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명 함께 움직이며 CCTV에 고스란히 노출
노트북 1대 통째 갖고 달아나다 다시 돌려줘

(서울=연합뉴스) 인도네시아 특사단 숙소에 침입한 3명의 정체가 국가정보원 직원이라고 볼만한 정황이 속속 드러나는 가운데 국정원 스파이로 보기에는 너무나 어설픈 이들의 행각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지난 16일 오전 9시21분께 서울 중구 롯데호텔 신관 19층 1961호에 묵던 인도네시아 대통령 특사단 숙소에 검은색 정장 차림의 남자 2명, 여자 1명이 침입했다. 여자도 바지 정장 차림이었다.

그런데 특사단 일행 가운데 한 명이 6분 뒤인 오전 9시28분께 숙소로 갑자기 돌아오면서 노트북을 만지던 침입자들과 맞닥뜨렸다. 느닷없이 특사단원이 들어온 것에 깜짝 놀란 침입자들은 방에 있던 노트북 2대 중 1대는 그대로 두고 1대만 가지고 복도로 나갔다.

때마침 복도에 있던 호텔 종업원이 특사단원의 항의를 받고서 19층 비상통로에 숨어 있던 침입자들을 찾아냈고 2~3분 뒤 이들 중 남자 2명이 나와서 가져갔던 노트북을 돌려주고 종적을 감췄다.

특사단 관계자는 "없어진 물건은 없었다. 방 안에 모르는 사람 세 명이 서 있었고 컴퓨터에서 정보를 빼가려고 했던 것 같다"며 경찰에 신고했다. 이 관계자는 "침입자들은 사람이 들어오니 놀라 방에 있던 노트북 2대 중 1대는 그대로 방에 두고 1대는 가지고 복도로 나갔다가 돌려주고 도주했다"고 설명했다.

이 특사단원은 방에 두고 간 물건을 가지러 방에 왔다가 침입자들과 마주친 것으로 알려졌다.

정장 차림의 남녀 3명이 다른 물건은 놔두고 노트북만 들고갔다는 정황상 `정보전'으로 추정은 되지만 주도 면밀한 행동과 보안으로 흔적조차 남기지 않는다는 유수 정보기관의 '작품'으로 보기엔 어설픈 구석이 너무 많다.

우선 침입 사건이 발생한 서울 중구 롯데호텔 19층의 객실은 36∼42㎡ 크기의 일반 객실에 해당하는 디럭스룸이다.

통상 고위급 인사들이 머무는 스위트룸이 아닌 일반 객실이어서 '아니면 말고 식'의 잠입 시도 가능성마저 거론되고 있다.

최근 들어 세계 각국이 보안상 중요한 정보는 노트북에 저장하지 않고 초소형 USB에 입력해 들고 다니는 경우가 일반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침입자 중 객실 밖에서 경계를 선 사람조차 없었다는 것도 고도의 훈련을 받은 스파이의 소행이라고 보기엔 의심이 가는 일이다. 또 숙소에 잠입했다가 CCTV에 노출되고, 특사단 일행에 발각된 데 이어 호텔 종업원에게마저 소재를 들킨 것은 스파이로서는 기본조차 갖추지 못한 어설픈 행동으로 지적될 만하다.

이런 정황 때문에 정말 국내 정보기관이 외국의 정보를 빼내려고 벌인 일이라면 형편없이 낮은 정보활동 수준을 고스란히 드러낸 것 아니냐는 비판이 거셀 전망이다.

경찰측은 "지금으로서는 훈련된 스파이의 소행이라고 단정적으로 얘기할 수 없다"며 "다양한 가능성을 두고 수사하고 있다"고 거듭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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