의 자연만큼은 단연 으뜸.

남도의 수려한 비경은 유배 온 선비들의 마음을 달래주기에 충분했을 터.

다산과 선인들의 숨결이 묻어있는 주작산의 겨울이
그토록 따뜻했던 이유다.

(고프로 촬영: 이상면 편집인, 글: 이예진·김미라 기자, 사진: 강수경 기자, 내레이션: 이예진 기자, 자막: 황금중 기자, 영상편집: 김미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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