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철 참조은경제연구소 소장

 

미국과 이란 간 갈등으로 중동 정세가 불안한 가운데 미국이 우리 군의 호르무즈 해협 파병을 강하게 요구하면서 정부가 딜레마에 빠졌다. 설상가상으로 국민의 절반 가량은 우리 군의 호르무즈 해협 파병을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13일 YTN 의뢰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국군의 호르무즈 해협 파병 반대비율이 48.4%로 찬성비율 40.3%를 근소하게 앞선 것으로 조사됐다. 미국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신중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는 의미다. 이란은 미국편에 서면 공격의 목표가 될 것이라며 경고하고 있다. 반면 미국은 방위비 문제와 북미 협상 재개 등 보다 민감한 문제를 풀어야하는 동맹국의 요구여서 마냥 거절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 국민의 안전과 경제적 실익을 바탕으로 전략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호르무즈 해협은 세계원유 수송량이 20%, 우리나라가 주로 수입하는 중동산 원유의 70%가 오가는 전략적 요충지다. 미국과 이란 간 전면전으로 치닫던 갈등이 트럼프 대통령의 대이란 경제 제재를 강화하면서도 군사력 사용을 원치 않는다는 발언 이후 요동쳤던 글로벌 금융시장은 빠르게 안정을 되찾고 있다. 급락했던 주식시장이 반등하고 배럴당 70달러를 넘나들던 국제유가도 하락세로 돌아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분쟁의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다. 만에 하나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한다면 우리나라 원유 수입에 차질이 빚어질 뿐 아니라 국제유가는 천정부지로 치솟을 가능성이 높다. 이럴 경우 대외 의존도가 높은 우리경제는 치명타가 될 수 있다. 정부의 올해 우리 경제성장률 전망치 2.4% 달성은 고사하고 2% 성장도 장담하기 어려울 수 있다. 실제로 세계은행(World Bank)은 최근 보고서에서 지속된 제조업 부진과 미·중 무역분쟁 영향으로 올해 세계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종전의 2.7%에서 2.5%로 0.2%P(포인트) 하향 조정했다. 연초부터 글로벌 경제에 중동 분쟁이라는 돌발 변수가 더해지는 양상이다.

이번 중동 분쟁은 트럼프 대통령이 시작한 싸움에 우리나라와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등 동맹국 모두를 끌어들이는 양상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이 더 이상 국제경찰이 아니라며 한발을 빼는 모습을 보이는 것과는 달리 중동분쟁에 대해서는 국제 안보 공조를 강조하는 이중성을 보이고 있다. 비용이 드는 의무는 회피하면서도 국제경찰의 권리는 행사하겠다는 심보다. 이런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 협상에 말려든 것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앞서 우리 정부는 지난해 2월 방위비 분담금 특별협정 당시 분담금 인상폭을 줄이기 위해 당초 5년이던 협정 유효기간을 1년으로 줄이자는 미국의 요구를 수용했다. 이게 부메랑이 되어, 이어서 시작된 방위비 분담금 협상에서 미국은 기존 방위비의 5배를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너무 안이하고 근시안적인 협상전략이 해마다 트럼프의 압박에 시달리는 결과를 낳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앞으로도 방위비 분담 이외에도 경제적인 측면에서 수입산 자동차에 대한 관세 부과, 환율조작국 지정 등 다양한 협상 카드로 우리를 압박할 가능성이 높다.

이 정도면 후안무치(厚顔無恥)라는 생각이 든다. 현재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을 상대로 2년 가까이 무역전쟁을 치르면서도 유럽연합과는 에어버스 보조금을 이유로 보복관세를 부과하고 있고, 또 수입산 자동차에 대한 관세부과 타이밍을 저울질하고 있다. 타깃은 유럽연합, 일본과 한국이 될 가능성이 높다. 한마디로 돈이 된다면 동맹국까지도 무차별적으로 경제보복에 나서는 모양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동안 트럼프 대통령의 이 같은 다른 국가들에 대한 핍박의 결과로 미국경제는 순항 중이다. 뉴욕증시는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는 가하면, 일자리는 완전고용에 가까울 정도로 넘쳐나고 있다. 미(美)하원에서 가결된 탄핵도 결코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가도에 장애물이 될 것 같지 않다. 이런 이유로 글로벌 경제에 최대 리스크는 트럼프라는 얘기가 회자되고 있다. 따라서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고 트럼프 대통령의 협상 전략에 대한 이해가 선행돼야 한다.

호르무즈 해협 독자 파병을 유력하게 검토 중이라는 일부 언론 보도와 관련 국방부는 구체적으로 결정된 것은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현시점에서 최선이 아닌 차선책이라는 데는 공감한다. 이는 일본의 파병 방식과 비슷한 것으로 이란의 반발을 감안한 고육지책이다. 이란에 우리국민 290여명이 상주하고 있고 이라크에 1600여명이 체류하고 있다. 대부분 건설 파견 근로자들이다. 우리 국민들의 안전을 위해 자위권을 발동하되 이란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명해야 한다. 트럼프의 전략에 장단을 맞추되 우리 군이 명분도 없는 중동 분쟁에 휘말려 전쟁의 도구가 되서는 안된다. 철저하게 우리 국민의 안전과 국익을 감안해 서두르지 말고 협상에 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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